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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겉도는 당진 어시장·이마트의 '상생' 실험


"장관상?, 물과 기름처럼 상권 분리…상가 분위기 전환·개선 절실"

[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노브랜드 입점 효과요? 전혀 못 느껴요. 한 건물에 같이 있을 뿐이지 서로 도움 주는 건 없어요."

지난 17일 찾은 충남 당진어시장은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500평 규모의 시장에서 장을 보는 고객은 겨우 다섯명. 어폐류 전문점에서 시세를 묻던 이들마저 사라지자 시장은 텅 빈 것처럼 조용했다.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눌 뿐 일반 어시장처럼 "무엇을 찾느냐", "싸게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반면 2층 노브랜드 매장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노브랜드 매장에서 유아용품을 산 후 맞은 편 '희망 장난감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젊은 주부들과 아이들로 복도는 혼잡스러웠다. 매장 안은 카트 한 가득 노브랜드 과자를 쓸어 담은 고등학생 무리로 왁자지껄 했다. 엄마를 따라온 초등학생들도 매장을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이마트가 전통시장과의 상생을 강조하며 '노브랜드 당진 상생스토어'의 문을 연지도 어느덧 1년. 그동안 노브랜드 당진 상생스토어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성공적인 상생모델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날 찾은 당진어시장은 1층 어시장과 2층 노브랜드 매장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돼 있었다. 상생보단 '어색한 동거'에 가까워보였다.

어시장에서 건어물을 판매하는 상인은 "노브랜드 입점 후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없다"며 "젊은 엄마들이 늘긴 했지만 노브랜드 매장만 들렀다 갈 뿐 어시장에서 뭔가를 사지는 않는다"고 토로했다. 노브랜드 매장에서 가공식품과 공산품을 구매하고, 어시장에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윈윈 효과'을 기대하기엔 1·2층 간 고객층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어시장 내 음식점을 운영하는 또 다른 상인도 "시장에 사람이 다녀야 매출도 올라가는 법인데 노브랜드 방문 고객은 건물 초입에 마련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바로 간다"며 "오히려 5일장 서는 날에 장사가 더 잘 돼 상인들 사이에서는 노브랜드보다 5일장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귀띔했다.

실제 노브랜드 매장에서 쇼핑을 마친 대부분의 고객들은 어시장을 둘러보지 않고 주차장으로 직행했다. 노브랜드 매장에서 대량의 생수와 가공식품을 구매한 박모씨는 "노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거나, 아이들과 장난감 도서관에 올 때만 당진어시장을 방문 한다"며 "1층 시장은 쇼핑하기 불편해 신선식품은 주로 (4km가량 떨어진) 롯데마트에서 구매한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노브랜드 매장 방문 고객 중 약 25%가 1층 어시장을 찾는다고 설명했지만, 어시장 상인들이 체감하는 방문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상황이 이러하니 1층 공실률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당진어시장 공실률은 16.21%로 노브랜드 입점 전보다 겨우 3.79% 오르는데 그쳤다. 여전히 시장 곳곳에는 빈 좌판이 이가 빠진 자리처럼 휑하게 남아있었다.

일각에서는 이마트가 '보여주기식 마케팅'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초 약속했던 경영 컨설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말린 생선을 팔던 한 상인은 "허구한 날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오지만 손님 수는 거기서 거기"라며 이마트로부터 매대·조명·상품진열 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았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런 적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상생, 이마트만의 과제 아냐…시장도 변화해야

다만 이마트의 노력만으로는 상생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노브랜드 입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려면 당진어시장 상인들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시장에서 수산물 도매업을 하는 송모 씨는 "시장 상인들이 주로 70~80대다 보니 변화에 둔감한 편"이라며 "노브랜드 매장도 젊은 고객들 선호도에 맞춰 품목이 수시로 바뀌는데 시장은 40년간 변화 없이 유지되다 보니 윈윈 효과가 잘 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상생을 위해서는 이마트 외에도 시장 상인의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당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김모 씨는 "당진어시장은 다른 어시장에 비해 활어나 생물 판매 비중이 낮아 지역민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다"며 "구경 차 한 번 갔다가 살 게 없어서 다시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시장을 방문한 20대 관광객도 "다른 어시장과 달리 횟감도 충분치 않고 물고기도 신선해보이지 않는다"며 빈 손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당진어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자 상인들도 썩을 것을 우려해 생물 판매 비중을 줄이면서 어시장 특색도 사라지고 방문객 수도 급감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진어시장에는 갈치와 고등어 등 일부 생선을 제외하고는 생물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조기·가자미 등 말린 생선과 젓갈류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더 많았다.

사실 당진어시장은 차로 1분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당진문예의전당과 같은 다중이용시설 등이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현대식 주차장과 깔끔한 화장실 등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고객 수가 점점 줄자 상인회 내부에서도 시장 분위기를 보다 젊게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어시장 출구에 자리 잡은 카페가 대표적인 사례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카페는 노브랜드 입점 후 매출액이 30~40% 늘었다. 카페 주인은 "젊은 손님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시장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라며 "노브랜드 입점 후 상가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시장도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마트는 다음 달 경기 안성 '안성맞춤시장'에 두번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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