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BIFF]전양준 집행위원장 "축제 본연의 아우라 회복"(결산④)

논란·태풍에도 확인한 잠재력…"이심전심 느꼈다"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지난 4일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은 영화제의 회복된 위상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전년과 비교해 많은 수의 게스트들이 밝은 얼굴로 레드카펫을 밟으며 정상화된 영화제의 도약을 축하했다. 영화로 공식 초청된 감독과 배우들은 물론이고 영화제의 안정적 도약을 격려하기 위해 초청작 없이 부산을 방문한 영화인들도 다수였다.

지난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여러 형태로 정치 권력의 외압에 시달려왔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용관 당시 집행위원장의 피소로 절정의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이후에도 서병수 전 부산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보이콧과 사무국 조직의 내홍이 이어지며 풍파가 일었다. 김동호 전 이사장과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이 지난 22회 영화제의 폐막식을 끝으로 사임한 뒤 두 자리는 3개월 간 공석이었다. 지난 1월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신임되면서 본격적 준비가 시작됐다. 예년보다 3개월 이상 짧았던 준비 기간에도, 국내외 수작들을 중심으로 한 상영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남포동 지역을 활용한 새 이벤트 프로그램도 선보이며 신선한 시도도 감행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논란과 날씨의 변수가 위기로 작용했다. 지난 5일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선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은 게스트 쿠니무라 준을 난감에 빠뜨린 질문이 등장했다. 폭넓은 문답이 오갈 수 있는 영화제 기자회견 자리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섣불리 질문을 차단하는 일은 무리에 가깝다. 그것이 영화와 무관한, 한일관계와 관련된 질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답하거나 답하지 않을 자유를 게스트에게 부여하고, 이후 발생한 상황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 영화제의 선택이었다. 소신 발언을 한 쿠니무라 준이 일본의 네티즌들에게 비난을 받던 상황에서 영화제의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택한 방법도 그것이었다. 영화제는 향후 게스트 보호에 유념할 것을 알리며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하는 이례적 대처를 했다.

태풍의 마수는 올해 유독 매서웠다. 콩레이의 거센 영향에 지난 6일 오전 프로그램이 큰 차질을 겪었다. 하지만 해안도시 부산에서 23년을 이어 온 영화제다. 불가피한 행사 취소가 발생했지만 밀도 높은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관객과 게스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대응 전략이 시스템을 뒷받침했다.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었지만 올해 영화제가 끈질겼던 외압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낸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전양준 신임 집행위원장에게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영화 축제로서 본연의 모습과 아우라를 완전히 회복한 해"다. "영화제의 오래된 친구와 새 친구들이 하나의 장에 모였다"며 "이심전심을 느꼈다"고 말하는 전 집행위원장의 눈에 자신감이 어렸다. 이어진 난관을 딛고 일어선 부산국제영화제가 전성기의 위상을 되찾게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중장기적 목표다

지난 11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전양준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영화제의 시작부터 함께 일군 원년 멤버인 동시에 아시아필름 마켓운영위원장,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지낸 그는 올해 집행위원장으로 첫 영화제를 치렀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스물 세 해 간 쌓인 경험들이 잠재력으로 발현된 열흘이었다. 전양준 집행위원장과 올해 영화제의 성취와 숙제를 돌아봤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3일 저녁 7시 영화의전당에서 폐막식을 열고 열흘 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하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일문일답

-논란 후 가장 풍성한 규모의 게스트들이 영화제 개막식을 빛냈다.

"('다이빙벨' 논란으로 이야기되는) 영화제 영화제 사태가 시작되기 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게스트들이 찾아왔다. 지난 봄부터 '이제는 부산에 가야 한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 같다. 올해 원로 영화인들을 포함해 감독과 배우, 영화산업 종사자, 심지어 방송계 인사들까지 영화제를 많이 찾았다고 들었다. 토, 일, 월요일 간 이어진 파티들도 대성황을 이뤘다. 영화인들의 참석 규모로 볼 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논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영화 축제로서 본연의 모습과 아우라를 완전히 회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들 이심전심을 느꼈다. 부산국제영화제 고유의 분위기가 회복됐고 오래된 친구들, 새로 생긴 친구들이 모두 하나의 장에 모였다. 새삼 장황한 말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태풍이 개막 첫 주 주말을 강타해 타격이 컸다.

