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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희덕 작가 "우리 모두는 운명의 광대가 아닌, 웃음의 주인"


5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캐스팅’ 출간

[아이뉴스24 김태헌 기자] 진지한 사실주의 소설이나 순문학 작품이 아닌, 코미디 소설로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5년 만에 발간한 두 번째 작품 역시 코미디 소설이다. 코미디 장르로 장편소설을 쓰는 게 가능할까? ‘문학’을 하는 게 가능할까? 문단에서 보기 드물게 ‘코미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희덕 작가(44)를 만나 20일 그 얘기를 들어봤다.

우희덕 작가. [사진=우희덕 작가]
우희덕 작가. [사진=우희덕 작가]

△ ‘러블로그’ 이후 5년 만에 신간 ‘캐스팅’을 출간했다. 그간의 근황을 말해달라.

내 존재가 AI(인공지능)로 대체되지 않은 걸 보면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다. 2021년에 15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지금은 제주에 머물며 글을 쓰고 있다. 제주 생활을 시작한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정책주간지에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를 연재하며 차기작들을 준비했다. 올해 1월 발간된 ‘캐스팅’은 2019년부터 틈틈이 작업해 오던 작품인데,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며 살다 보니 완성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어 기쁘다.

△ 제주에서의 작품활동이 낭만적으로 들리는데?

글을 쓰기 위해 자발적 유배를 택한 셈인데, 낭만으로 끝났다. 섬에서의 생존을 다룬 ‘로빈슨 크루소’나 ‘캐스트 어웨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변덕이 심한 날씨와 끝없는 고독은 둘째치고 재정적인 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 글을 쓰며 산다는 것, 지금의 1년 수입은 직장 다닐 때의 한 달 수입에도 못 미친다. 정말 수렵과 채집을 해야 할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려고 한다. 어떻게든 글을 써보려고 한다.

△ SF 소설가, 추리소설가는 들어봤어도 ‘코미디 소설가’는 생소하다.

세상에서 가장 안 좋은 직업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웃기고 있네.’ ‘코미디 하네.’ ‘소설 쓰고 있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 모든 걸 하고 있는 게 코미디 소설가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새, 개구리, 리시스트라테 등)에서 코미디의 원류를 볼 수 있다.

△ 문단에서 보기 드문 코미디 문학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당연한 얘기지만 코미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며 세계문학전집대신 만화책만 보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연료 삼아 빛을 찾을 것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내 경우는 모든 희극적인 것들을 연료 삼아 글을 찾은 것이다. 소설가는 자신만의 장르와 예술 세계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미디 장르가 비록 호불호가 심하고, 일반적으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지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모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코미디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코미디를 한다.

우희덕 작가의 신작 캐스팅 표지. [사진=우희덕 작가]
우희덕 작가의 신작 캐스팅 표지. [사진=우희덕 작가]

△ ‘캐스팅’은 어떤 소설인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대형 기획사에서 나를 캐스팅해주길 바라며 쓴 소설은 아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진실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캐스팅’은 팟캐스트 방송과 캐스팅 작업을 둘러싼 이야기로, 서른세 살 남녀의 여름, 성장,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희극성을 극대화하며 마니아적인 코미디를 추구했던 ‘러블로그’와 달리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트래지코미디다.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들, 잊히고 있는 사람들이 되레 주인공들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아이러니가 담긴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이자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키워드인 ‘캐스팅’은 다의적 의미를 내포하는데, 특히 무엇을 던진다는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무엇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힘을 가진 이들이 축조한 게임 세계, 운명이라고 믿는 것의 부속물이 되기보다 자신을 던져 자신의 삶을 찾아 가는 것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주인공 모진수 피디가 마지막에 캐스팅하는 게 누구인지 맞혀보는 것도 소설의 묘미가 될 수 있다.

△ 불행 중 다행으로 바퀴벌레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죽어 있는 바퀴벌레만 있었다(63쪽).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양심에서 자유로웠다(135쪽). 사람들은 모두 같은 물건을 가지려고 해. 때로는 하나뿐인 자신을 싸게 팔아 필요도 없는 비싼 물건을 사려고 하지. 그들은 진짜를 알아보지 못해. 자신을 몰라. 레플리카를 보고 눈물을 흘려. 그래서 이렇게 물건이 많이 남아 있는 거야(149쪽). 소설 속 위트 있는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그런 표현들은 어떻게 떠올리나?

내 글에 대한 지인들의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네가 하는 농담 못 알아듣겠어.’

코미디는 감성이 아닌 이성의 산물이다. 지인들이 불신으로 대동단결한 이유를 곱씹어 보면 그 의미가 이해될 것이다. 나아가 유머(코미디)는 기술이나 형식이 아닌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될 수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같은 맥락으로 얘기한 바 있다. 사는 게 기쁘고 즐거워서 위트 있는 표현이 나오거나 코미디 소설을 쓰는 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그 속에서 문학적으로 길어 올릴 것들을 구조화하는 것뿐이다. 팟캐스트 듣기,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가만히 앉아서 관찰하기, 낯선 곳으로의 산책과 드라이브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는?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건 멋지고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큰 꿈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상을 희극적으로 변주해 작품으로 저장하고 싶다. ‘캐스팅’이 영상화되거나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것은 그래도 한번 꿈꿔보고 싶다. 로또를 사는 것도 이젠 지친다. 소설가로 성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든 작은 웃음을 건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웃음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코미디 소설가인 나부터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안 웃는 것보다는 억지로라도 웃는 게 낫고, 억지로 웃을 바에야 본인 스스로 주체적으로 웃는 게 나을 것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삶이 비극인 것은 아니다. 타나토스에 매몰되기보다는 살아 있음에, 현재에 집중하자. 운명을 비웃고 진리를 비웃자. 그것이 코미디다. 우리 모두는 운명의 광대가 아닌, 웃음의 주인이다.

우희덕 작가는?

1979년 서울 출생으로,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에서 15년 동안 일하며 퇴사 전까지 13년간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정책주간지 ‘공감’에 ‘우희덕의 코미디 로드’,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를 연재했다. 코미디 소설가인 그는 실험적인 작품부터 로맨틱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코미디 문학에 도전하고 있다.

/김태헌 기자(kth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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