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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행복]신민(新民)이 아닌 친민(親民)을 외쳤던 윤휴


이덕일의 <윤휴와 침묵의 제국>

[정종오 편집장] 추석이다. 명절에는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떨어져 있던 친족들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이 핀다. 이번 추석에는 어떤 이야기가 중심을 이룰까. 아마도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민주주의는 정당정치가 기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당들에 실망한 분들이 많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자(者)가 그 자(者)라고."

여당과 야당이 있지만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노라고. 선거 때만 되면 고민된다고. 찍을 자(者)가 없다고.

그런데 올 추석을 며칠 앞두고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시민단체 대표주자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불러일으킨 회오리가 크게 불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권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이 바람은 과연 왜 불고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친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윤휴

조선 효종과 현종, 숙종 대를 살았던 윤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덕일의 <윤휴와 침묵의 제국>은 당시 상황을 객관적 사료로 조망하면서 윤휴라는 인물의 종합적 평가에 나섰다. 윤휴는 오랫동안 '사문난적(성리학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던 인물이었다.

과연 그럴까.

윤휴는 효종과 현종이 여러 번 벼슬에 나오라고 강권했지만 한 번도 나선 적이 없었다. 그는 고향에서 책을 읽고 학문에만 매진했다. 여러 책을 편견 없이 독파하다 보니 자신만의 사고 시스템이 생겼다.

윤휴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단적인 부분은 '백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다. 윤휴는 먼저 <예기> 42편에 나오는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이라는 문구를 인용했다.

이 한자는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과 친한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이름에 있다."는 뜻이다.

백성을 '신민'의 관점으로 바라보던 조선의 주자 학자들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백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았다. 신분의 차이가 엄격하며 백성들은 사대부를 위해 존재한다는 우월적 관점이다.

반면 윤휴는 백성은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천하’라고 여겼다. 자신과 백성 사이에 계급적 차별이 없으며 백성은 정성과 신의가 있다고 여겼다.

◆윤휴의 대개혁…지패법과 호포법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민생 파탄이었다. 지금 대한민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계대출은 폭증하고 있고, 물가는 치솟고, 청년실업은 끝을 보이지 않고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폭증하고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을 겪으면서 백성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양란을 겪으면서 돈이 있는 양민들이 돈으로 양반을 사면서 세금을 내는 일반 백성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세금의 양은 늘고 세금 내는 백성은 줄어들었으니 세금의 몫이 두 배로 증가했다. 세금을 피해 도망가거나 유랑민이 되는 게 오히려 나았다. 아니면 산골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든가. 나라가 있는 게 오히려 더 힘든 폭정의 시대였다.

효종과 현종 때 끝내 벼슬길에 나서기를 거부한 윤휴는 마침내 숙종 1년에 궁궐로 들어간다. 윤휴의 대개혁이 시작됐다.

윤휴가 내놓은 개혁 법안은 지패법과 호포법이었다.

조선은 신분의 차이에 따라 재질이 다른 나무에 신분을 적은 호패법을 쓰고 있었다. 나무 재질에 따라 신분이 확연히 구분됐다. 윤휴는 이 호패법을 없애고 지패법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패법은 신분에 구별 없이 종이로 만든 신분증 제도를 실시하자는 것. 지금으로 따진다면 주민등록증과 같은 개념이다.

사대부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했다.

윤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호포법 개혁에도 나섰다. 세금을 내지 않던 양반들에게도 군포(군역에 대한 세금)를 받자는 것이었다. 양반의 인구를 정확히 계산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대개혁적인 발상이었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윤휴의 개혁 법안은 피폐된 삶을 되살리고 신분의 차별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민생법안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권력을 쥐고 있던 사대부들은 달랐다.

윤휴의 개혁안에 대해 당시 사관(史官)들 조차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사관은 지금으로 따지면 언론사 기자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사관들은 기사를 통해 "지패를 만들어 작은 주머니에 차니, 이때 사람들이 '소낭패(작은 주머니에 찬 지패)'가 '대낭패(아주 난감한 상황)'라고 말했다."고 이죽거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백성이 흉년으로 굶주리는데 주구(관청에서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것)를 더하고 밀속(비밀 단속)을 보태서 백성들의 원성이 길에 가득했지만 윤휴의 당은 이를 '기뻐하면서 북치고 춤춘다'고 일컬었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정론직필의 역할을 맡은 사관조차 윤휴의 개혁안에 왜곡된 여론을 이용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덕일 교수는 "숙종 때의 사관들은 서인(노론)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른바 춘추의 붓을 가졌다는 사관들의 시각이 이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대한민국의 몇몇 언론사들은 민심과 민의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심지어 사실을 왜곡해 자신들만의 특권을 맘껏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국민(백성)은 여전히 '신민', 즉 교화의 대상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덕일 교수는 <윤휴와 침묵의 시대>를 통해 윤휴가 살았던 시대는 "나라보다 당이 중시되는 시대, 군부보다 당수가 중시되는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투표에서 참패한 뒤 곧바로 사퇴한 것을 두고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당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당이 우선시되는 시대는 지금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덕일 교수는 개혁가 윤휴의 모습을 두고 "당시 사대부들은 어떤 지탄을 받아도 계급적 특권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었다.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을 추구하던 윤휴 같은 사대부는 소수였다."고 지적했다.

시대는 윤휴에게 더욱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달았다.

숙종 6년 윤휴가 속해 있었던 남인 정권이 몰락하고 서인 정권이 재집권한다. 이때부터 청남(남인의 한 파)에 속해 있었던 윤휴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끝내는 '사문난적'으로 지목돼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역사에서 거론되지 않을 만큼 핍박을 받았다.

