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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잃은 SK號…앞날은?


오너리스크 장기화 타격 불가피…성장동력 멈추나

[정기수기자]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실형이 확정되면서 SK그룹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당초 SK그룹은 그동안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심문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리미진 이유가 충분해 파기환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에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 결정이 내려지는 등 그룹 총수에 대한 다소 완화된 사법부의 분위기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내심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의 동시 파기환송을 기대했고, 최소한 둘 중 한 명은 다시 재판을 받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선고 결과는 SK가 감안했던 여러가지 경우의 수 중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실형이 확정된 최 회장 형제는 이제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자리를 옮겨 남은 형기를 마치게 됐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은 가석방이나 특별사면이 없는 한 장기간 복역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징역 4년이 확정된 최태원 회장은 오는 2017년 9월까지 복역해야 한다. 최재원 부회장은 1심 구속기간 6개월을 뺀 2016년 9월까지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특별사면이나 가석방을 낙관하기에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최근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를 대상으로 한 특사나 가석방에 대해 강경한 방침을 세우고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설날을 앞두고 단행된 5천925명에 대한 첫 특별사면에서 정치인이나 재벌 등은 제외시켰다. 법무부 역시 지난해 7월 25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가석방 신청에 대해 '사회지도층이 조기 출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재계 관계자는 "특사나 가석방은 자칫 '대기업 총수 봐주기'라는 여론의 지탄을 받을 우려가 높다"면서 "정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허가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재계 서열 3위인 SK호(號)는 앞으로 남은 3년여간 선장 없이 기약없는 항해를 떠나야 하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지난해 16조원을 투자하고 8만명의 고용과 수출 82조원을 달성한 국내 굴지 대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SK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 회장 형제의 경영공백 장기화가 본인들이 직접 진두지휘 했던 대규모 신규 사업과 글로벌 사업 분야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SK는 이날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당분간 SK그룹은 각 계열사 전문 경영인이 이끌면서 그룹 전체 차원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논의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는 6개 위원회 중심으로 그룹을 경영하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더욱 강화해 오너 경영공백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해 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오너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국내기업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런 방식으로는 남은 최 회장 형제의 수감기간 동안 공백을 메우기가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실제 SK는 지난 1년간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집단경영체제의 실행을 통해 주요 계열사 경영과 일상적인 사업 전개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각종 신규 투자와 해외사업 추진 등이 사실상 '올 스톱' 되는 등 한계도 분명히 드러났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1년 브라질 광구를 매각해 거액의 현금을 확보했으나 1년 이상 투자를 못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지난해 호주 유류 공급업체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 예비입찰에 참여했으나 의사결정이 지연되면서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SK가 심혈을 기울였던 터키에서의 사업도 답보상태다. 국내 보안업계 2위 업체인 ADT캡스 인수도 중도에 포기한 바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실적을 올린 SK하이닉스 역시 최 회장의 부재로 경쟁업체보다 대응이 늦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가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해 준비해왔던 신수종 사업의 하나인 시스템 반도체 투자 등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서는 그룹 총수의 적시 투자 결정이 필효하지만 총수의 장기 공백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재원 부회장의 공백도 크다. SK E&S는 지난해 STX에너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지만, 결국 불참을 선언했다. SK E&S의 대표이사를 겸하는 최재원 부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1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다. 최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추가 투자도 불투명하다.

실적도 추락하고 있다. 최 회장의 경영공백이 장기화됨에 따라 지난해 그룹의 양대 주력 사업인 에너지·화학의 SK이노베이션과 정보통신의 SK텔레콤 모두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SK네트웍스, SK해운, SK건설 등 다수 계열사들은 실적 악화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각종 신규 투자와 해외사업 추진을 결정해야 하는 오너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뚜렷한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SK그룹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은 오너 리스크 장기화에 따라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년간 최 회장 대신 그룹을 이끌어왔던 김창근 의장에게 힘이 실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인 김 의장의 활동 영역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 경영인이 수조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최 회장은 물론 최 부회장까지 장기간 수감생활이 불가피한 만큼, 경영공백을 메꿀 뚜렷한 대안을 찾기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공백을 메꾸기 위해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경영참여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지분이 부족한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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