"재난에는 아시아 유일한 메이저 영화제 답게 이미 충분한 경험과 대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야외상영장에서의 관람 취소로 인해 일부 지장과 타격이 있었지만 모든 시스템이 12시간 내 완벽하게 재가동됐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순조롭게 일정이 진행됐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응 전략을 세웠고, 오히려 몇몇 영화인들은 '어떤 재난이 와도 일방적 취소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꼭 관객과의 대화를 해야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확고한 신념으로 지하철을 타고 취소된 스크리닝에 나타난 게스트도 있었다. '버닝'의 오픈토크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다가 행사가 취소된 상황을 맞은 배우 유아인 역시 서울로 돌아가려다 팬들이 밤새 기다렸다는 소식에 다시 행사를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6일 오후 1시 상영작 감독들 역시 태풍 때문에 상영관이 텅 빌 것이라 생각했다가 상영관을 찾아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감동받곤 했다.

(지난 몇 년 간) 관객과 방문객, 영화제를 준비하는 우리들까지 모두 영화제를 정치적 대립이나 갈등과 함께 기억했었다. 다시 영화에 대한 애정, 영화인들을 만나는 진정한 즐거움을 되찾게 하겠다고, 그 애정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는데 태풍이 오히려 그 마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것 같다."

-개막 한 달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영화제 중장기 목표 수립을 위한 '비전 2040 위원회'에 대해 언급했다. 계획이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비전 2040 특별위원회'의 위원들을 선임해 플랜들이 만들어졌다. 아직 조금은 원론적인 이야기, 혹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래서 좋은 지적과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장기 전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관객수가 많은 해를 절정기라 볼 수는 없지만, 최절정기 가장 많은 관객수를 동원했던 위상을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는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세계 최정상의 비경쟁 영화제로 도약하려는 구체적 목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조직은 지금도 어느 정도 투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투명한, 노동 생산성이 높은 조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국제화지수가 높은 영화제가 될 필요도 있다. 일례로 메이저 영화제 중 외국인 전문 인력이 한 명도 없는 영화제는 없다. 인재가 꼭 한국인인 건 아니다. 영화제 문화라는 것은 명백히 유럽에서 온 것이고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받아들이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 조직도 그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일단은 그런 중기적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다. 영화제가 끝나면 조직개편을 할 예정이다. 이용관 이사장과 협의해 이 문제에 대한 확고한 로드맵을 구축할 전망이다."

-지난 5일 열린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는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한일관계에 대한 질문에 소신있게 답한 뒤 일본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관객의 알 권리를 대신 충족시키겠다'는 명분 아래 할 수 있는 질문일 수 있다. 질문의 의도를 알지만 모더레이터를 맡은 내가 그 질문을 자를 수는 없다. '내가 영화 관객들을 대신해 질문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니무라 준에겐 표현의 자유도,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 '노 코멘트'를 할 수 있는데 성실히 답한 것이다. 그런데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다. 일본의 지극히 보통 사람이라 해도 쿠니무라 준의 답을 보고 '저 사람이 한국 편을 드네'라는 반응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극우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욱 심각했다.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은, 당시 상황을 다시 되짚고 교통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해선 위험을 회피할 권리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후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반응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발생한 문제인데 그로 인해 영화인이 개인적으로 큰 피해를 보거나 개인 활동에 지장을 받을까봐서였다. 예를 들어 버라이어티의 기자가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연'의 기자회견에서 판빙빙의 탈세와 관련한 질문을 한 일도 있었다. 중국과 홍콩 여성 배우들에게 (쿠니무라 준 때와) 같은 맥락으로 그런 질문을 던졌는데 당시엔 배우들이 답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뉴커런츠 심사위원장으로는 김홍준 감독을 위촉했는데, 배경이 궁금하다.

