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소프트웨어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세계 최대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이 거인이 허기진 듯 기업사냥에 몰입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이하 DB)으로 시작해 세계 DB 시장의 최강자로 우뚝 선 기업이다. 그러나 DB 시장은 성장에 한계에 직면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오라클이 꺼낸 카드가 바로 ERP로 대표되는 애플리케이션 사업이다.
오라클의 이같은 행보는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분야의 최강업체인 SAP와 사활을 건 일전을 예고한다. 오라클은 최근 SAP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다.
◆ 애플리케이션에 '올인'
오라클이 본격적으로 ERP 사업에 뛰어든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벌써 10년이 흐른 셈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DB 업체라는 명성과는 달리 ERP로 대표되는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는 SAP에 이어 '만년 2위'에 그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사실 자존심보다는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결코 놓칠 수 없는 거대 시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피플소프트라는 강력한 라이벌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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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을 향한 오라클의 공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월21일에는 소매업체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레텍을 6억3천만달러에 인수했고, 29일에는 ID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오블릭스마져 삼켜버렸다. 특히 오라클의 레텍 인수는, 위협을 느낀 SAP가 견제에 나선 상황에서도 끝내 성사시킬 만큼 공격적이었다.
오라클의 M&A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쯤되면 사생결단의 각오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오라클의 애플리케이션 강화 전략은 주력 사업이던 DBMS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상황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오라클이 전세계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매출은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양상을 보여왔다. 2000년 102억달러에 달했던 매출이 2003년에는 94억 7천만달러 규모로 줄어 들었다.
SAP는 지난해 전세계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라클은 피플소프트를 인수함으로써, 점유율을 끌어올렸지만 SAP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
오라클은 M&A를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를 발판으로 사실상 SAP와 전면전에 들어간다는 전략. 영업과 마케팅의 무게중심도 애플리케이션에 맞추기로 했다.
데렉 윌리암스 오라클 아태지역 총괄 사장은 "최근 달성한 아태지역의 괄목할만한 매출 성장은 애플리케이션 사업의 고성장과 기술 부문에서 확보한 경쟁 우위 덕분이었다"면서 "피플소프트 인수는 오라클이 아태지역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오라클도 마찬가지.
그나마 한국오라클의 비즈니스애플리케이션 사업은 오라클 전체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도 SAP코리아와 비교하면 여전히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한 때 따라붙었다가 다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라클 프로필
설립연도 | 1977년 |
본사 | 미국 샌프란시스코 |
직원수 | 5만여명 |
한국지사 설립 | 1989년 |
한국지사 직원수 | 700여명 |
◆연도별 오라클 매출 추이 (매 회계연도는 5월 31일 마감. 6월~5월) 단위 : 백만달러
연도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매출 | 102억3천100만 | 109억6천100만 | 96억7천300만 | 94억7천500만 | 101억5천600만 |
순익 | 62억9천700만 | 25억6천100만 | 22억2천400만 | 23억700만 | 26억8천100만 |
한국오라클은 2005년 애플리케이션 사업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한국오라클의 이교현 팀장은 "2005년 회계연도가 끝나는 5월까지는 인사관리, 제조, 중견중소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사업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세미나, 지방 로드쇼, 텔레마케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오라클의 마케팅과 영업 전략은 고객사 확보를 통한 애플리케이션 경쟁 우위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애플리케이션 사업 강화 의지를 천명했다.
◆ 조직도 애플리케이션 강화에 맞춰 대대적 개편
오라클은 애플리케이션 사업 강화를 위해 내부 조직에도 변화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오라클이 전세계 차원에서 단행한 조직 개편도 애플리케이션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오라클은 본사 차원에서 애플리케이션 사업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전담할 영업, 마케팅, 컨설팅, 지원 부서 등을 확대하고 있다.
이같은 행보는 아태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오라클은 13년 동안 컨설팅 및 비즈니스 개발 등의 요직을 거친 마크 깁스 부사장을 아태지역 애플리케이션 비즈니스 전담 임원으로 임명한 바 있다.
변화의 바람은 당연히 한국오라클도 강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오라클은 새로운 지사장 선임과 함께 회사 설립이후 가장 큰 조직의 변화를 맞았다.
영업 및 컨설팅 서비스 조직을 ▲ 산업 ▲ 기술 ▲ 애플리케이션 ▲지오그라피(Geographies)로 크게 4개의 본부로 새로 짰다. 산업본부는 공공, 금융, 통신 등 3개 산업을 산업별로 전담하는 조직으로 다시 나뉜다. 사실상 영업 및 컨설팅 조직이 3개 주요 핵심산업군으로 재편된 셈이다.
