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심사위원 속인 '13세 유진'…기술인가, 꼼수인가


64년 만에 튜링테스트 통과…일부선 "과장됐다" 비판도

[김익현기자] ‘유진’이는 2012년에도 한 차례 도전했다. 당시 그의 타율은 2할9푼. 한 끗 차이로 ‘기준선’인 3할 벽을 뚫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던진 도전장. 이번엔 3할3푼이란 뛰어난 타율을 기록했다. 마침내 64년 동안 ‘마의 벽’으로 통했던 3할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지난 6월 7일 영국 런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왕립학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 얘기다. 이번 테스트는 레딩대학 시스템공학부와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원을 받는 로봇기술 법제 관련 기관인 ‘로보로’가 공동 주최했다.

튜링 테스트는 앨런 튜링이 지난 1950년 제안한 인공지능 컴퓨터 판별법. 앨런 튜링은 당시 “컴퓨터의 반응을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생각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튜링 테스트란 것을 제안했다.

총 5분 동안 대화를 한 뒤 심사위원 30%가 컴퓨터인지 인간인지 구분하지 못할 경우엔 ‘합격’ 판정을 하는 것이 튜링 테스트의 골자. 테스트가 제안된 지 64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공식 합격증을 받아든 컴퓨터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심사위원 33% "유진이는 열 세살 소년" 믿어

다시 6월7일 왕립학회로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자. 이날은 마침 테스트 고안자인 앨런 튜링이 사망한 지 60주기가 되는 날. 그만큼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이날 테스트 참가자(?)는 총 5명이었다. 유진 구스트만은 5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전문가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 난 유진이라고 해. 햄버거와 사탕을 좋아해. 우크라이나에 살고, 올해 열 세살이야. 아빤 산부인과 의사.”

아마도 유진이는 이렇게 자기 소개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5분 간의 대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상대방은 방금 자신들과 채팅을 한 것이 13세 소년이 맞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세 명 중 한 명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유진 구스트만은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이 아니라 컴퓨터였다. 대화 상대방으로 나선 컴퓨터 전문가 세 명 중 한 명은 유진에게 깜빡 속았다.

언뜻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은 수치. 하지만 앨런 튜링이 64년 전 설정한 30%를 사상 최초로 넘어선 순간이었다.

물론 유진 구스트만의 얘기가 전부 ‘뻥’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01년 탄생해 13세가 맞다. ‘유진 구스트만’은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베셀로프와 우크라이나 출신 유진 뎀첸코가 공동 개발했다.

세계 컴퓨터 과학계는 뜻 깊은 성과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고 있다. 너나할 것 없이 유진이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번 테스트를 공동 주최한 레딩대학은 튜링 테스트 통과로 컴퓨터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선언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가디언은 가상의 13세 소년이 사상 최초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평범한 제목으로 이번 소식을 전하고 있다.

IT 전문 매체 더버지는 기사에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담았다. 특히 유진 구스트만이 지난 2012년 29%를 속이면서 아깝게 탈락했던 사실도 함께 전해줬다. 하지만 더버지는 이번 테스트 통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등에서 볼 수 있는 똑똑한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다고 소개했다.

◆기술의 승리인가, 꼼수인가

상반된 의견을 제시한 매체도 있다. io9.com이란 매체다. 특히 이 매체는 기존 보도를 뒤집는 흥미로운 지적을 해 관심을 모았다. 지적 내용은 크게 세 갸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유진이의 정체. 대부분의 보도와 달리 유진 구스트만은 슈퍼컴퓨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냥 채팅 로봇일 뿐이란 것.

바로 13세 소년으로 가장했다는 점이다. 그 덕에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여도 심사위원들이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io9은 기술적으론 타당한 선택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아주 인상적인 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마지막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튜링 테스트’의 본래 의도와 달리 유진 구스트만은 ‘인지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컴퓨터가 아니란 것. 그냥 수 많은 인간의 대화를 데이터베이스로 시뮬레이션했을 따름이다.

한 마디로 앨런 튜링이 이번 테스트를 고안할 당시 이상으로 설정했든 자기 판단 능력을 갖춘 컴퓨터는 아니라는 비판이었다.

64년 동안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튜링 테스트. 열 세살 유진이는 멋지게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찬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되는 ‘과장’ 비판도 새겨들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앨런 튜링이 처음에 제기한 ‘독자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는 컴퓨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판단은 과학계의 몫이긴 하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심사위원 속인 '13세 유진'…기술인가, 꼼수인가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