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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IT 뉴리더- 3] 리누스 토발즈 "일은 곧 재미"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fusion) 사극 '다모(茶母)'이다.

조선시대 여형사란 부제를 달고 있는 '다모'는 첫 회부터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날 아프게 하지 마라"는 감성적인 대사를 쏟아내며 젊은 이들의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 드라마에 푹 빠진 '다모 폐인'이라는 고백을 곁들인다.)

이 드라마에는 좌포청 '다모' 채옥이를 사이에 두고 멋진 남자가 두 명 등장한다. 좌포청 종사관인 황보윤과 그가 쫓는 반란세력의 수장 장성백 두령이란 인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리눅스 창시자'인 리누스 토발즈(33)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갑자기 '다모'에 나오는 장성백 두령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연이어 빌 게이츠와 황보윤을 오버랩시켜봤다. ('오버'한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뒷 부분에서 이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 "재밌냐? 나도 재밌다. 그럼 됐다"

토발즈의 삶을 지탱하는 코드는 '재미'이다. 얼마전 나온 그의 자서전 제목인 '그냥 재미로(Just for Fun)'란 말처럼 토발즈의 삶에서 재미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리눅스란 '대단한' 운영체제를 개발해 놓고도, 이렇다 할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지 않는 데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재미로 한 일인데, 뭐'라며 눙친다. 어찌보면 겸양인 듯도 하고, 또 어찌보면 너스레를 떠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토발즈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가 유난히 '재미'를 강조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그는 자서전을 내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그 과정이 재미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여기서 재미란 말 속에는 '자발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토발즈의 삶을 이끄는 동력은 자발성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것 같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컴퓨터와 함께 노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리고, 이 버릇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까지 계속됐다.

1991년 그가 처음으로 리눅스 운영체제를 선보였을 때도, 그리고 그 이후 리눅스 지도자로 부상한 뒤에도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재미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과 '놀이'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리눅스 개발자그룹 가세…"그냥 재미로"

하지만 요즘 토발즈의 삶은 다소 혼란스러울 것 같다. 올해 들어 재미있는 일과 재미없는 일이 동시에 생겼기 때문이다.

먼저 재미 있는 일.

토발즈는 지난 3년 동안 몸담아 왔던 칩 제조업체 트랜스메타에 잠시 휴가를 내고 오픈소스 개발랩(OSDL)에 가세하기로 했다.

오픈소스 개발 랩은 기업 데이터 센터용 리눅스 개발을 위해 설립된 단체. 이 단체에는 CA, 후지쓰, 히타치, 휴렛패커드(HP), IBM, 인텔, NEC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자금을 댔다. 토발즈는 이 단체에서 리눅스 커널 개선 작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토발즈로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자신이 대학 시절 '그냥 재미로' 했던 일이 하나의 역사가 되었던 토발즈로선, 이제 또 다시 '재미 있는' 일을 하게 됐다.

(여기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토발즈는 지난 2000년 트랜스메타에 가세하면서 '대외 활동은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자신의 직장 생활이 리눅스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토발즈는 OSDL에서 자신의 핵심 동료 중 한 명이었던 앤드류 모톤과 함께 2.6 버전 개발 총괄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하드드라이브 등의 장비와의 'input/output' 통신 차단, 대형 데이터베이스에 맞춘 가상 메모리 같은 어려운 프로그래밍 이슈들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IBM, HP 등 대기업들이 리눅스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토발즈 입장에선 저변 확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미'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는 IBM, 오라클, 델같은 대형 컴퓨터 업체들이 리눅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납기 압박'을 받지 않느냐고 C넷 기자의 질문에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완전히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론 전혀 그런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 "SCO 제소, 신경 쓰지 않는다"

다음으로 재미 없는 일.

리누스 토발즈가 OSDL 가세를 선언할 즈음, 그를 성가시게 하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올 초 IBM을 저작권 위반 혐의로 제소한 데 이어 리눅스 진영 전체를 향해 공세를 퍼붓고 있는 SCO그룹이 이번엔 토발즈를 직접 겨냥해 맹 비난한 것.

SCO는 리눅스 저작권 분쟁이 벌어지게 된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토발즈로 귀착된다고 강조했다. 리눅스를 만들면서 코드(code)가 특허권, 저작권 같은 지적재산권(IP)을 위반했는 지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란 게 SCO의 주장이다.

리누스 토발즈는 SCO의 이같은 공세로 인해 '삶의 재미'를 잃고 있는 걸까?

