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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가 韓영화를 사랑하는 법


"지금, 한국 여배우로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할 고민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여배우 소리'는 매일이 바쁘다. 유명 배우로서 일상이 결코 그의 전부가 아니다. 소리는 유명 감독의 아내이자, 딸 연두의 엄마다. 친정에선 딸, 시댁에선 며느리 노릇도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여성이다.

일인다역의 삶이 정신 없이 흘러가지만, 소리의 마음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틈이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트로피를 거머쥔 실력파 배우인 그에겐 언제부턴가 만사 제치고 뛰어들만한 시나리오도, 매력적인 배역도 보이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마냥 화려해만 보이는 '배우'란 타이틀 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들의 예상과 꽤나 다른 생활이다. 선글라스를 쓴 채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가거나 어머니의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풀메이크업을 하고 치과에 가 '인증샷'을 찍어 주는 일, 매너라곤 밥 말아먹은듯 보이는 영화 제작자와 그의 친구들 앞에서 쉽게 화조차 내지 못하는 입장,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쓰는 딸을 달래는 일 같은 것이 소리의 일상이다.

여전히 출중한 연기력을 갖춘 소리에겐 이따금 들어오는 '특별 출연' 제의를 성심성의껏 거절해야 하는 미션도 주어진다.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친구들의 수식 앞에서 고뇌를 폭발시키고야 마는 소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웃프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감독 문소리, 제작 영화사연두)의 주인공 소리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문소리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으로 혜성처럼 충무로에 데뷔한, '오아시스'(2002), '바람난 가족'(2003) 등을 통해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났던 그 문소리가 영화의 주인공이고, 각본가이고, 감독이다.

데뷔 18년차 경력에 빛나는 배우 문소리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과정을 통해 연출한 세 편의 단편을 묶어 하나의 중편으로 완성했다. 첫 연출작인 2014년 '여배우'를 시작으로 '여배우는 오늘도'를 거쳐 2015년 '최고의 감독'까지, 각 단편 사이에는 제작 시기의 시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의 단편이 담는 소리의 '오늘'들이 모인 이 영화는 결합 자체로 완결성을 띤다. 마치 소리의 연속된 3일을 순차적으로 그린듯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연속성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인 '배우'이자 '엄마' '딸' '며느리'인 주인공 소리의 다층적 정체성과 매끄럽게 직조된다. 제목이 차용하는 '여배우'로서의 삶은 인물이 소화해야 할 다양한 역할, 그것들이 가진 묵직한 무게감으로 확장된다. 오해 섞인 시선, 시선과는 다른 생활, 그 둘을 모두 놓을 수 없는 소리의 고민은 신인 감독 문소리의 재치 넘치는 연출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차진 유머와 갑갑한 현실을 적절히 배합하면서도 치열한 자기객관화의 눈을 잃지 않은 태도에 기꺼이 박수가 나온다.

남성 배우 중심의 한국영화계에서 '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실력과 매력' 사이의 줄타기에 힘쓰는 소리의 모습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배우 문소리의 민낯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의 언론 배급 시사에서 '여배우는 오늘도'의 리얼리티에 대해 "픽션이지만 100% 진심"이라고 답했다. 그의 실제 삶과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는 사건이 아닌 정서다. 유사한 이야기를 극화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감정과 마음"을 영화로 그려냈다.

한국에서 여성 배우로 살아가는 일을 가리켜 "녹록치 않다"고 말한 그에게, '여배우는 오늘도'는 한국영화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는 방식이다.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한국영화계에서 문소리는 그저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 2014년 단편 '여배우'를 첫 공개한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문소리는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하게 된 배경을 알리며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꿔본 적은 없지만, 영화 전반에 대해 다시 공부하는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그가 한 말은 자못 흥미로웠다. "얼마나 많은 감독들이 저를 한가하게 했으면 (배우가) 시나리오 안 들어오는 내용의 영화를 찍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겠나"라며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99%"라고 말해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다. 재치는 넘쳤지만 유머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내가 어떤 태도로 영화를 대하고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3년 뒤, 지난 8월31일 열린 영화의 언론 배급 시사에서 문소리는 다시 말했다. "(여배우로서의 삶이 녹록치 않다고 해서) '왜 그런거야'라며 화가 난 상태로 지낼 수만은 없다"고 했다. 그는 "변화시키려면 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는게 좋을지, 어떻게 하면 변화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반 발자국이라도 움직여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며 "그것이 한국에서 지금 여배우로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할 고민이고 행동이라 생각한다"고 알렸다.

긴 말이 필요 없을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에게 '매력'을 고민하게 하고, '시나리오 없는 배우'의 자전적 고민을 영화로까지 만들게 한 곳이 한국영화계다. 그럼에도 문소리는 자신이 뿌리내린 이 곳을 마음 다해 껴안는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런 문소리가 한국영화를 향해 보내는 뭉클한 러브레터다. 100%의 진심이 담긴.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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