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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小기업 열전](5) VK..."불가능에 도전한다"


 

최근 영국 이동통신사업자인 보다폰이 자사가 판매중인 휴대폰 중 가장 인기 있는 모델 100개를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아닌 중견업체 VK의 VK530 모델이 한국 휴대폰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국의 유명 리서치 업체인 Sino MR의 자료도 휴대폰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Sino MR은 지난 13일 중국의 390개 도시에서 조사한 8월 한달간 GSM 휴대폰 판매 대수를 발표했다. 한국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가 3위를 차지했으며 VK는 18위에 올랐다. LG전자는 19위였다.

VK는 최근 몇 년간 국내 휴대폰 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다.

맥슨텔레콤, 텔슨전자, 세원텔레콤 등 중견기업들이 중국발 악재로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와중에서도 VK는 건재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과 미주시장 등으로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시장에만 주력하던 VK는 2003년부터 국내 시장에도 진출, CDMA 휴대폰을 내놓으면서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VK는 어떤 기업이고 그 성장 동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라"

지난 9월 23일 오후 VK 전 직원은 본사가 위치한 안양 근교의 수리산에 다녀왔다. 창립 8주년을 기념한 등반대회였다. 그러나 보통 회사의 창립기념일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더욱이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었지만 한 치의 여유로움도 찾아볼 수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철상 사장은 이날 오전까지 멕시코에서 방문한 투자 유치단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이 사장은 이날 등반대회를 제외하고도 5~6건의 미팅이 잡혀있었다. 미리 예약된 사항이 아니면 전화 통화조차 쉽지 않았다. 이 사장은 전날 새벽에도 4시에 퇴근했다.

등반 대회를 다녀와서는 바로 안양시 금융기관 관계자와 미팅을 하고 직원 회식에 참여했다. 이 사장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하고 월요일에는 다시 해외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창립 8주년을 맞은 VK의 인상은 '분주함'이었다.

이날 이철상 사장은 직원들에게 "항상 긴장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가져라. 그 대신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한발 한발 쉼없이 달려가라.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상상력이야 말로 VK의 미래를 키우고 개개인의 꿈 또한 키워내는 원동력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사장의 말처럼 VK는 지금까지 쉼 없이 움직였으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해왔다.

◆2차 전지 회사에서 휴대폰 기업으로

VK는 1997년 2차 전지인 리튬폴리머 전지를 수입, 판매하는 바이어블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VK는 말레이시아의 슈빌라배터리라는 업체의 국내 독점 영업권을 획득하고 이를 상업화할 곳을 찾던 중 삼성전자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슈빌라배터리는 리튬폴리머 전지를 개발, 양산하던 회사였다. VK와 삼성전자는 98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리튬폴리머 전지를 채택한 휴대폰을 생산했다.

당시는 일본 업체들이 리튬이온 전지로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석권하던 때였다. VK는 일본 업체보다 2~3년 먼저 차세대 전지를 상용화함으로써 2차 전지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철상 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년간의 비밀연구 끝에 2000년에 안성공장에 리튬폴리머 전지 셀 공정을 완성했다. 슈빌라의 도움 없이 리튬폴리머 전지 생산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2차 전지 업체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매출을 보이면서 VK는 2000년 10월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VK에 위기가 닥쳤다. 중국산 저가 리튬 전지의 덤핑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리튬 전지의 중주국인 일본의 대기업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창업초기 20달러가 넘던 2차 전지의 시장 가격이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로 인해 2달러대로 폭락하기도 했다. 일본 업체들도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가격 경쟁에 동참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도 30%의 가격인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철상 사장은 이대로 가면 회사의 규모와 경쟁력으로는 전지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을 특화시키거나 유관산업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시너지를 높이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 사장은 지금까지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5년 동안 납품하면서 어깨 넘어로 본 휴대폰이 그것이었다. 연구 개발 인력을 좀 모으면 어느 정도 휴대폰 단말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내부적으로 반대가 많았다. 소비자 개개인을 상대해야 하는 휴대폰 사업은 몇몇 전지 사업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유통망을 갖추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마케팅을 해야만 하는 사업이었다. 단지 제품만 개발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철상 사장은 VK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휴대폰은 그의 포부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기존 전지 사업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VK는 국내 기업들이 집중했던 CDMA보다 세계 시장에 용이한 GSM 방식의 휴대폰을 개발하기로 했다. 일단 휴대폰 사업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2001년 7월부터 9월까지 두달 동안 공장을 짓고 그해 12월 첫 휴대폰인 VG100을 내놓았다. 회사이름도 바이어블코리아에서 VK로 바꾸었다.

