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KISTI의 과학향기]호르몬으로 미래 직업까지 알 수 있다고?


"아빠,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흠…, 역시 생각했던 대로야. 친구들에 비해 얼굴이 너부데데하고 약지도 길쭉한 것이, 태연이 너한테 미약한 CAH(선천성부신과형성증) 증상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구나. 정확한 건 병원에 가서 직접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말야."

"네에??!! 그게 뭔데요! 혹시 불치병에라도 걸린 건가요? 몇 개월이나 살 수 있대요? 흑흑~. 그동안 불효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아빠…."

"불효녀라는 걸 알고 있다니 다행이긴 한데, 네가 불치병에 걸린 비련의 연속극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구나. CAH는 부신과 성선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부족해지는 유전질환이란다. 엄마 뱃속에 있는 여아가 안드로겐(androgen), 즉 남성호르몬에 지나치게 노출된 경우에는 남자 같은 성향을 보이고 반대로 남아가 여성호르몬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여자 같은 성향을 보이는 증상을 말하지. 또 태아는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될수록 얼굴이 좌우로 넓고,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길다는 특징을 갖게 된단다. 그런데 태연이 넌 놀 때도 남자애들처럼 총이나 칼을 좋아하고, 얼굴은 넓으며, 약지는 긴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CAH가 약간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얘기야."

"네에? 그럼 곧 남자가 돼 버리는 건가요? 흑흑, 몇 개월이나 남았어요? 얼마나 여자로 살 수 있을까요?"

"아이고, 오버 좀 하지 마! CAH는 심할 경우 스테로이드 호르몬 부족 때문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약한 CAH를 보이는 사람은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어요. 남성적인 점을 잘 살려서 오히려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고 말이야."

"휴우~~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시지, 완전 겁먹었잖아요!!" "얼마 전에는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의 한 연구진이 9~26세의 남녀 125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CAH가 있는 여성은 엔지니어나 제트기 조종사처럼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회복지사나 교사와 같은 직업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단다. 실제로 커서 남성적인 직업을 갖는 경우도 많고 말이야. 다시 말해 호르몬만 가지고도 그 아이가 커서 어떤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연구진은 여자 아이들이 CAH가 있는지 없는지를 일찌감치 파악해서, CAH가 있는 아이에게는 어릴 때부터 과학·기술·공학·의학(STEM)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단다. 아이의 특성을 빨리 파악해 맞춤형 교육을 해주는 거니까 그만큼 성취도도 높을 거라는 얘기지."

"아, 그러니까 아빠는 제 적성을 미리 파악해서 능력을 키워주려는 것이었군요. 홍홍홍! 역시 아빠는 나만 사랑한다니깐~~."

이때 이야기를 듣던 말자가 끼어든다.

"그런데요, 정말로 궁금했던 게 있어요.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사람은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된 경우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약지가 긴 사람이 돈도 잘 번다는데 진짜예요?"

"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야. 남성호르몬이 많은 사람들은 승부욕이 강하고 공격적이며 매우 적극적인 경우가 많단다.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이 승부욕이 적고 수동적인 사람들 보다는 성공하거나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높지 않겠니?"

"그럼 얼굴이 널찍한 사람들도 부자가 많겠네요?"

"실제로 미국 밀워키캠퍼스의 한 연구진이 미국 최대기업 55개사의 CEO 얼굴을 분석해 본 결과, 널찍한 얼굴의 CEO가 이끄는 회사는 뾰족한 얼굴의 CEO가 경영하는 회사에 비해 재무적으로 훨씬 뛰어난 실적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단다. 또 복싱 같은 격렬한 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넓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남성호르몬이 치열한 승부세계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지. 또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도 호르몬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해가 된단다. 용감한 자 즉, 남성호르몬이 많은 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미인에게 구애를 할 수 있으니 미인의 사랑을 얻을 가능성도 훨씬 높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반대로 남성호르몬이 많은 사람들은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해 반칙을 하거나 무모한 위험을 무릅쓴다는 연구결과도 많단다."

"그럼 어차피 저는 남성호르몬 과다 분비자랑 결혼할 수밖에 없겠네요. 남성호르몬이 적은 사람은 저 같은 미인에게 감히 도전하지도 못 할 테니까요. 그런데 태연이 아버지는 어떤 쪽이세요? 남성호르몬이 많은 쪽? 적은 쪽? 태연이 어머니가 미인인 걸로 봐선 많은 쪽이신 거 같아요. 얼굴도 태연이처럼 너부데데하시잖아요."

"허허, 참. 나의 남성미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모양이구나."

아빠와 말자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태연이 아빠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소근거린다. 순간 아빠의 얼굴이 허옇게 뜨더니만 급히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태연에게 준다.

"뜻밖의 용돈 완전 감솨! 아빠가 원래는 뾰족 턱인데 넘치는 턱살 때문에 넓적해 보인다는 진실, 그리고 아빠의 찌질한 모습이 불쌍해 보여 모성애를 발휘한 엄마가 그냥 결혼해주기로 결심했다는 진실, 이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을 제 친구들에게 영원히 비밀로 해드립죠. 헤헤헤"

글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2024 iFORUM






alert

댓글 쓰기 제목 [KISTI의 과학향기]호르몬으로 미래 직업까지 알 수 있다고?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