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군? 제로베이스에서 보면 베스트였다

[최용재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데뷔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파라과이의 친선전. 이 경기는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이었다 한국 축구팬들 앞에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경기였다. 누구나 멋진 경기로 승리를 추구하게 된다. 첫 경기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래야만 자신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두터워지고, 미래로 향하는 길이 순조로울 수 있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은 데뷔전에서의 달콤한 승리 유혹을 처음부터 버리고 시작했다. 강렬한 첫 인상도, 승리로 인한 찬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승리보다는 실험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의 달콤함보다는 미래의 짜릿함을 선택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공언했듯 제로베이스에서 천천히 내용물을 채워 넣으려 한 것이다.

선발 라인업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이런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이 선발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최전방 공격수 이동국도 대기 명단에서 시작했다. 수비 라인에서도 기존의 선발 멤버였던 김영권, 차두리 등이 빠졌다. 남태희, 조영철, 김기희, 홍철 등 새로운 멤버들이 슈틸리케 데뷔전에 선발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 대표팀에 익숙해 있던 축구팬들이 느끼는 것은 사실상 1.5군이나 다름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경기에서 1.5군(?)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것은 당장의 한 경기 승리보다는 실험과 평가를 통해 기초를 튼튼히 만들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선수 기용이라 할 수 있었다.

이미 검증된 선수보다 검증이 더 필요한 선수들을 위한 실험 의지가 더 컸던 것이다. 또 유럽을 오가거나,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피로가 누적된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들어 있었다.

주축 선수를 대거 제외한 슈틸리케호의 데뷔전. 그런데도 승리했다. 한국은 파라과이에 2-0 승리를 거뒀다. 실험을 앞세운 선발 명단이었지만 승리했다. 1.5군이라는 것은 '선입견'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제로베이스에서 보면 이날 선발 출전한 선수들이 베스트 멤버였다. 그래서 더욱 강렬한 승리였다. 그리고 더욱 큰 가치를 품은, 의미를 얻은 승리였다.

승리라는 관점에서도 첫 술에 배부른 경기였다. 그리고 실험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숟가락을 떴다. 이번 파라과이전 승리를 통해 제로베이스에서 내용이 알차게 많이 채워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옥석가리기가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고, 그동안 소외됐던 남태희, 김민우 등이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가능성을 제대로 알렸다. 후반에 손흥민, 이동국 등 그동안 주축 멤버들이 교체 투입됐고, 이들은 역시나 위용을 이어갔다.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다 잡은 슈틸리케호의 데뷔전이었다. 지금의 승리보다 미래를 위해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백지장에 이제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가 그려나갈 그림의 완성을 더욱 큰 기대감을 가진 채 기다리게 만드는, 그런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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