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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강감독 "우리 아이가 볼 만화 어른이 지켜줘야"


올 겨울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31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돼 재개봉한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태권브이'와 이성강 감독의 '천년여우 여우비'가 각각 68만 명과 4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1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할리우드의 3D애니메이션과 미야자키 하야오를 앞세운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밀려 침체를 거듭하던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두 작품의 성과로 한층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다.

특히 40대의 아버지들의 향수에 기대지 않은 이성강 감독의 '천년여우 여우비'의 선전은 한국의 창작 애니메이션의 발전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작품 가운데 역대 흥행 3위의 흥행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성강 감독은 이미 2002년 개봉한 '마리 이야기'로 프랑스 앙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장편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천년여우 여우비'는 우리 고유의 구미호 설화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작품이다. '천년여우 여우비'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아쉬움을 남긴 이성강 감독을 2월 하순에 만나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와 한국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솔직히 더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 가지고 있다"

-'천년여우 여우비’가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어떤 기분인가?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좋은 결과일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다. 솔직히는 더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쉽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29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1백만 명 정도는 들어야 한다. 관람 숫자로 봤을 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겨울 개봉한 '태권브이'와 '여우비'가 합쳐서 한국애니메이션의 숙원인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좋은 일이다. 앞으로 하려는 기획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태권브이'가 잘 된게 40대 아버지들에게 호소했던 것이 잘 먹혔다. 특히 지금 40대 아버지들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 같다. 40대 아버지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영웅담과 '태권브이'가 맞아떨어진 것 같다. 다른 애니메이션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한다."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다고 들었다.

"'여우비'기획할 때 딸의 나이가 여우비 나이였다. 그때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들을 많이 참고 했다. 엉뚱하기도 하고 순진하기도 하고. 여우같기도 하고 떼쓰고 가끔은 아무생각 없이 욕도 하고 그런 나이. 열 살 나이 때 소녀를 표현한다는 말이 그런 식으로 들린 것 같다. 작품을 본 딸의 반응은 한마디로 '재미있다' 였다."

-왕따를 당하는 애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구미호 소녀가 왕따와 비슷한 처지다. 여우비도 사실 왕따다. 여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자기 마음도 그렇지 않은데. 그런 여우비의 처지를 비추어 봤을 때 아이들도 비슷한 왕따로 설정한 것이 맞겠다 싶었다. 어디가 비정상이고 장애아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공동체 속에서 의도적으로 소외당한 친구 하나의 개성들을 가지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이들. 그런 측면에서 여우비가 만나야 할 측면이 있더라."

-자연 풍경이 상당히 서정적이다.

"그런 풍경이 마음이 와 닿는다. 인의적이지 않은 풍경 속에 있어야 자연스럽다. 여우비에서 자연은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미적 가치는 자연스러움이다. 가공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 은근히 나타나는 한국의 아름다움. '여우비'에서 그런 것들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버스 장면은 가볍게 인용한 거라 생각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를 모방했다는 지적이 있다.

"아마도 버스가 떨어지는 장면일 것이다. 처음에는 고양이 버스로 만들려고 생각했다. 여우비가 100년 동안 살면서 본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걸 가볍게 생각하고 인용한거라고 생각했는데 스태프들이 말리더라. 인상 깊게 본 영화들에 대한 인용. 그런 요소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다. 일본 애니 마니아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창작 이란 것은 어차피 여러 곳에서 인용하고 모방할 수 있다. 근본적인 것만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마리 이야기'보다 '여우비'의 캐릭터가 강했다.

"작업들을 쭉 하다보니까 '마리 이야기'도 만들고 변해가는 것이 주로 인물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가더라. '마리 이야기'는 사실 상황중심이다. 사람들이 감정이입하고 그럴려면 철저하게 인물중심으로 되더라. 초등생을 타깃으로 작품을 구상하다보니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될 수 있으면 많이 나오도록 만들게 됐다."

-손예진의 목소리 연기에 대해 호평이 많다.

"'여우비'의 설정이 100년이나 산 소녀다. 처음에는 아예 어린 탤런트를 써볼까 생각했었다. 실제로 몇 몇 목소리를 조사해봤다. 아이들 목소리가 좀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서 어른들 선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성우분이 하셔도 무방했다고 보지만 '여우비'에 나와 있는 인물들 구성을 보면 비현실적인 인물이 있고 현실적인 부분이 있다. 이것들이 서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봤다. 손예진씨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여우비의 목소리를 굉장히 훌륭하게 소화를 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는 굉장히 정직해야 한다"

-현재 한국 공중파나 케이블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다수다.

