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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1년]2015 안방극장, 막장 어디까지 봤니?


임성한의 은퇴가 보여준 막장 철퇴와 고품격 막장

[이미영기자] '막장+고급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단어지만, 더 이상 어색하고 낯선 조합은 아니다. 요즘 안방극장에는 막장 드라마의 자극적 속성은 갖췄지만 세련되게, 또 트렌디하게 무장한 드라마들이 많다. '막장'으로 분류하는 게 미안할 만큼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수 년간 안방극장의 화두는 '막장'이었다. '식상하다'는 대중들의 질타와 '제재와 심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방송계 안팎의 목소리에도 막장 드라마는 건재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비상식적 캐릭터로 버무려진 드라마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안방극장을 장악했다.

소재도 돈과 사랑,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불치병, 재벌 2세 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반복적인 소재 안에서 시청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시키기 위해서는 더 독해졌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부족했다.

2015년 안방극장은 어땠을까. 막장에도 '급'이 있었다. 여전히 드라마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막장 드라마도 차고 넘쳤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높아진 수준에 맞춘 고품격 막장도 등장했다. 막장 코드를 변주해 고급스럽게 포장했다.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소재를 맛깔스럽게 버무려냈다. 막장 드라마는 '올드하다'는 통념을 깨면서 아줌마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파고들었다. 천편일률적인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고급화 막장이 안방극장의 흥행을 쥐고 있다.

◆가족극 탈 쓴 막장, 이대로 괜.찮.아.요?

지난해 MBC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은 "내년부터 막장 드라마를 안 하겠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에서도 '막장'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그렇다면 안방극장 막장 드라마는 사라졌을까. 막장과 통속, 두 가지 단어의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충돌하지만, '정도'를 넘어 아슬아슬한 막장 코드의 드라마는 오늘까지도 차고 넘친다.

주로 '건강한 가족극'을 표방하며 출발한 아침드라마와 일일드라마는 내밀하게 살펴보면 기획의도에서 벗어나 불륜과 거짓, 악행, 복행 등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작진은 '권선징악'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자극적인 조미료를 뿌린다. 그것도 아주 많이.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은 억지 설정과 극단적인 사건 전개, 몰상식한 캐릭터 등으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얼굴에 파스타를 끼얹는 장면이나 고부 갈등을 묘사하면서 막말 사용,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장면 등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를 받았다.

KBS2 아침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는 모진 시집살이를 당하던 며느리(심이영)가 남편의 죽음 이후 재혼해 전 시어머니(김혜리)를 며느리로 맞게 된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막장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MBC 일일드라마 '위대한 조강지처'는 남편의 불륜녀가 알고 보니 이복동생이라는 반전(?)의 출생 비밀로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남편의 불륜녀는 심부름 센터 직원을 이용해 "(전부인을) 죽이지만 말고 혼내줘라"고 사주한다. 자녀들과 TV를 함께 시청하는 저녁 7시40분대에 버젓이 방송되는 내용이다.

많은 일일극과 아침드라마들이 재미를 위한 극단적인 설정을 한다. 그러나 이같은 막장 요소들이 모두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드라마의 작품성과 완성도보다는 자극만을 추구하는 '그 나물에 그밥'인 드라마는 더 이상 희소성의 가치가 사라졌다.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시청률 또한 기대에 못 미친다.

◆막장이면 다 통한다? 임성한 은퇴가 의미하는 것

임성한 작가가 지난 5월 종영한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고했다. '막장의 대모'라 불리던 임성한 작가의 은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성한 작가는 시청률 50%를 넘었던 '보고 또 보고'와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등 숱한 히트작들을 쓴 흥행보증수표였다. 독특한 소재와 파격적인 전개, 톡톡 튀는 대사, 흡입력 강한 스토리와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작품에 몰입케 했다. 그러나 '신기생뎐' '아현동마님' '오로라공주' 등을 거치며 막장 작가로 비난과 조롱을 받았고, 결국 '막장 대모'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얻었다.

임성한 작가는 그간 '성공의 표본'처럼 여겨진 작가였다. 비난 속에서도 꾸준히 작품 할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시청률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개연성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의 행동 범주를 보여주는 캐릭터와 복수에 복수를 보여주는 스토리는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저예산의 고효율 드라마, 한류드라마에 비해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적게 들고 수익은 쏠쏠하니 제작사와 방송사 입장에서는 달콤한 유혹일 수 밖에 없었을 터.

