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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휴대폰업계, 비상구는 없나-상] 그들만의 외로운 사투


 

불과 1, 2년 전만 해도 해외시장을 누비면서 한국 휴대폰 수출의 한축을 맡았던 중견 휴대폰 업체들이 올들어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 과거의 늠름했던 수출 전사의 기상은 더 이상 찾아 보기가 힘들다. 그마나 비상구로 여겨지고 있는 M&A(인수합병)도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질 않아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아이뉴스24는 '중견 휴대폰 업계, 비상구는 없나'라는 시리즈를 통해 국내 중견 휴대폰 업체들이 처한 현실과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 해법 등을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

강남대로를 따라 양재역 방향으로 가는 언덕 초입에 '텔슨'이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고층빌딩이 하나 있다. 2000년 2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텔슨전자가 그해 매입한 건물이다. 하지만, 불과 3년만에 건물을 팔았고 이달 말에는 그나마 임대로 쓰고 있던 사무실도 비어 줘야 한다. 텔슨전자는 추석이 지나면 짐을 챙겨 서울 구로구로 사무실을 옮길 예정이다.

그 뿐 아니다. 텔슨전자는 이미 휴대폰 제조사의 핵심 경쟁력인 개발 부문의 인력 수를 지난해부터 줄이기 시작해 현재는 절반 수준인 200명까지 줄인 상태다. 또 극약 처방인 연구소 매각도 추진할 만큼 사정은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법원에 신청한 화의가 오는 12월 확정되면, 적어도 3년을 보내야 다시 일어 설 수 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텔슨전자는 3년여 전 세계 1위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와 손잡고 CDMA 사업을 하기도 했던 대표 중견 휴대폰 제조사 중 하나다. 이 회사는 2001년 중국의 CDMA 서비스 도입으로 시작된 '차이나 드림'의 호황기를 누리다가 작년 초 사스사태, 중국 현지 업체들의 영토 확장 등으로 시작된 중국 발 악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지난 8월 화의를 신청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물론 1차적으로는 자기 책임이 크지만, 조금만 이상해도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금융권의 IMF식 관리 방식 때문에 정상적인 사업 유지가 거의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텔슨전자는 납입 자본금의 두배에 달하는 1천억원을 최근 금융권에 회수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벨웨이브는 지난 해 중소기업 수출 1위를 거머 쥘 만큼 수출 역군으로 잘 나갔던 중견 휴대폰 업체다. 하지만, 이달 초 창립기념일을 몇일 앞두고 뼈아픈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희망퇴직을 받아 100여명을 내보냈고, 이로 인해 회사 인원 수는 350여명에서 25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그마나 중견 업체들 가운데는 사정이 나은 것으로 알려진 벨웨이브조차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켜 가지 못한 것이다. 다른 업체들 사정은 불문가지다.

벨웨이브는 작년만 해도 4천여억원 매출에 400여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중견 휴대폰 제조사다. 하지만, 굳게 손을 잡고 사업을 해온 중국 현지 파트너가 등을 돌리면서 올들어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양기곤 벨웨이브 사장은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다. 재벌처럼 장기간 쌓여온 부실도 아니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을 뿐인데도 정부를 포함해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 주는 곳이 없다. 얼마 전만 해도 중소기업 중 수출 1위를 기록했던 적도 있는 데 말이다.

양 사장은 몇달 전 정부를 찾아가 금융권의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를 막아주고, 선별적으로 경쟁력있는 곳을 구분해 지원토록 유도해달라고 요구도 해 봤지만 허사였다. 그 이후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금융권의 시각만 더욱 싸늘하게 바뀌었다.

생존을 위해 혼자서 사투를 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중견 휴대폰 업체들의 냉엄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맥슨텔레콤은 대주주인 세원텔레콤이 지난 5월 법정관리를 맞은 뒤로 주인이 없는 공백기가 장기화되면서 급격히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1분기만 해도 900억여원에 달하던 매출이 2분기에 300억여원이 급감했으며, 영업적자은 무려 120여억원이나 발생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 3월 M&A 매물로 나온 뒤로 거래처들이 납품받는 것을 꺼려 하고 있다"며 "경영상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어야 거래를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영업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로, 같은 맥락에서 맥슨텔레콤이 인텔과 공동으로 개발해온 GPRS 엔터테인먼트 휴대폰 사업도 당초 2억달러어치를 사주기로 계약을 맺었던 영국 서비스 사업자 O2가 "안정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 경영 상태가 되면 그때 가서 사주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납품이 언제, 어떻게 중단될 지도 모르는 데 맥슨텔레콤을 믿고 어떻게 대대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맥슨텔레콤은 인텔의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화된 GPRS칩을 장착한 휴대폰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했는데도, 대주주인 세원텔레콤의 몰락과 M&A 지연으로 독보적인 기술력을 사장시키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나마 건실했던 맥슨텔레콤도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그나마 자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고 있는 덴마크의 R&D연구소를 처분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또한 안팎의 우려다.

중견 휴대폰 업계의 위기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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