애플리케이션본부는 ERP를 포함한 CRM, SCM, BI 등 애플리케이션 영업 및 컨설팅을 담당한다. 애플리케이션 사업 자체를 또 하나의 축으로 별도 구축한 것이다. 앞으로 오라클은 DB 업체가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업체라는 점을 집중 부각하겠다는 의지의 단면이다.
기술(Technology)본부는 오라클의 전통 제품인 DB와 미들웨어, 개발도구 등을 맡는다. 나머지 지오그라피 영역은 산업, 기술, 애플리케이션 3개 영역을 총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조직의 구성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산업, 기술, 애플리케이션 3개 본부는 이제 각 본부장이 영업 전반을 책임지게 된다. 각 본부장은 또 아태지역 본사에 직접 업무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는다.
애플리케이션 사업 강화를 위해 전세계 지사를 중앙에서 집중관리하겠다는 본사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한국적' 특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던 한국오라클이 글로벌 시스템의 엄격한 관리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이때문에 한국오라클이 '글로벌화를 강화한다'는 평가까지 받게한 배경이다.
한국오라클의 이교현 팀장은 "영업까지 아태지역에 직접 보고를 하는 것은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오라클은 최근 ERP 파트너사도 늘렸다. 한국후지쯔에 이어 자사의 두번째 SMB 솔루션 신규 협력사로 오랫동안 오라클 ERP 사업을 해온 넥서브를 추가했다.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본부의 원문경씨를 한국오라클의 애플리케이션 담당 본부장으로 발령하기도 했다.
업계 곳곳에 포진한 한국오라클 출신들 지난 89년 설립된 한국오라클은 오랜 역사 만큼 IT업계에 광범위한 자사 출신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사관학교 역할을 한 셈이다. 한국오라클 출신들은 다국적 IT업체는 물론 벤처기업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한국오라클 초대 지사장을 지낸 강병제씨. 10년간 지사장을 지내며 한국오라클의 오늘을 있게한 주역이기도 한 강병제씨는 지금 데이터통합 솔루션 업체 인포매티카의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인포매티카의 한국지사 이영수 지사장 역시 한국오라클 출신이다. 한국오라클 2대 지사장을 역임한 윤문석씨는 스토리지 관리 솔루션 업체 한국베리타스소프트웨어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윤문석 사장은 또 시만텍이 베리타스를 합병함에 따라 한국베리타스와 시만텍코리아의 통합법인까지 책임지게 된다. SAP코리아를 거쳐 웹메소드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최승억 사장도 대표적인 한국오라클 출신 인물. 마케팅 본부장 출신인 홍정화씨는 스토리지 업체인 네트워크어플라이언스코리아(넷앱코리아) 지사장으로 근무중이다. 장동인 SAS코리아 부사장도 한국오라클에서 DW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벤처기업에서도 한국오라클 출신들의 활약상은 이어지고 있다. 보안 관제 업체인 코코넛의 조석일 사장도 한국IBM을 거쳐 한국오라클에서 영업맨으로 근무한 바 있다. 메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으로 주목받고 있는 알티베이스의 김기완 사장도 한국오라클 출신이다. 데이터웨어하우스(DW) 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화식 엔코아컨설팅 사장도 한국오라클을 거쳐 지금은 데이터 컨설팅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 한국오라클 출신들은 DBMS 성능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 '친정'과 긴밀하게 협력하거나 때로는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 숙적 SAP와 전면전 예고 한국오라클의 이같은 행보는 결국 SAP코리아와 정면충돌을 예고한다. 한국오라클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SAP도 "덤빌테면 덤벼봐라"며 맞불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양사간 신경전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SAP코리아가 애플리케이션 시장 점유율면에서 한국오라클을 앞선다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에 대해 한국오라클은 "국내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SAP와의 격차는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라클은 피플소프트나 레텍 인수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사업에서 한숨을 돌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장 점유율 상승도 기대된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는 피플소프트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사의 합병이 한국 시장에서까지 직접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중앙집중 관리하에 애플리케이션 강화를 선언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오라클의 행보는 주목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국내 DB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이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마케팅에 나선다면 시장은 요동을 칠 수 밖에 없다. 한국오라클은 또 '강력한 마케팅'으로 단시간에 시장을 장악한 경험이 있다. 오라클 본사에조차 '입김이 강한' 지사 가운데 하나였다. 기업용 SW 시장에서 한국오라클의 행보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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