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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휴대폰 새판짜기 미룰수없다


 

'SK텔레콤의 휴대폰사업 확대를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IT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동통신시장에서 절대강자인 SKT의 휴대폰사업 확대를 허용할 경우, SKT가 통신서비스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단말기시장에서 횡포를 부릴 거라는 논리로 기존 휴대폰업체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이에 반해 SKT는 인수하려던 업체들이 국내에서는 팔리지 않는 GSM단말기업체들로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것이란 논리를 펴고, 지금이 어느 땐데 서비스업체가 자회사 밀어주기로 다른 단말기업체를 차별할 수 있겠느냐며 반박하고 있다.

정통부는 휴대폰업체들의 편을 들어, SKT의 휴대폰사업을 견제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내부문건을 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신서비스업체의 단말기사업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그룹의 사업확대'에서 벗어나 관련 업체들이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심층부에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고, 국회의원들을 로비에 활용하는 등 이미 이권사업으로 변질하고 있다.

정부와 업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부분들이 많다. 각자 서있는 환경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문제의 본질은 'SKT를 규제하느냐, 풀어주느냐'가 아니다.

최근 수년간 한국경제의 효자산업으로 성장해온 휴대폰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중견 휴대폰업체들이 급변하는 시장변화에 경쟁력을 잃고 무너지는 현상을 정부와 우리 경제가 어떻게 이해하고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거대시장 중국의 성장과 함께 중국으로, 중국으로 갔던 휴대폰업체들이 몇년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다가 과열경쟁으로 시장에서 실패한후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잘 나가던 중견 휴대폰업체들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세원텔레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텔슨이 부도처리 되었으며, 세원의 자회사였던 맥슨텔레콤도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사업상의 어려움 외에도 금융권의 무차별 자금회수로 인해 정상적인 제조 및 영업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앉아서 회사 문을 닫는 고사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들 뿐만 아니다. 이들 업체들과 관련된 개발업체, 부품업체, 그리고 이들의 영업망도 연쇄 도산의 위기에 빠져 있다. 2000년 이후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국내 IT분야중에서 그나마 활기를 잃지 않았던 휴대폰분야가 침체에 빠지고 일각이 와해되는 격렬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성장하는 기업도 있고 경쟁에서 도태되어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성장하는 기업이 도태당한 기업의 기술,노하우와 인력을 흡수해 산업 전체적으로는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휴대폰산업의 현실을 보면 삼성 LG 팬택 등 기존 휴대폰업체들은 이들을 흡수할 여력이나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결국 이들 휴대폰업체들을 인수할 대상으로는 SK KT 등 통신서비스업체나 외국기업들 뿐이다. 통신서비스업체들은 모바일사업 확대와 해외진출을 위해 그동안 꾸준히 단말기사업에 진출을 노려왔다. 투자여력도 갖추고 있다. 다만 정부의 입김이 강한 통신서비스사업의 특성상 휴대폰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리 정부의 사전승인 또는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특정 산업의 이해관계에 개입하기 보다는 시장원리에 맡겨두고 인프라나 연구개발 등 산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에 큰 타격을 주고, 미래 성장동력을 저해하거나 경제전반에 부담을 준다면 정부는 어떤 식으로 든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견 휴대폰업체들의 위기에 정부가 적극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이유로 네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우리나라 대표적인 수출상품인 휴대폰산업의 경쟁력이 손상을 입어서는 안된다. 한국 휴대폰산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라는 삼성도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 도전하는 중견기업들이 있어야만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나은 제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도전적이고 젊은 중소기업들이 무너진후 대기업들만 살아남는다면 우리나라 휴대폰산업은 ‘입술이 없어 이가 시린’ 순망치한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벤처기업 수준의 수많은 휴대폰 개발회사들은 대기업의 하청 또는 용역업체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둘째, 정부가 10년후를 내다보고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신성장동력의 핵심은 모바일산업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유무선 통신인프라와 맹렬한 소비패턴을 가진 국내 소비자를 바탕으로 우리나라가 10년후에도 경쟁력을 가지고 주력 수출상품을 배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는 모바일산업 밖에 없다. 이 모바일산업을 제대로 육성하려면 휴대폰과 관련 부품업체, 개발업체들이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 산업의 뿌리가 굳건해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휴대폰업체들의 연쇄도산은 가뜩이나 침체의 늪에 빠진 증시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 올해 코스닥에 등록한 업체들 중에서 모바일 관련 업체들이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 이미 우리 증시는 개미들이 거의 빠져나가 외국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개미들이 증시에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실력있는 벤처기업들이 대박을 터뜨려 성공신화를 만들어내고 투자자들에게 부동산 등 어느 곳에 투자한 것보다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 이유는 고용문제다. 어느 경제학자는 산업연관효과를 자동차 7대1, 휴대폰은 3대1, 반도체 0.5대1로 설명한다. 현대차 같은 자동차회사가 잘 굴러가면 이 회사가 고용한 인력의 7배나 되는 노동자를 부품회사나 영업망, 연구개발업체들이 고용하게 된다는 얘기다.

휴대폰도 자동차만큼은 안되지만 IT분야에서는 전후방 고용효과가 큰 산업분야다. 중견 휴대폰업체들이 무너지면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미 청년실업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이들의 소비부진으로 내수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는 더 이상 휴대폰업체들의 어려움에 팔짱을 끼고 있을 처지가 못된다.

정통부는 매달 IT수출실적을 자료로 낸다. 마치 정부가 잘해서 수출실적을 올리는 것처럼...그중 가장 큰 부분이 휴대폰이다. 자랑할 때만 내 자식이라고 하지 말고 자식이 어려울 때 해결방안을 찾아 고심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특정 그룹을 제한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는 꼼수를 쓰지 말아야 한다. 휴대폰산업 전반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어떻게 중견 휴대폰업체들의 구조조정을 무리없이 마무리지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제라도 장관이 직접 나서서 현장의 소리를 듣고, 공청회 등 공개적인 방법으로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라. 하루를 더 늦추면 그만큼 업체들의 생존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국회도 이번 정기국회의 국정감사를 통해 재벌들의 논리나 대변하거나 그들의 논리에 장단을 맞추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현장을 찾아 보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김학진 편집국장 jean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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