그는 최근 C넷과의 인터뷰를 통해 "(SCO의 제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마디로 SCO의 제소건은 지적재산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또 SCO의 리눅스 특허권 주장은 한 마디로 부질없는 짓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SCO의 IBM 제소는 양사간의 계약 문제일 뿐이다. SCO가 지금까지 지껄여 댄(blathering) 얘기는 전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얘기일 뿐이다."

리눅스 지재권을 둘러싼 SCO와 IBM, 그리고 리눅스 커뮤니티간의 공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SCO의 제소에 대해 IBM이 맞고소하면서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SCO 측은 IBM이 맞대응을 선언하자 문제가 된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등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 "난 여전히 자유인이다"

토발즈의 자서전에 따르면 펭귄을 리눅스의 상징으로 삼기로 한 것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 지는 분명치 않다. 토발즈는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그의 아내는 '펭귄에 손을 물린 뒤, 펭귄과 사랑에 빠진 남편을 생각하며' 자신이 낸 아이디어였다고 맛받아치고 있다.

하지만 누구의 아이디어였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토발즈가 '행복해 보이는' 펭귄을 원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 유명해진 리누스 토발즈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유와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토발즈가 OSDL 가세 뒤에도 여전히 '자기 방식'을 고수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토발즈는 자신이 둥지를 트고 있는 산타클라라에 그냥 거주하면서 원격으로 작업을 하기로 한 것. 가끔 오레곤 주 비버톤(Beaverton)에 있는 OSDL 본부를 방문하면서 미흡한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PC 시장 부문에선 아직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MS의 윈도가 워낙 위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토발즈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

그는 리눅스가 서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진출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데스크톱 시장 공략에 대한 야심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토발즈는 C넷과의 인터뷰에서 "운영체제(OS)의 기술력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다"면서 "특정 부문에만 주력하는 틈새 OS는 점차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발즈의 이같은 발언을 통해 앞으로 그가 리눅스의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강할 지를 짐작해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 장성백과 토발즈, 그리고 황보윤과 빌 게이츠

다시 '다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서두에서 '다모'의 멋진 두 남자 얘기를 꺼내곤, 매듭을 짓지 않았다.

장성백과 황보윤. 사실 이 둘은 다르면서도 같은 인물이다.

좌포청 종사관인 황보윤. 그는 조선 팔도 최고의 무예를 자랑하는 최고 실력자이다. 체제 내에선 그를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그의 무예는 출중하다.

한 때 그는 세상을 증오하고, 세상을 향해 이를 갈았지만, 지금은 체제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는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승진 가도를 달리면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반면 장성백은 어떤가? 조선 명문가의 후손인 그는 역모로 집안이 풍비박산되면서 혁명을 꿈꾸는 세력들의 우두머리로 변신하게 된다. 그는 체제를 뒤엎는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선 혁명 세력 특유의 과격함 보다는 따뜻함과 삶의 재미가 넘쳐난다. 늘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모습은 '삶의 재미'를 은은하게 풍기는 듯하다. (물론 원칙에 어긋날 경우의 과격함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체제 내에서 막강한 실력을 축적했다는 점에서, 또 한 때는 그 체제를 뒤엎으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빌 게이츠와 황보윤은 비슷한 점이 있다. (빌 게이츠는 지나치게 부자란 점 때문에 실제보다 더 미움을 받는 경향이 있다. 반면, 황보윤은 잘 생기고 다감한 점 때문에 실체에 비해 훨씬 더 사랑을 받는 것 같다. 그는, 좌포청 종사관답지 않게 조직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너무 잦다.)

반면 체제 밖에 몸담고 있는 장성백과 토발즈는 '자유'와 '재미'란 점에서 서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 "또 한번의 혁명을 꿈꾸며…"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두 사람. 둘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둘의 성향은 생각보다는 비슷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비슷한 성향 중엔 '삶에 대한 사랑'과 '정열'이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을 얘기할 때 토발즈와 빌 게이츠란 두 인물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이 둘은 양쪽 극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삶에 대한 사랑'과 '정열'을 바탕으로 '그냥 재미로' 리눅스 개발에 매달려 있는 토발즈는 21세기 IT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중심인물이다. 그가 OSDL에 가세해 리눅스 개발자들과 열정을 불사르기로 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미를 꿈꾸는 혁명가' 리누스 토발즈. 리눅스 커널 개발 작업에 정열을 쏟고 있는 토발즈가 어떤 선물을 들고 나타날 지 사뭇 궁금해진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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