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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받는 글로벌IT기업 - 하] 아시아 전략 전면 수정 바람...후폭풍 거세다


 

오라클은 지난해 9월 조직 개편을 통해 4개의 권역(한국, 호주·뉴질랜드, 중국, 동남아시아)으로 나눠어 있던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를 하나로 통합했다.

권역별로 존재하던 수장들을 없애고 아태지역본부에서 사업을 총괄, 업무 효율성을 강화하고 지사간 공조체계도 도모해보자는게 목적이었다.

이렇게 되자 한국오라클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과거에는 한국지사가 현지 비즈니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면, 이제는 본사가 주요 전략을 세우고 지사들이 그것을 함께 실행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전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흐름에 따라 중앙집중화란 거대한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오라클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국IBM, 한국HP 등 대다수 다국적IT기업 한국법인들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폭풍의 현장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의 이같은 변화에는 각국 법인들이 갖고 있던 독자적인 색깔을 줄이는 대신 전세계 법인들간 공조체제를 강화해보자는 의지가 깔려 있다.

이른바 '분산에서 통합으로'의 변화다. 목적은 중국과 인도 시장의 급부상에 대비하고, 세계화 확산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은 행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속한 현지법인들에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레이트차이나 돌풍, "아시아 전략을 수정하라"

글로벌 IT기업들이 아태지역 시장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께부터다.

'그레이트차이나'(Great China: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로 불리우는 중화권 시장을 놓칠 경우 성장 잠재력을 잃을수 있다는 판단 하에 물량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외국기업의 중국내 직접투자는 99년 403억달러에서 2005년 1천억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400개 기업이 중국에서 200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연구개발 거점만 해도 120여개에 이른다.

IT기업중에서는 IBM, 모토롤라, 인텔, MS, SAP, 오라클 등이 중국 현지에서 R&D센터를 운영중이거나 운영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는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바야흐로 '그레이트차이나' 전성시대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한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중국 시장의 급성장은 급기야 글로벌 IT업체들의 아시아 전략 수정이란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한국법인들에도 거대한 변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 외국계 IT업체 관계자는 "이제 IT는 신규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 기존 산업군에 편입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급성장하는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집중적인 관리 방식을 도입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IT업체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년 전부터 아태지역 본부에서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그레이트차이나'를 별도로 분리시켰다. MS 아태지역 본부는 한국은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로 축소됐다.

한국MS의 서민석 차장은 "이같은 변화는 성장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라클의 변화에도 중국 시장에 대한 잠재력이 감안돼 있다. 오라클은 현재 아태지역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중국 고객을 한국지사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나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아예 아태지역 본부를 없애버렸다. 이에 따라 한국썬의 경우 썬 본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한국썬은 "본사와 의사 소통에 있어 효율성을 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SAP도 올해 초 일본을 아·태지역에 포함시켜 4개의 허브 권역으로 나누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한국을 포함한 중국, 대만, 홍콩 등은 북아시아허브 권역에 포함됐다.

SAP코리아는 "아·태지역이 4개의 허브로 묶이면서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지원이 한층 용이해졌다"면서 "특히 중국에 진출한 국내 고객사들의 지원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베인옥슬리로 대표되는 기업 규제 강화정책도 글로벌 IT기업들의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자치를 허락했다면, 이제는 통합 관리하지 않으면 큰코 다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2년 엔론과 월드컴 등 대형 회계부정으로 금융시장이 휘청거린 후 사베인옥슬리법을 도입해 상장기업에 대한 엄격한 외부감사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스피처 총장과 증권거래위원회(SEC)도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제약, 보험 등 상장기업에 대한 감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사베인옥슬리법은 미국이 월드컴 등 회계 부정 사건 이후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경영인증, 공시절차, 회계관리 시스템 등의 분야에서 규정을 과거보다 강화한 게 특징이다.

상위관리자와 하위관리자 각각의 직무활동이 직접연계돼 책임소재가 명확해지고 기업 안의 수평적, 수직적 의사소통 증대로 기업경영의 효율성이 증대되며 위험평가가 수시로 이뤄져 여러 위험에 따른 관리 및 통제가 효과적으로 배분된다.

다국적기업 입장에서 보면 각국 현지법인들의 관리를 좀 더 타이트하게 할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지사들, 성격이 변화한다

본사 차원의 아시아 전략 수정은 글로벌 IT기업들의 한국법인들이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몰고오고 있다. 다른 현지법인들과의 정보 교류와 업무 공조가 활발해지고 있다. 변화를 부담스러워 하는 장면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한국MS의 경우 중국이 아태지역에서 떨어져 나감에 따라 중국MS와 경쟁 및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중국과 같이 묶여 있을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은 아태지역을 위해 한목소리를 보였지만 이제는 본사를 상대로 경쟁하기도 하는 관계로 변화한 것.

한국MS의 서민석 차장은 "얼핏 보면 국가간 공조란 말이 성립될 수도 있지만, 다국적 IT기업 현지법인들 사이에서도 엄연히 국제정치학적인 역학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MS 입장에서 보면 본사를 상대로 뭔가를 끌어오려면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오라클 본사는 지난해 9월 조직 개편을 통해 세계 시장을 미국/캐나다/남아메리카, 유럽과 중동, 아태지역 등 3개로 나눴다. 이에 따라 오라클은 비용 절감 효과는 물론 한국에서 '빅딜'이 있을 때 본사나 다른 나라 지사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같은 변화는 독자적인 색깔을 강하게 유지해온 한국오라클의 일하는 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사업 부문별 수장들이 아태지역에 있는 상급자들에게 직접 업무 보고를 한다. 한국의 특성이 적지 않게 반영돼 왔던 영업도 예외는 없다.

한국오라클의 이교현 팀장은 "영업까지 아태지역에 직접 보고를 하는 것은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또 "본사와 정보 교류가 많아지면서 본사 차원에서 정해진 정책은 한국에서 유연성을 갖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라며 "유지보수 정책의 변화도 그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도 2004년 후반부터 본사 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권에 직접 들어섰다. 그 전에만 해도 썬은 본사와 아태지역본부 그리고 현지법인으로 이어지는 조직체계를 유지해왔다.

한국썬 관계자는 "본사 밑에 15개의 조직이 존재하고 있으며, 한국지사도 그중의 하나로 포함돼 있다"면서 "이같은 변화는 본사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고 본사의 방침이 지사에 빠르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의 시대, 한국지사들의 과제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한국에 모바일 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개소식에 참석한 MS 본사의 피터 크눅 부사장은 "이동통신 챔피언인 한국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을 의미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크눅 부사장의 발언은 한국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 한국 시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 공략용임을 의미한다.

한국의 이동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차세대 이동통신 단말기 개발에 참여, 중국을 포함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글로벌 IT기업의 한국 지사들에 과거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은 중국과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규모를 넘어 한국의 강점을 인프라 삼아 더 넒은 시장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MS의 서민석 차장은 "한국MS에게 남은 과제는 한국 시장의 가치를 높이고 본사에 한국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한국 시장의 가능성은 규모 중심의 논리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시장+알파'를 갖고 본사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으면 지원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MS는 모바일연구소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2년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요청한게 아니라, 한국을 기반으로 세계로 갈수 있는 가능성을 본사에 심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한국MS의 설명이다.

한국보다는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 시장을 중심으로한 하나의 아시아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글로벌 IT기업들.

이같은 상황은 이들 기업들의 한국법인들에게 본사를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개발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목소리를 유지하기가 점점더 어려워질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로 다가오고 있다.

황치규기자 de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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