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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돋보기] 이통경쟁구도 '5→3강' 고착화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③
2018년 05월 05일 오전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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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011, 016, 017, 018, 019... 현재는 잊혀진 휴대폰 식별번호다. 5개의 이동통신사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경쟁으로 인해 국내는 1인1휴대폰 시대를 맞게 됐다.

다만, 마케팅 과열양상을 빚으면서 경쟁에서 밀리는 이통사들이 생겨났다. 결국 3개 이통사로 병합된 시장은 현재까지도 그 구도가 깨지지 않고 있다. 제4이통의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7차례 도전은 모두 무산된 바 있다.

1996년 1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세계 최초로 국산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기술을 상용화했다. 당시 식별 번호는 011이 부여됐다. 신세기통신도 같은해 4월부터 이 기술을 상용화했다. 식별번호는 017을 받았다.

두 이통사의 CDMA 상용화와 함께 PCS 사업자 허가신청이 동시에 전개됐다. 이를 통해 한국통신(현 KT)의 자회사인 '한국통신프리텔', 비장비업체군에서 '한솔PCS', 장비제조업체군에서 'LG텔레콤'이 사업권을 획득했다. 3사는 즉각 인프라 구축과 시범서비스 과정을 밟아 이듬해인 1997년 10월 1일 동시에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식별번호는 016, 018, 019가 부여됐다.

바야흐로 이통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셈이다.



5개 통신사가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하자마자 급속하게 변화된 것은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었다. 작지만 큰 변화는 통화의 주체가 달라졌다 점. 기존 유선전화는 '누구'보다는 '어디'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휴대폰은 '어디'보다는 '누구'를 더 중시한다. 통화의 주체가 특정 개인으로 바뀐 것이다.

사실 PCS에도 이러한 의미가 반영돼 있다. '개인 통신 서비스(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s)'의 앞글자를 따 명명됐다. 1인 1휴대폰 시대가 활짝 문을 열게 됐다.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이 운영하던 CDMA는 '셀룰러' 서비스라 불렀다. 한국통신프리텔과 한솔PCS, LG텔레콤은 'PCS'를 그대로 차용했지만 네트워크 기술은 CDMA와 비슷했다. 어느 정도 마케팅적인 요소가 가미된 용어라 할 수 있다.

다소의 차이는 셀룰러는 800MHz 주파수 대역을, PCS는 1.8GHz 주파수를 사용했다. 당시에는 주파수 특성으로 인한 영향이 상당했다.

통상적으로 주파수 대역이 낮을수록 보다 멀리 신호가 전달될 수 있다.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면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고 비교적 수월하게 피해 갈 수도 있고, 요리조리 곡선도로도 능숙하게 달릴 수 있다. 주파수가 높아지면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장애물을 피하거나 곡선도로를 달리기가 어렵다. 게다가 지하에서의 통신상태가 달리 나타나는 경우가 간혹 생겼다.

이 때문에 셀룰러 서비스는 어디서나 잘 터진다는 점을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물론 PCS도 장점은 있다. 1.8GHz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품질면에서는 탁월했다. 데이터 전송속도도 9.6Kbps 속도의 셀룰러보다 PCS가 14.4Kbps로 2배 빠르다.

셀룰러 서비스와 함께 경쟁체제에 돌입한 PCS는 상용화된지 3개월만에 1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1998년말 1천만명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급격한 성장은 이통 서비스에 대한 높은 수요와 우수한 통화품질, 저렴한 요금제, 더 소형화된 휴대폰 등이 요인으로 꼽히지만, 무엇보다 이통5사의 출혈경쟁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경쟁사 대비 더 탁월한 단말을 유치하고, 가격을 내려 가입자를 확보해야했기에 투입된 보조금이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1998년 이통 5사 매출대비 보조금 비율은 약 65%에 달했다. 특정 이통사의 경우 보조금 수준이 매출을 넘기도 했다. 그만큼 과도하고 무모한 경쟁이 계속된 셈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 이동전화 공정경쟁 지침을 내리고 5개 사업자의 합의를 유도, 보조금 지급 상한선으로 15만원이 책정됐다. 2000년에는 보조금 지급이 완전 폐지되기도 했다.

출혈경쟁을 거듭하던 이통 5사는 1999년 7월 정보통신부가 IMT-2000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하고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작업에 돌입함과 동시에 대규모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1997년 한국이동통신에서 사명을 바꾼 SK텔레콤은 1999년 12월 신세기통신을 합병하면서 시장 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게 된다. 800MHz 황금 주파수를 통한 경쟁 우위를 지속하기 위한 동력을 얻었다. 한국통신프리텔은 2000년 6월 한솔PCS를 인수하면서 사명을 KTF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국내 이통 시장은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으로 3강 경쟁구도가 성립됐다. 이후 국내 점유율 구도는 5:3:2 수준을 유지하며 고착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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