◆거대 시장 '중국'에 도전하다

VK는 첫 휴대폰을 홍콩에 수출했다. 홍콩은 전지를 수출하면서 알게 된 믿을만한 기업들이 있었다. VK는 중화권에 인기가 있었던 송혜교를 모델로 내세우면서 '최고로 고급스럽다'는 의미의 '탑럭스(Toplux)'라는 브랜드로 홍콩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국 본토였다. 중국에서 자체 브랜드로 휴대폰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허가권(입망증)을 받아야만 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외국기업 VK가 중국 정부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처음에는 입망증을 보유한 중국 사우텍(Soutec)의 이름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VK는 대당 100위안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그러던 중 이 사장은 우연히 차브리지(Chabridge)라는 회사를 알게 됐다. 이 회사는 중국 정부로부터 생산 허가를 받아 운영됐으나 탈세와 부실로 망해가던 회사였다. 이 사장은 차브리지를 인수하기로 마음먹고 곧장 이 회사가 위치한 하문시로 떠났다.

당시 차브리지의 경영진은 탈세 혐의로 감옥에 갔거나 해외 도피중이었다. 몇 달간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이 3천명이나 됐다.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서자 채권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이철상 사장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이 회사를 인수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휴대폰 사업을 위해서는 자체 브랜드로 사업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장은 홍콩에 도망가 있던 구 주주를 만나 주식을 인수하고 6개월간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회사를 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VK는 차브리지를 통해 중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GSM 휴대폰을 공급할 수 있었다. 국내 기업 중 중국에서 자체 브랜드로 휴대폰 사업을 하는 곳은 삼성, LG, 팬택 정도다.

VK는 안재욱, 전지현 등 한류 스타를 이용해 중국 내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이어 2002년에는 다른 회사보다 일찍 2.5세대격인 GPRS폰을 출시하면서 성장성을 유지했다.

이 사장은 지속적인 휴대폰 사업을 위해서는 3세대 WCDMA 기술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WCDMA 기술은 CDMA에 기반을 두고 있다. VK는 2002년부터 소수 정예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CDMA 연구소를 만들고 퀄컴 칩을 중심으로 CDMA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국내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회가 생겼다.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이동통신사업자들은 가입자 확보를 위해 하나라도 더 좋은 단말기가 필요했다. VK는 SK텔레콤에 CDMA 휴대폰 공급을 제안해 받아들여졌다.

2003년말 VK는 국내 첫 CDMA폰인 VK100을 내놓았다. 이 휴대폰은 월 4만대가 팔려나갈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어 VK는 2004년 중반 VK200C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2004년 한해 VK는 내수에서 30만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GSM의 본토 유럽 시장을 노린다

중국 사업이 자리를 잡던 2002년부터 VK는 눈을 유럽으로 돌렸다. 중국은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과 로컬 기업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사업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 중국에 집중하던 국내의 수많은 중견 기업들이 이 때문에 무너지고 했다.

VK는 시장다변화의 승부처를 GSM의 본토인 유럽으로 잡았다. VK는 2003년 3GSM과 CeBIT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유럽 시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과 중국에서의 꾸준한 성과를 어필하면서 신뢰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VK는 2004년 2월 영국의 이동전화 사업자인 보다폰에 VG207 모델을 첫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VK가 그해 9월 납품한 GPRS 휴대폰인 VK530이 큰 인기를 모았다.

덕분에 VK는 올해 4월 보다폰과 연간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지난 8월에는 프랑스의 대규모 단말기 유통업체인 아브니르사에도 70만대를 납품할 수 있었다.

VK는 보다폰과의 지속적인 관계 개선을 통해 '보다글로벌클럽'에 가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보다글로벌클럽에 가입하면 보다폰이 진출해 있는 세계 22개국에 바로 휴대폰을 판매할 수 있다. VK는 이미 보다폰을 통해 독일과 아일랜드에도 휴대폰을 공급하고 있다.