◆윤휴 "백성은 신령하고 신의가 있다"

윤휴의 백성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실록 기록들이 많다. 그 중 한 문장을 보자. 윤휴는 숙종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신이 일찍이 생각하기를 지금 사대부들은 그 마음속에 이해가 엇갈리고 보고 들은 것이 지식을 가리기 때문에 의논이나 행동이 본심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민들은 비록 무식해도 하늘이 부여한 성품이 어줍지 않아 지극히 어리석은 듯 하면서도 신령하고 정성을 다하면서 신의가 있습니다."

윤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대부 보다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런 윤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 역사는 그렇게 조금씩 퇴보하고 있었다.

윤휴는 답답한 자신의 마음을 시로 나타내 보이기도 했다. 삼막사 망해루에 올라 시를 읊었다.

"푸른 산에 찬 기운 일어 망해루에 바람이 거세고/강구름이 비를 불러 해는 모래톱으로 사라지네/이때에 높이 올라 바라보는 것도 우연한 충성인데/눈 들어 산하를 보니 시름을 이길 수 없도다."

바람도 거세고, 해는 사라져 버리고, 시름을 이길 수 없다던 윤휴! 그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다.

윤휴의 개혁안이 좌절되면서 조선 역사는 퇴보하고 '침묵의 제국'으로 걸어들어 갔다. 사대부만의 나라, 사대부만의 권력, 사대부만의 정치가 조선후기 사회를 움직였다. 백성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박원순 이사와 안철수 교수가 불러온 회오리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이 불러일으킨 회오리는 거센 물결로 계속 뻗어나가고 있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다.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을 추구하던 윤휴 같은…'이라는 책 속의 문구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박원순과 안철수에게서 국민들은 그런 문구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이 주의 추천 전자책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박원순

출판사: 검둥소

가격: 7천500원

2006년 4월부터 근 3년 동안 지속했던 지역 탐사의 결과물. 저자는 2006년 3월 희망제작소를 창립하면서 "진리는 현장에 있다."는 신념을 발표하고, 이 시대의 문제를 푸는 대안과 해결 방법을 추상적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찾고자 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변호사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문재인의 운명>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문재인

출판사: 가교출판

가격: 1만80원

노 대통령이 생전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표현할 만큼 신뢰했던 평생의 동지, 문재인의 시각에서 본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언이다. 두 사람의 '운명' 같은 30년 동행을 통해서 본 자신의 삶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과 함께,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 비사 가운데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비밀의 도시>

장르: 소설

저자: 패트리스 채플린

출판사: 이덴슬리벨

가격: 6천500원

<비밀의 도시>는 성배 전설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관련해 일어난 실화를 기록한 이야기. 1950년대에서 1990년대 스페인 북부 카탈루냐의 고대 도시 지로나. 이곳에서 우리에게 <다빈치코드>로 꽤 유명한 성배의 전설을 좇는 모험이 벌어진다. <다빈치코드>가 액션 어드벤쳐 판타지를 기록했다면, 이 책은 실존 인물과 실존 장소를 바탕으로 리얼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개한다.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장르: 시/에세이/기행

저자: 김원

출판사: 링거스그룹

가격: 5천520원

창간 15주년을 맞이한 월간 의 발행인이자 아트디렉터(Art director)인 김원, 그의 첫 번째 작품집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가 출간됐다. 매달 를 통해 써왔던 [이달에 쓰는 편지]들을 엮은 글과 연필로 그린 듯한 선들이 간결한 느낌을 주는 그림, 익숙한 풍경에서 반짝거리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까지 만나볼 수 있다.

<리미트리스>

장르: 소설

저자: 앨런 글린

출판사: 스크린셀러

가격: 8천400원

주인공 에디가 MDT-48을 먹고 뇌의 잠재력이 100% 발휘되었을 때의 모습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강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빠르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 거기에 재치있고 힘있는 문체가 더해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중독성을 발휘한다.

<좌우파사전 -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두 개의 시선>

장르: 사회/정치/법률

저자: 구갑우 외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가격: 2만1천원

한국인의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핵심 의제 22개를 골라 이를 좌파와 우파의 시각이라는 틀로 해석한다. 하나의 개념, 하나의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는 두 시선을 교차시킴으로써 문제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사회의 발전 양상을 추적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하버드대 52주 행복 연습>

장르: 자기계발

저자: 탈 벤 샤하르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가격: 7천200원

엄청난 학습량과 치열한 학업경쟁으로 대표되는 하버드대학에서는 2002년부터 행복학 열풍이 불고 있다. 바로 <하버드대 52주 행복 연습>의 저자인 탈 벤-샤하르 교수의 <행복학 강의>가 그것. 이 책은 강의실에서 못 다한 이야기,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훈련법의 정수만을 뽑아 탄생했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장르: 사회/정치/법률

저자: 김지룡, 정준욱

출판사: 애플북스

가격: 7천250원

이 책은 '보이는 것이 전부 법은 아니다.'라는 명제로 무심코 지나쳤던 대중문화 속 '화제의 그 장면'을 통해 형법, 민법, 헌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딱딱하기만 한 기존의 법 관련 서적들과 달리 영화, 책, 드라마 등 대중문화를 예로 들어 스토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낸다.

<마의 산 -상>

장르: 소설

저자: 토마스 만

출판사: 을유문화사

가격: 7천500원

1913년 집필이 시작됐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여러 차례 작업이 중단됐다. 그 사이 작가는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글을 발표하며 점점 사회정치적인 상황에 깊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정치 및 사회의식이 대전환점을 맞이한 11년간의 시간 동안 토마스 만이 작가로서 자신의 정신적 삶의 궤적을 기록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주의 추천 전자책은 바디앤루니스(www.bandinlunis.com)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정종오 엠톡 편집장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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