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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 세계로 쏜다-2] 5년 발자취


 

1994년 12월의 어느 날. 게임에 미친 젊은이 10명이 서울 강남구 선릉역 부근에 모였다. 이들에겐 변변한 사무실도, 넉넉한 자금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멋진 게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회사가 바로 초창기 국내 게임업계의 대표 주자인 넥슨이다.

회사 설립 1년만인 95년 12월, 10명의 젊은이들은 마침내 첫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게임인 '바람의 나라'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 '바람의 나라'와 게임업체 넥슨

'바람의 나라' 이전까지 유행하던 게임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했다. '쥬라기 공원', '단군의 땅' 등 PC통신을 통해 제공되던 게임은 예외 없이 텍스트 기반이었다.

시범 서비스 5개월만인 96년 4월,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는 유료화를 선언했다. 이용 요금은 분당 20원. 하지만 치솟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첫달 매출은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10명을 먹여살리기는 커녕, 단 1명의 월급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젊은 혈기로 뭉친 젊은이들. 하지만 게임 개발만으로 버티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넥슨이 초창기에 홈페이지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인터넷사업부를 주력 사업으로 끌고 갔던 것도 바로 이런 절박한 사정 때문이었다. 당시 이들에겐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넥슨의 주력업종은 게임이 아니었다. 인터넷서비스 구축업체였다. 넥슨은 회사 설립 4년 만인 2000년에야 게임업체로 본격 탈바꿈하게 된다. 게임 매출을 본격적으로 올리게 되면서 인터넷사업부를 '제오젠'이란 이름으로 분사했다.

◆ 엔씨소프트, 그리고 리니지의 등장

넥슨이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상용화한 지 1년이 지난 97년 4월. 초창기부터 국내 온라인 시장을 이끌어 온 또 하나의 기업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훗날 '리니지'로 한국 게임 시장을 평정한 엔씨소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엔씨소프트가 게임업에 진출하게 된 것은 한 게임 개발자가 김택진 사장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넥슨에서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송재경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무렵 송재경을 비롯한 3명의 개발자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게임을 제작하고 있었다.

당시 아이네트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송재경은 이 회사가 통신업종으로 주력사업을 바꾸기로 하면서 온라인게임 개발을 맡아줄 업체를 물색하고 있었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과 '리니지'의 산파였던 송재경 씨는 서로를 통해 온라인게임 사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됐다.

IMF의 칼 바람이 서서히 휘몰아치기 시작하던 1997년 말. 마침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2S 온라인 게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 이름은 '리니지'. 국내에 2D 온라인게임 시대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온라인 게임인 울티마 온라인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97년 10월부터 상용화된 울티마 온라인은 초창기 게이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게임이다.

이 때부터 온라인게임이란 이름이 조금씩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 주요 온라인게임과 발자취

리니지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2D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온라인게임이 속속 등장했다. 덩달아 국내에서도 게임개발업체들이 속출하게 됐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2D 그래픽 게임에 이어 뮤, 라그나로크 등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뮤와 라그나로크는 2D와 3D의 중간단계로 흔히 2.5D 게임으로 통한다. 이들은 저사양 PC에서도 3D의 사실적인 그래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광받았다.

웹젠은 지난 2001년 11월 화려한 그래픽을 장점으로 내세운 뮤를 선보이게 된다. 이 게임은 리니지보다 한층 향상된 그래픽을 선보여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또 3D 게임이 고사양의 PC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시점을 쿼터뷰로 고정시킴으로써 PC사양을 낮추면서 상용화에 성공하게 된다. 뮤는 3D게임이란 신규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2년 화제를 불러일으킨 온라인게임 '프리스톤테일'은 2002년말 상용화하면서 온라인게임의 복마전에 불을 지폈다. 이 게임은 3D 그래픽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시장가능성을 밝혀줬다.

뒤따라 성인전용 게임 'A3', ,드라마틱 게임 '테일즈 위버' 등 향상된 게임기술과 함께 마케팅까지 접목된 온라인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온라인게임은 더욱 경쟁력을 갖춰갔다.

◆ 리니지II 통해 본 온라인게임

2003년 7월 모습을 드러낸 '리니지II'. 80억원의 개발비용이 소요된 사상 초유의 대작인 리니지II는 자기 자본으로 온라인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5년전 리니지 서비스 첫날 동시접속자수는 겨우 17명. 수만명의 동시접속자를 자랑하는 현재 상황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을 뿐이다.

국내 매출과 함께 대만 서비스 성공에 힘입어 해외 매출도 차츰 늘어나면서 엔씨소프트는 2001년 12월 온라인게임 단일상품으론 최초로 1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쾌거를 거뒀다.

리니지의 괄목할만한 성과는 또 다른 대작을 위한 밑거름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를 선보인 지 만 3년이 됐던 시기에 '리니지II'의 개발팀을 구성한 것.

엔씨소프트는 2002년 11월 30일 시작으로 6개월 이상 비공개 테스를 개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반에 공개된 것이 바로 '리니지II'이다.

'리니지II'는 서비스 개시 한 달만에 동시접속자 9만9천명을 기록했다. 엔씨소프트 측은 "서버를 증설하자마자 한계수용량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씨 측은 '리니지II'가 동시 접속자 10만명은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리니지가 3년에 걸쳐 기록한 수치를 불과 한달만에 이뤄낸 셈이다. 게다가 리니지II는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인정을 받고 있다.

고사양을 요구하는 리니지II는 침체됐던 PC시장에도 활로를 찾아줬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II에 맞는 고사양 PC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IT업계에서는 '리니지II' 효과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다.

게다가 신인가수 한나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리니지II'의 공동 마케팅도 전개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이 하나의 매체로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온라인게임 제도화와 해외시장 진출

온라인게임이 기술적인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국내에서도 온라인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종 제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99년 12월 게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관인 게임종합지원센터(현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설립, 본격적인 게임개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부도 ETRI와 소프트웨어진흥원을 통해 온라인게임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부처의 지원책과 함께 온라인게임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각종 규제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대한 법률과 청소년보호법을 내세워 만 19세 이용자들의 인터넷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게임에 대한 각종 지원 및 규제들이 등장하면서 해외진출도 활발하다.

국내업체들은 2000년부터 일본,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로 대만에서 동시접속자 10만명 이상을 기록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액토즈소프트-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는 중국서 미르의 전설2로 동시접속자 70만명을 기록하는 등 국산 게임을 중국시장에서 장악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는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국산 온라인게임의 활발한 해외 진출로 해외에서도 온라인게임 규제에 관심이 높다. 태국 정부는 야간에 국산 온라인게임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또 중국정부는 상용화된 온라인게임에 대한 허가제도를 7월 1일부터 시작했다.

국순신기자 kooks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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