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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일본 매체들은 왜 SK하이닉스를 흔드는가


[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둘러싸고 일본 매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SK하이닉스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보도된 내용은 사실에 기반한다기보다는 추측에 가깝고, 사실에 근접했다하더라도 방향성이 다르다.

대체 왜 그들은 SK하이닉스를 흔들까.

통상적으로 대형 M&A가 이뤄지는 시점에서는 각 이익집단 간의 의견 충돌로 인해 치밀하고 복잡한 수싸움이 이어진다. 이번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 역시 각 기업을 넘어 국가 및 사회 문화적인 정서까지도 끌어들이는 등 본질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의 '딜브레이커'

도시바가 처한 상황을 우선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도시바는 지난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에서 발생한 사업손실 7천125억엔(약 7조1천250억원)을 메우기 위해 지난 1월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메모리 부문을 분사하고 지분의 20%만 매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예상했던 손실 규모가 불어나고 업계 관심이 낮자, 경영권을 넘기더라도 매각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도시바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메모리 사업부 분사를 의결했다. 바로 전날인 29일에는 1차 예비입찰자 모집을 마감했다. 이후 지난 5월 19일 2차 예비입찰을 거쳐 6월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연합을 선택했다.

도시바의 계획대로라면 사실상 우선협상대상자는 5월내, 최종매각계약은 6월초에 이뤄졌어야 했지만 시일이 꽤 밀렸다. 아직까지도 최종매각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전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의 딜 브레이커는 웨스턴디지털(WD)이다.

WD는 도시바 매각에 끊임없이 훼방을 놓고 있다. 1차 예비입찰 이후 WD는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경쟁업체 주주참여를 반대하는 의미로 도시바에게 독점 교섭권을 요구했다. 인수 진행 과정에 일시 제동이 걸릴 위험에 처했다.

도시바는 즉각 반발했다.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공동 운영중인 일본 욧카이치 공장의 시설과 네트워크를 사용치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WD는 도시바의 엄포을 무시한 듯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재판소에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금지를 요구하는 중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도시바가 추가 계약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요구였다.

도시바는 2차 예비입찰까지는 계획된 일정대로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지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시기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6월 15일 WD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 금지를 요청하면서 당초 계획됐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21일까지 밀렸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한미일연합이 선택됐을 때도 WD는 공식성명서를 통해 "(도시바가)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도시바와 WD의 갈등의 골은 최근 더 깊어졌다. 지난 14일 미국 법원 첫 심리에서 결정이 오는 28일로 연기되자 도시바는 일단 28일까지 최종매각계약을 미뤘다. 다만, 미국 법원을 통해 WD가 일본 욧카이치 공장서 WD 직원 정보 접근 차단을 승인 받았다.

WD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도시바는 사실 난감한 상황이다. 당초 6월초 최종매각계약을 성사시키겠다고 목표를 잡은 이유는 내년 3월까지 매각을 완료하기 위함이었다. 반독점 심사와 각종 절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시바는 내년 3월까지 초과채무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WD가 이번 협상의 주된 딜브레이커임이 자명한 상황이다.

◆ 변심에는 이유가, 실패에는 책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현지매체들이 WD가 아닌 SK하이닉스를 연일 흔드는 이유는 실제 딜브레이커인 WD로 향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기술유출 우려를 사전에 불식시키고, 향후 이번 투자에 대한 실패 요인으로 SK하이닉스를 재물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는 WD 진영으로 선회하더라도 안정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으로도 보인다.

일본 현지 매체들이 주장하는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의 이중계약과 최근 불거진 의결권 포기 등의 보도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추정이다. 이러한 추정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SK하이닉스에게 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는 기술유출 우려 문제다.

도시바가 한미일연합을 선택한 근거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주도권을 계속해서 가져갈 수 있으며, 안정적인 매각금액을 조달받을 수 있고, 기술유출 우려가 타 컨소시엄에 비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도시바도 지난 6월 28일 열린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한미일연합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당초 유력한 후보자는 일본산업혁신기구 주도의 미일연합이었지만 도시바가 요구하는 2조엔(한화 약 20조5천억원)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또 다른 투자펀드를 물색하던 중 유력 후보인 베인캐피탈-SK하이닉스 등이 꾸린 한미연합에 손을 뻗었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 출자금으로 약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베인캐피탈도 비슷한 수준의 금액을 투자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체 인수금액의 약 절반에 해당된다. 바꿔 말하면 한미연합 없이 미일연합의 단독 인수는 불가능했다.

전체 인수금액의 4분의 1가량을 투자하는 SK하이닉스의 입장에서는 도시바의 지분과 의결권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다면 투자 대비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런 내용을 도시바가 전혀 모르고 한미일연합을 선택했을리는 만무하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산업혁신기구(INCJ) 입장에서도 여론몰이를 위한 안정장치가 필요하다.

INCJ는 과거 도시바, 소니, 히타치 디스플레이 사업을 통합한 JDI 출범을 주도했지만 현재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샤프를 홍하이그룹에게 빼앗기면서 일본 현지에서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증식시킨 바 있다. 이번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까지 실패로 이어진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INCJ는 추후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최종 매각 후에도 회생이 어려워지면, 앞서 형성된 여론을 통해 SK하이닉스에게 충분히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다. 일본 정부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해소치 못하고 있다는 비난의 화살도 돌릴 수 있다.

만약 도시바가 한미일연합 대신 WD를 최종매각계약자로 선정한다면, SK하이닉스를 핑계 삼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도시바가 한미일연합과의 협상을 진행 중인 동시에 WD, 미국 사모펀드 KKR과 물밑협상이 이뤄지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WD는 그간 공식성명서를 통해 도시바를 비난하면서도, 각종 보도자료를 통해 도시바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차세대 메모리 사업 성과를 내고 있다고 홍보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는 여전히 도시바에게 매력적인 카드다.

도시바는 메모리 사업부 매각금액을 우선적으로 웨스팅하우스 손실에 쏟아야 상장폐지를 면할 수 있다. 메모리 설비 또는 R&D 투자는 나중 일이다. 그렇다면 장기적 관점에서의 전략 수립이 요구된다.

도시바는 지난해부터 낸드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최근 72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해 공격적으로 관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도시바가 보유하지 않은 D램 분야에서도 크로스 협력이 가능하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도시바에게는 WD가 한미일연합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다. WD와의 협력관계를 가져가면서도 SK하이닉스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 외형만 본다면 한미일 다국적 메모리 생산업체의 탄생이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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