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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정책 춘추전국시대-3] 부처간 불협화음, 그 기형적 산물들


 

문제아로 분류된 아이들 뒤에는 대부분 문제의 가정이 있다. 가화만사성(家

和萬事成)이라는 말은 조화로운 사회와 국가 건설에 가정의 화목과 질서가

토대가 됨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앙 행정부에도 화목은 필요하다. 잘못된 행정은 곧 무질서와 혼돈으로 직

결된다. 정책 실패는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국가적으로는 경쟁력 악화를

초래하고 만다.

부처간 불협화음 역시 기업과 국민에게는 기형적 산물만을 안겨줄 뿐이

다. '기형'은 말 자체만으로도 기업과 국민, 정부 모두에게 아픔을 준다.

부처간 중복 다툼을 바라보는 IT업계는 요즘 외면하고 싶은 기형적 현상들

에 직면해 있다. 부처간 이기주의와 졸속 행정 아래서 때로는 탄식도 나오

지 않는다.

e-코리아와 지식정보강국으로 가는 길에서 '코리아'는 악몽을 꾸는 것일까.

'뜨는 분야'에는 충돌이 있다

부처간 불협화음은 소위 '뜨는' 분야마다 충돌을 불러온다. 별 볼 일 없을

때는 이렇다 할 움직임도 없지만 유망해 보이거나 생색이 날 만하다 싶으

면 곧 경쟁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계에서 뜨는 분야에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분

명 반가운 일이다. 기술 개발은 물론 자금까지도 지원해주겠다는 정부가 기

업들에는 구세주와도 같다.

하지만 곧 이어 나타나는 부처간 힘싸움 앞에서는 기업들은 기가 질려 버리

고 만다. 뜨는 분야는 곧 힘겨루기의 장이 되고 기업들은 먼저 지칠 뿐이

다.

협단체 중복이 일어나는 분야는 대부분 뜨는 기술들. 음성인식, 소프트웨

어 온라인임대사업(ASP), 전자화폐, 게임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음성인식협의회(정통부)와 한국음성정보기술산업협회(산자부), 한국ASP

산업컨소시엄(정통부)과 한국ASP협동조합(산자부), 한국전자화폐포럼(정통

부)과 전자화폐표준화포럼(산자부), 게임산업협동조합(산자부)과 첨단게임

제작업협동조합(문광부) 등이 바로 부끄러운 이름들이다.

국가적 이슈인 e비즈니스는 협단체 뿐 아니라 부처간 감정의 골까지 이미

깊어진 분야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정통부와 산자부의 알력은 공인된 이슈

이며 관계자들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실정이다.

20여개의 협단체가 있었지만 e비즈니스 분야에는 지난 해 이후에도 10여개

의 굵직굵직한 단체들이 더 생겨났다.

뜨는 분야 뿐 아니라 '주목 받는' 단어에도 충돌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보

편적으로 쓰이는 'IT'라는 단어를 두고서도 정통부와 산자부는 서로 사용하

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정통부가 추진중인 'IT 기본법'을 두고 산자부는 정통부에 'IT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T라는 말이 워낙 광

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으니 조정해서 써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정통부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 리 없다. '정통부의 설립 이유가 IT산업을 총

괄하고 육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산자부측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라는 것.

양승택 정통부 장관 역시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IT는 정통부가 해야 하

는데 왜 산자부가 월권을 하느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한 곳에 줄서기, 결국은 양다리

부처간 중복과 협단체가 난립함에 따라 업계는 어느 곳에 줄서야 할 지 항

상 고민스럽다. 여력이 있다면 두 곳에 모두 가입해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

(?)라도 하고 싶지만, 여력이 없는 중소벤처로서는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터라 적지 않게 당혹스러운 것.

전자화폐는 외부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울 만큼 중소 벤처들이 정통-산자 두

부처의 눈치를 살피는 분야다. 다른 분야와 달리 전자화폐는 두 부처가 지

난해부터 공조 논의를 진행하다가 결국 각자 다른 포럼을 발족, 업체를 곤

란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많은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책잡히느니 양다리를 걸치

자'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고야 말았다. 가입해서 얻게 될 이익보다는 가입

하지 않으므로 해서 발생할 피해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서비스업체인 A업체는 최근 협단체 등록에 대해 내

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양다리 전법'으로 결론을 냈다.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어떤 단체가 도움이 될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했기 때문

이다.