VK는 지속적으로 휴대폰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원천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올해 1월 GSM칩을 개발하는 프랑스 웨이브컴의 칩사업 부문을 인수해 VMTS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회사는 최근 4가지 주파수 대역을 지원하는 쿼드밴드칩셋 개발에 성공했다.

VK가 최근 선보인 초경량 휴대폰 VK2000을 비롯해 앞으로 출시하는 휴대폰에는 모두 자체 개발한 GSM 칩을 탑재할 방침이다. 자체 칩을 사용해 휴대폰을 생산하는 기업은 노키아와 모토로라 정도다. VK는 자체 개발한 칩을 탑재함으로써 부품 국산화율을 77%(가격기준)까지 끌어올렸다.

VK는 자체 생산 칩을 탑재함으로써 제조 원가와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VK는 유럽에 이어 미주 지역에도 진출하고 있다. VK는 지난 23일 미국의 휴대폰 유통업체인 인포소닉스와 110억원 규모의 북중남미 대상 공급 계약을 성사시켰다. 멕시코 최대 이동통신사인 텔셀에도 연내에 휴대폰을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규모보다는 생산성 향상이 중요하죠"...이철상 VK 사장

"700명 직원이 한달에 휴대폰 400만대를 파는 게 목표입니다."

앞으로 2~3년이나 5년 후 VK는 어떤 회사가 돼 있을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물음에 이철상(35) VK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몇 년 안에 세계 몇 위안에 드는 휴대폰 업체가 되는 게 목표"라는 말을 예상했었지만 의외였다.

하지만 이 사장이 밝힌 목표는 사실 세계 몇 위안에 드는 것보다 더 이루기 힘든 일이다. 월 400만대면 1년에 5천만대를 팔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수 천명의 직원으로 지난 한해 8천만대를 팔았다. 고작 700명 갖고 한달에 휴대폰 400만대를 팔겠다니. 과연 어떻게?

"핵심 기술을 장악하고 디자인 파워를 배양하면 됩니다. 생산은 아웃소싱을 하면 되죠."

VK는 이미 이러한 목표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올해 초 GSM칩을 개발하는 프랑스의 업체 VMTS를 인수한 것이다. 이 회사는 올해 6월 4가지 주파수대역을 지원하는 쿼드밴드 칩셋을 개발했으며 내년 2월이면 3G칩을 생산하게 된다.

VK 휴대폰의 디자인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가 개발한 핑크빛 VK530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모토로라조차 이 '핑크빛 휴대폰'을 따라할 정도였다.

이철상 사장은 무조건 규모를 키우는 것에 반대한다.

"지멘스와 에릭슨을 보십시오. 지금 휴대폰 업체는 덩치 큰 공룡부터 망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적은 수의 인원으로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VK는 노키아나 델컴퓨터의 사업 모델을 지향한다. 노키아는 저가 휴대폰을 팔지만 영업 이익률은 최고 수준이다. 생산성을 증대하는 것이야 말로 날로 격화되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이 사장은 굳게 믿고 있다.

VK는 2002년 중국 시장이 과열됐을 때 과감히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이제 다시 중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남들과 반대 방향이다.

"지금이 중국에 투자할 때입니다. 중국 현지 업체들이 글로벌 업체에 밀리면서 경쟁이 줄어들고 있고 위안화가 절상되면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제품과 인력, 자금을 다시 중국에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중견 휴대폰 기업들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서도 VK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뚝심있게 걸어갔기 때문이다.

VK는 다른 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ODM 방식으로 납품할 때 중국 현지 업체를 인수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자체 브랜드를 고집했다. 그리고 다른 기업이 중국에 '올인'할 때 과감히 유럽 진출을 꾀했다.

VK의 성공 비결은 정면 돌파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VK가 영국 1위 사업자인 보다폰에 휴대폰을 납품할 수 있었던 비결도 특별한 게 아니었다.

"보다폰을 설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힘들더라도 만나서 계속 제품에 대해 설명했고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개발했죠. 그리고 품질을 개선했고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했습니다."

이철상 사장의 요즘 고민은 'VK의 존재 이유'다.

"VK가 아니어도 삼성전자, LG전자가 휴대폰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왜 VK가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VK는 이제 제조업체(manufacturer)가 아니라 창조적인 발명자(inventor)가 되려고 합니다."

강희종기자 hjka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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