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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삭제' 특허소송 최대변수 부상


삼성 "애플도 훼손"…애플 "삼성과 우린 경우가 달라"

[김익현기자] '이메일 삭제 변수'는 어느 쪽으로 튈까? 삼성의 '물귀신 작전'은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2주 째 접어든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전쟁이 갈수록 불을 뿜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 달 30일(이하 현지 시간) 소송이 시작된 이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지난 주 법정에서 기각된 증거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면서 한 차례 공방을 몰고 왔다. 다분히 여론 전쟁을 의식한 회심의 한 수였다. 삼성 측 존 퀸 변호사는 "배심원들은 재판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삼성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바로 이메일 삭제 건이다.

폴 그레월 연방 치안판사는 이번 재판 시작 전인 지난 달 25일 삼성이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메일 증거자료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는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판결에 따라 삼성은 삭제된 이메일과 관련된 사안에선 '불리한 추정(adverse inference)'을 받게 됐다.

◆삼성, '불리한 추정' 명령 이틀 뒤 곧바로 애플 공격

삼성은 '이메일 삭제' 건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반격에 나섰다. 특허 전문 사이트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삼성은 폴 그레월 연방치안판사가 '불리한 추정' 판결을 한 지 이틀 만에 애플 역시 이메일 자료를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불리한 추정' 결정을 무효화하기 위한 전략에도 착수했다. 이번 이메일 삭제 건에 대해 연방 치안판사가 '불리한 추정' 명령을 내린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것. 삼성 측은 "(불리한 추정 같은 중요한 결정은) 연방 치안판사가 아니라 재판을 이끌고 있는 루시 고 판사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 사법 체계의 위계구조를 잘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연방 치안판사(magistrate judge)는 지역법원 판사를 보좌하기 위해 임명된 판사를 말한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 인준 과정을 거치는 지방 판사(district judge)와 달리 치안 판사는 특정 지역 지방판사들의 투표를 통해 임명한다.

임기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종신직인 지방판사와 달리 연방 치안판사는 임기가 정해져 있다. 통상 8년 정규직이나 4년 파트타임으로 복무하는 것. 루시 고 판사와 폴 그레월 연방치안판사의 지위는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삼성 측은 이런 점을 들어 재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리한 추정' 결정은 루시 고 판사가 직접 판단할 사안이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폴 그레월 치안 판사의 이번 결정은 잘못된 것이란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결국 ▲애플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이메일 증거 자료를 삭제했을 뿐 아니라 ▲치안 판사의 '불리한 추정' 결정이 원천적으로 잘못됐다는 두 가지 주장을 앞세워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은 '불리한 추정' 결정이 잘못됐다는 전제 하에 ▲삼성 뿐 아니라 애플에게도 같은 제재를 부과하거나 ▲두 회사 모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애플 "삭제가 기본인 삼성과 달리 우린 저장이 기본"

6일 속개된 재판에서는 '이메일 삭제건'도 이슈가 됐다. 애플 측은 이날 법원에 재출한 서류를 통해 "(삼성의 주장은) '나도(me too)' 같은 명령을 내려달라는 요구"라고 주장했다.

일단 삼성의 주장부터 살펴보자. 삼성은 법원에서 '불리한 추정' 명령을 받은 이틀 뒤인 지난 달 27일 "애플이 이번 재판과 관련이 있는 2010년 8월 이메일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폴 그레월 판사는 "애플의 이메일은 이번 건과 관련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삼성 측은 "삼성과 애플 두 회사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애플은 이날 법정 제출 자료를 통해 삼성의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일단 애플은 (삼성처럼) 주기적으로 메일을 삭제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여러 다른 소송들 때문에 직원들에게 소송 관련 이메일은 보관하라는 공지를 늘 한다고 해명했다.

특히 애플은 이날 문건을 통해 삼성과 애플 두 회사의 이메일 관리 시스템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부각했다.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애플은 "삼성이 (관련 메시지를) 보존하기 위해 긍정적인 행동(즉 저장)을 해야 하는 '옵트인'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반면, 애플은 (필요 없는 메시지를) 삭제할 때만 '삭제' 명령을 하도록 하는 '옵트아웃'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회사의 이메일 관리 방식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 애플 측 주장이다.

애플은 특히 삼성 측이 이번 소송과 관련 있는 자료 중 구체적으로 어떤 이메일이 삭제됐는지 적시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피고(즉 삼성)보다는 원고(즉 애플) 쪽이 소송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더 쉽게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란 삼성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애플은 삼성에 처음 특허 침해 통보를 한 이후 2010년 여름부터 1년 가까이 계속 협상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애플은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한 갤럭시 제품군이 출시된 2011년 봄에 삼성을 제소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삼성 역시도 조만간 애플이 소송할 것이란 사실을 충분한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애플 측 주장이다.

◆루시 고 판사, 사실과 전략적 고려 중 어느 쪽 택할까?

지금까지 재판 진행 상황을 보면 삼성이 예상 외로 선전을 하고 있다. 재판 시작 전 '일방적 열세'가 예상되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신종균 사장이 보낸 내부 이메일을 놓고 공방을 벌인 6일 공판에서도 애플의 예봉을 비교적 잘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제 아무리 선전을 하더라도 '이메일 삭제' 이슈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연방 치안판사의 결정에 따라 배심원들은 삼성이 증거를 '악의적으로' 훼손한 것으로 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이 판사의 결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긴 하지만, 삼성 입장에선 결코 유리할 것 없는 사안이다.

삼성이 '이메일 삭제' 건으로 제재를 받은 뒤 곧바로 반격을 가한 것도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판부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압박을 함으로써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다. '법정 기각 자료 언론 공개' 사건에 이어 이메일 삭제 건에 대해서도 '공정한 재판'을 회심의 카드로 내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특허 전문가인 플로리언 뮐러는 삼성이 패소할 경우 "1심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집중 부각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부분이 루시 고 판사에겐 은근한 압박 카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뮐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 고 판사는 지금까지 전략적 고려보다는 드러난 사실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런 접근 방식이 애플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삼성의 이런 전략에 대해 루시 고 판사는 어떻게 반응할까? 플로리언 뮐러의 전망처럼 애플 쪽에 유리한 결정을 할까? 아니면 좀 더 원만한 재판 진행을 위해 '양쪽 다 제재하거나, 아무 쪽도 제재하지 않는 결정'을 할까?

'이메일 삭제' 건을 둘러싼 공방은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는 삼성과 애플 간 세기의 특허 소송에서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루시 고 판사의 결정이 재판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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