'정보화촉진기금 등 1년 예산이 어느 부처보다 규모면에서 막강하다'는 이

유로 정통부 산하단체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던 반면 '산자부도 최근 업체

대상 지원을 늘리고 있다'며 산자부 산하 단체를 지지하는 의견도 많았다.

새벽녘까지 진행된 회의의 결론은 '두 군데 모두 가입하자'는 것. '필요에

따라 이곳 저곳 모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고 어느 한 곳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기업들은 잦은 모임 참석으로 분주하다. 정통부 모임에

서 본 사람들은 산자부 모임에서 또 만나고 때로 문광부 모임에서도 다시

논쟁을 주고 받기도 한다.

사람이 같으니 아이디어도 상당 부분 유사하다. 참석자들은 같은 이야기만

두 번 반복하는 셈이다.

총 4곳의 단체에 가입, 활동하고 있는 업체의 한 관계자는 "어느 곳에만 가

입하고 다른 곳에는 가입하지 않았을 때 입을 피해가 걱정돼 모두 가입하

게 됐다"고 호소했다.

그는 "모든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결과

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지적했다.

부처간 힘겨루기가 기업들에는 몸만 고달프게 할 뿐 배고픔을 채워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졸속 정책도 나온다

부처간 논쟁과 대응이 이어지면서 직면하게 된 중대 문제는 '졸속 행정'의

도출이다. 아이디어와 힘을 결집시켜도 모자라는 마당에 '반대를 위한 반

대'로 힘을 소모하다보니 자연 덜익은 정책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달 27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열린 'e 비즈니스 확산 국가전략보고회

의'는 대표적인 망신 사례다. 당시 180여명의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모 컨설팅업체의 의견이 주류를 이룬 정책 초안만이 제시되

는 데 그쳤다.

정통부와 문광부가 첨예하게 대립중인 '디지털 콘텐츠법' 역시 졸속을 우려

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화를 서두르면 '부처간 밥

그릇싸움'으로 '졸속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초기 저작권법 개정에 참여했던 황적인 전 서울대 법대교수는 “정부 차원

의 의견 조율과 업계 의견 수렴, 법조계의 조문 검토 등을 거친 후 디지털

산업의 전반적인 보호를 위한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도체 업계 역시 '지원을 늘려도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며 사실상 졸속 정

책이 많다고 비판하고 있다.

칩 개발을 지원한다고 정통-산자 두 부처가 떠들지만 업계의 칩 제작능력

과 현황을 모른 채 정책만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책 발표 이전에 상황 진단과 부처간 정책 조율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의 남발, 기업은 숨은그림찾기

한 소프트웨어업체의 관계자는 "정부가 말은 많지만 정작 기업과 고객의 필

요성은 뒷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며 '탁상행정'을 꼬집는다.

제시되는 정책은 많지만 막상 이용하려고 하면 어떤 방법과 절차를 거쳐야

할 지 어렵기만 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과기부와 정통부, 산자부 등이 제공하는 연구자금 지원은 중복 여부

를 확인할 시스템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기업으로서는 이름만 잘 바꿔 제안서를 쓰면 지자체, 중기청,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등 많게는 10개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내역과 활용 방법을 이해하는 데는 고도의 집중과 노력

이 필요하다. 중간중간에 친분관계를 이용한 로비도 있어야 하고 전문가나

선경험자의 조언을 취합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정통부와 산자부가 기술개발과 벤처 육성자금도 지

원해 준다고 숱하게 발표하지만 정작 활용 절차에 부딪히면 말문이 막힌

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한 부처에서도 해당 기업 관계자가 활용 가능한 지원책을 정리 못

할 때가 많고 부처간 정책이 남발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숨은 그림찾기는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용기를 내어 문의할 때도 이 곳 저곳 전화들이 돌려지기만 할 뿐, 정부의

지원정책은 기업인들에 너무도 멀리 있을 때가 많다.

정부 부처에서 흔히 제시하는 홈페이지도 기업들에는 만만치 않은 강적이

다.

비슷비슷하면서도 어려운 행정 용어들과 산적한 데이터 속에서 기업들은 한

참만에야 원하는 답변을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애써 뒤진 자료 속에서

해답을 못 찾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기획시리즈 'IT정책 춘추전국시

대'에 대한 의견 제시와 제보를 환영합니다. inews24 특별취재팀

speci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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