"우리 아이들이 볼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만들어야 가장 좋다. 일본이나 미국 애니가 지향하는 지점이 있다.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일본은 집단주의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이 은근히 전염된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는 굉장히 정직해야하고 그 민족에게 있어서 순수한 측면들이 최대한 표현 되어야 한다. 그런 게 사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생각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문화적으로 지켜줘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공중파에서 방영될 시리즈용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계획은 없는가?

"기회가 좋으면 할 수 있다. 별로 상관없다. 극장 애니메이션과 수준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달려라 하니'나 '영심이'를 보면 '짱구는 못 말려'이상의 굉장한 카리스마가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캐릭터도 굉장히 독특하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좀 더 사랑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만약 공중파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전설을 시리즈로 해서 예술성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우리나라의 전설이나 이야기를 좀더 제대로 다뤄봐야 한다."

-할리우드는 3D 애니메이션이, 지브리를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2D가 특징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디로 갈 것 같은가?

"앞으로는 3D가 대세일 것이다. 셀로 그리는 2D 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방식은 지나치게 노동집약적이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3D는 당연한 기술적 진보이기에 그쪽으로 애니메이션의 흐름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3D 애니메이션의 경우 기술적 진보가 애니메이션 특유의 상상력을 압도 한다.

"애니메이션 구상하면서 많이 고민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특히 현실재현적인 3D 애니는 두드러진다. 기술적 진보가 작품의 판단기준이 되는 상황이다. 그런 것들은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창작이 특성이 아닌 듯싶다. 옛날에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을 기억해 보면 굉장히 엉뚱하고 그런 부분들이 도외시 되는 부분이 있다."

"유럽의 다른 종류의 애니를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데 '프린세스 프린세스'같은 작품은 애니메이션 자체가 가지는 특성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우리도 자꾸 테크닉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컴퓨터를 잘 썼는지 하는 것보다 '프린세스 프린세스'처럼 애니메이션 고유의 상상력을 살린 작품이 나와야 한다."

"단편 애니메이션 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 주어야"

-한국 애니메이션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쉬리'처럼 테크놀로지와 액션 모든 것들이 상업적으로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한국 애니메이션도 폭발할거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오히려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이웃집 야마다군'같은 애니메이션이 많아야 한다고 본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야마다군' 같은 만화다운 애니메이션이 적은 예산으로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100억을 들여 굉장히 상업적인 애니를 만들기보단 그 돈으로 작고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도록 애니메이션 업계가 적극적으로 노력 했으면 좋겠다."

"80년대 초반 이후 한국 자체의 극장 애니메이션이 사라졌다. 일본과 미국의 OEM을 하는 회사 쪽이 더 안정적이게 됐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그런 부분에 반성이 많아지고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많지 않지만 장편 감독을 지향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앞으로 발전의 발판이다. 그런 부분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단편 하는 것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고맙겠다."

-애니메이션의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외의 부가적인 사업들은 그야말로 부가적인 사업이다. 애니메이션은 영화적으로 봤을 때 완결된 작품이어야 한다. 그게 완성된 다음에 부가적인 것을 시도해야 한다. '원더풀 데이즈'의 실패는 애니메이션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충분하지 않은 측면에서 예산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니었나. 예산을 줄이고 좀 더 독특하게 했어야 한다. 큰 예산은 부담이 되지 않았나. 너무 도박처럼 나와서는 안 된다."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러시아의 단편 애니메이션과 캐나다의 브레드리 백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봤다. 단순히 그 작품의 영향이라기보다 그 작품들을 보며 애니메이션을 할 만하다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이전까지는 애니메이션을 유치한 만화영화로 생각했다. 어릴 때만 잠깐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예술적인 작품들을 보면서 창작자로서 할 만한 작업이라고 여겼다."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나?

"맞다. 그렇지만 화가로 살았다. 흔히 화가들이 하는 것처럼 화실도 운영하고 작품을 그리고 전시회도 하고 그랬었다. 물론 전공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배운다는 게 규격화된 것을 배운다는 것 같아서 인문학 가운데 가장 끌리는 심리학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끈질기게 하다보면 되는 것 같다."

김용운기자 woon@joynews24.com 사진 김일권객원기자 ilkwon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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