"숨은 뜻이 있었다. 심사위원으로 오는 이들의 화려한 영화 경력이나 국제적 지명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알다시피 뉴커런츠 섹션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 영화를 내놓은 감독들의 신작이 경쟁을 하는 부문이다. 심사위원장은 예술영화에 대해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심사위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잘 조율하며 큰 충돌 없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인으로 뛰어날 수 있어도 심사위원장으로 형편없는 사람일 수 있다. 지명도만으로 심사위원장을 선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홍준 감독의 경우 국내 영화인들 중 가장 뛰어난 수준의 영어 실력으로 높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자랑한다. 다른 심사위원들을 리드할 수 있고 예술영화에 대한 지식도 깊고 풍부한 인물이었다."

-영화제 후반의 게스트나 행사 프로그램이 빈약했다는 평도 있다.

"올해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였다.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직이 3개월 이상 공석이었고, 영화 선정위원회에서도 세 명의 결원이 있었다가 4월 중순에야 공개 모집을 통해 프로그래머를 충원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프로그래밍이 시작됐으니 전반적으로 준비가 예년에 비해 3개월 이상 늦었다. 다행히 영화 초청 시스템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게스트 초청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접촉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부분이 있다. 공석이 길었던 일이 그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초청하는데 몇 년은 걸리는 게스트들이 있다. 부산을 찾았던 쿠엔틴 타란티노도 첫 초청을 한 지 4년 만에 왔었다. 몇 년 전 칸국제영화제에서 김동호 전 이사장과 내가 뉴욕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함께 그와 저녁 식사를 했었다. 당시 자신이 좋아하는 무수한 B급 영화와 할리우드에 대해 혼자 긴 시간을 이야기하더라. 그런 유쾌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 왔던 것이다. 당시엔 타란티노의 초청에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았다. 호텔도 주지 않고 배지만 줬는데 본인의 의사로 야외 무대에 올랐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초청하지 못한 게스트들은 내 임기 내에 좋은 결실을 맞을 것이다. 아시아는 시차가 적으니 연락이 그나마 쉬운 편이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와 가족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어 큰 어려움이 없지만 서구는 다르다. 그들에겐 부산국제영화제가 딱히 매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저런 시도를 했는데 결실을 보지 못한다면 반드시 내년, 내후년에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후반 이벤트가 부족했다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관객들의 아쉬움을 샀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을 중후반에 걸쳐 소개했다. 만남을 위한 파티도 하고, 새로운 배우, 독립영화 연기자들을 소개하고 격려하려 상도 줬다. 심사위원을 스타들로 선임해 맡기는 것도 중후반 강화 전략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후반부 이런 노력들을 격려할 기자들의 확보다. 후반부에 취재진을 더 초청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올해는 남포동에서 선보인 새 프로그램 '커뮤니티 비프'가 사랑받았다. 관객 중심 프로그램으로서의 매력도 있지만 추억의 '남포동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영화제 구역으로서 남포동의 부활은 부산지역 영화, 영상 커뮤니티 대표들이나 종사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그래서 이용관 이사장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실 지금 규모보다 훨씬 큰 행사를 시도하려 했는데 위험 요소가 많아서 올해 한 번 해보고 성공하면 지속사업으로 가져가는 방향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지난 3일 전야제 때 언론으로부터 그것을 넘어서는 도전적 질문을 받았다. '언제 남포동으로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때 어느정도 본행사를 남포동에서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층을 넓히고 더 많은 시민을 참여시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부산 지역의 경우 동서간의 지역 갈등, 경제 격차와 문화적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산영화제가 서부산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남포동에서 본행사를 하기엔 상영관 시설 등이 너무 열악하다. 많은 부분을 정비해 중기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관객수를 더 늘리고 저변을 넓히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 공식 상영을 남포동에서 선보이는 것도 검토 중이다."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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