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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소송 관건은 '신의칙' 인정 여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통상임금 소송 상반된 판결 많아

[아이뉴스24 윤선훈기자]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1심 판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자동차 업계는 물론 재계 전반이 이번 판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노사 간 통상임금 소송에서 재판부가 신의칙을 토대로 판결한 경우가 많았고, 기아차 사측도 신의칙에 의해 통상임금의 범위 등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신의칙이란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 2조 1항을 말한다. 법률 관계 대상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저버렸다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이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에서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도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됐다면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신의칙을 적용해 과거분 소급 지급은 허용하지 않았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사측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것을 고려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신의칙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요건으로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고 산정한 항목이 정기상여금일 것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인상률 등의 조건을 정함 ▲근로자가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으로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그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사정이 있을 경우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재판부는 갑을오토텍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분을 생산직 401명에게 적용 시 당기순이익의 99.8%(44억3천531만원)를 추가임금으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의 근거로 들었다. 이후 기업들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변경으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재판부 역시 통상임금 판결에서 신의칙을 적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지난 10일 실시한 통상임금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35개 기업 가운데 소송의 최대 쟁점으로 '소급지급 관련 신의칙 인정 여부'를 꼽은 기업이 23개(65.7%)로 가장 많았다. 신의칙이 쟁점이 된 이유로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 간 묵시적 합의·관행에 대한 불인정(32.6%)', '재무지표 외 업계현황, 산업특성, 미래 투자애로 등에 대한 미고려(25.6%)' 등이 꼽혔다.

기아차 외 현재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 판결들을 보면 여전히 신의칙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 지난 18일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 2심에서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임금협상 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러한 노사합의는 일반화돼 이미 관행으로 정착됐다"고 전제했다.

또 "근로자가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이러한 경우는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고 판결했다.

금호타이어 외에도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아시아나항공 등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2심까지 진행된 상태다. 이들 기업은 1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지 못했다가 2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삼성중공업, 만도 등은 현재 2심을 진행 중인데 만도가 1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은 반면 삼성중공업은 인정받지 못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신의칙 인정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1월 현대중공업은 2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으면서 6천295억원의 임금소급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반대로 같은 해 2월 삼성중공업은 1심에서 신의칙을 인정받지 못해 976억원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둘 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신의칙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모두 조선업황 침체로 인한 심각한 영업 부진을 겪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5년 1조5천401억원, 삼성중공업은 1조5천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렇기 때문에 둘 다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적용 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다고 볼 여지가 있었지만 판결은 상반됐다.

한경연 관계자는 "각 재판부마다 개별 기업의 경영상황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보다 보니 판결이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다"며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의칙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치 않다 보니, 금호타이어가 신의칙 적용을 받았다고 해서 기아차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거쳤을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된 반면 기아차는 지속적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다만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한 7천870억원에 머물렀다. 더욱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여파가 계속되는 등의 악재로 인해 3분기 전망도 좋지 않다. 기아차 측 변호인은 지난달 20일 최종변론에서 "노조 측 주장대로 통상임금이 맞다고 하더라도 신의칙 적용 문제는 사회적 파장이나 자동차산업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검토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기아차가 소송에서 패소할 시 최소 1조원에서 최대 3조원까지 추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3조원은 1차 집단소송 6천869억원, 대표소송 9천969억원에 2014년부터 현재까지 3년 간의 소급분과 이자비용 등을 포함한 수치다.

윤선훈기자 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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