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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돋보기] 카폰·삐삐, '모바일'을 깨우다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①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내년 5세대통신(5G)이 상용화된다. 국내 무선 이동통신이 도입된지 35년만이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국내 이동통신의 시작에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1984년 3월 29일 한국전기통신공사(현재 KT)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재 SKT의 전신)로부터 출발한다. 이 곳에서는 자동차 전용 핸드폰인 일명 카폰을 서비스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한국이통서비스는 차량에 길다란 안테나를 달아주는 곳 정도로, 혹자는 주요 인사들이 좌천돼 오는 곳이라 여길 정도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 업체였다"고 회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서울 구의동 광장전화국 한편에 사무실 한칸을 임대해 시작했다. 납입자본금은 2억5천만원, 직원수는 32명 수준이었다.

◆ 비싼 가격의 카폰, 가입자는 '들썩'

카폰 가격은 상당했기에 누구나 쓸 수 있는 제품은 아니었다. 당시 포니2의 경우 카폰을 설치하면 단말비와 가입비를 더해 약 350만원에서 400만원 수준의 돈을 더 내야 했다. 통신비도 매월 별도로 내야 했다. 8초당 20원, 단말 유지비로 1만원이 쓰였다.

비싼 수준이었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비스 시작 1개월 만에 가입자는 2천명에 달했다. 가입자 급증으로 인해 1년만에 3천개 회선은 5천개로 늘어났다.

카폰에 이어 본격적으로 휴대폰이 등장했다. 1세대(1G_ 아날로그 방식을 채택한 제품이었다. 모토로라에 맞서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준비한 첫 국산 제품인 SH-100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88서울올림픽에 맞춰 개발된 SH-100은 700g 수준의 무게를 가진 제품으로 일명 '벽돌폰'으로 불리기도 했다. 가격은 약 400만원 수준이었다.

이후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94년 정부투자기관 민영화 시책에 따라 선경그룹(현재 SK그룹)이 가져가게 된다. 이후 1997년 현재의 SK텔레콤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 '삐삐' 대중화 물꼬를 트다

카폰이 자동차에 한정된 무선통신이었다면, 본격적인 대중화는 무선호출단말기가 열었다. 신호음을 따서 '삐삐'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체신부가 무선호출 서비스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1982년 12월 서울지역부터 1만 회선이 공급됐다.

삐삐는 저렴한 단말기 가격뿐만 아니라 통신비가 낮아 급속히 대중화됐다. 1986년부터 신호음뿐만 아니라 숫자까지도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 당시 숫자로 만들어진 암호들인 '8282(빨리빨리)', '1004(천사)' 등이 쓰이면서 하나의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이런 숫자에 따른 표지들이 곳곳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1982년 시작된 삐삐는 서비스 시작 5년만인 1988년말 10만 가입자를 돌파한다. 1995년에는 500만 시가입자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삐삐가 오면 그 지역 기지국이나 전화국에 전화를 해 발신자를 알아내야 했으나 추후에는 음성녹음까지 남길 수 있어 공중전화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발신 전용 시티폰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삐삐는 이후 CDMA의 도입과 PCS의 도입으로 점차 하락세로 돌아섰다. 고가였던 휴대폰이 일반 대중도 손에 넣을 수 있을만큼 가격 인하가 이뤄지면서 대중화 물꼬를 텄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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