그러나 임성한 작가의 도 넘은 '막장 행보'는 결국 시청자들의 외면과 끝없는 비난에 시달렸다. 은퇴작이 된 '압구정 백야'는 복수를 위해 친모의 며느리가 되는 파격적인 소재, 개연성 없는 전개와 뜬금 없는 장면,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듯한 대사로 끊임 없이 지적을 받아왔다. 임성한표 비상식적인 스토리 설정에 무뎌진 탓인지, 흡입력 없는 스토리에 질린 탓인지 시청자들은 '압구정 백야'를 외면했다. 드라마는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에 미치지 못하는 10%대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제 아무리 스타 작가라 할지라도, 시청자들은 더 이상 '질 낮은' 막장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전작을 우려먹는 듯한 자기 복제, 당위성 없는 막장에 언제까지 시청자들이 박수쳐 줄 것이라 믿는 안일함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막장에도 '급'이 있다…고품격 막장 장르 탄생?

불륜과 복수, 질투 등 천편일류적인 재료라고 할 지라도 이를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이른바 막장 코드의 변주, 막장드라마의 고급화다. 자극적 소재 속에서도 시선을 붙들 차별화 요소들이 필요하다.

현재 방영 중인 MBC '내 딸 금사월'과 MBC '화려한 유혹', SBS '애인 있어요' 등은 '막장'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막장의 고급화'라는 단어에 반감을 드러내는 시청자들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품격 드라마'라고 마냥 깎아내리기엔 분명 이들 작품의 매력이 있다. 배우들의 호연 또한 '막장 논란'을 상쇄 시키는 동시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든다.

'내 딸 금사월'은 막장 논란에도 쾌감을 안기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화려한 유혹'은 완성도 높은 통속극으로 호평받고 있다. '애인있어요'는 파격적 설정 속에서도 멜로 감성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다.

'내딸 금사월'는 출생의 비밀, 불륜, 복수 등 극 설정 때문에 막장 코드를 남발한다는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왔다 장보리' 신드롬을 만들었던 김순옥 작가의 '자기 복제'라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그저 그런 막장이라고 치부하기엔 시청자들의 반응이 너무 뜨겁다. 20%를 넘는 높은 시청률은 차치하고서라도 불륜과 복수라는 기본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하다는 평이다. 전인화의 복수 이면에 얄궂은 운명에 처한 젊은 청춘의 성장스토리를 곁들였다. 김순옥 작가가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도 기존의 막장과 다르다. 오버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과한 감정을 표출하는 캐릭터들은 코믹에 가깝다. 짜증 유발보다는 오히려 시트콤을 보는 듯한 재미를 안긴다. '김순옥표 막장의 진화'라고 부른다.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도 불륜이라는 소재로 다소 '센'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흡입력 있는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화제를 만들고 있다. 불륜으로 헤어졌던 전 부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소재 자체는 '막장'을 피해갈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것이 사실. 유부남인 진언의 마음을 뒤흔들며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 하는 박한별의 캐릭터도 시청자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럼에도 남녀 주인공의 절절한 감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세밀한 감정선은 멜로를 자극 시킨다. 남녀 주인공이 다시 사랑을 하기엔 너무 비상식적 상황이지만 이를 애틋한 사랑으로, 운명으로 느끼게 하는 건 스토리의 힘이다.

MBC 일일드라마 '화려한 유혹'도 그렇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남편을 잃은 신은수(최강희 분)와 아버지의 자살로 파국을 맞는 진형우(주상욱) 등 주인공들의 비극적 삶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뚜렷한 선악 구도와 악랄한 범죄로 점철된 뻔한 복수극일지 알았으나 복수를 풀어가는 그 방식이 꽤 세련됐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치들이 촘촘하게 배치됐다. 드라마 속 벌어지는 사건들도 개연성 있게, 군더더기 없이 풀어나가고 있다.

시청자들의 눈은 높아졌고, 드라마 소재들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착한 드라마는 밋밋하다고 하고, 너무 창의적이거나 실험적인 작품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 한다. 작품성 없이 자극적이기만 한 막장은 짜증스럽다. 자극적인 소재로 말초 신경을 자극하면서도 적당히 잘 포장한 드라마, '막장의 고급화'는 무한경쟁 시대에 처한 드라마들의 생존 전략이 아닐까.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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