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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년]특별인터뷰…김지연, '이 세상 모든 무명 선수들에게'


무명에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난 '펜싱 여제' 김지연

[최용재기자] 그녀는 부산의 '천방지축' 꼬마였다.

피아노, 미술 등 또래들의 학습 대상은 그 꼬마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여자 꼬마였지만 동네에서 남자와 어울리면서 뛰어 노는 것이 더 좋았다. 매일 남자들과 싸우고 다녔다. 그리고 지지 않았다. 태권도장을 열심히 다닌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피아노, 미술학원에 가면 울면서 뛰쳐나왔다. 그녀는 그냥 동네에서 뛰어 노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릴 때 뛰어다는 것을 좋아했다. 동네에서 남자와 어울리면서 매일 싸우면서 놀았다. 예능 학원 대신 태권도 도장을 다녔다. 부모님께서 다른 여자애들처럼 피아노, 미술 학원을 보냈는데 싫어서 매일 울었던 것 같다. 내가 태권도 도장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운동신경이 있었다기보다는 단지 뛰어 노는 것이 좋았다."

마냥 철없이 뛰어 놀던 꼬마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가 손에 쥔 것은 '칼'이었다. 그녀는 부산재송여중 1학년 때 코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펜싱에 입문할 때 그녀의 종목은 플뢰레였다.

왜 그녀는 칼을 잡았을까. 그녀가 좋아하는 태권도도 있었고, 또 다른 스포츠 종목도 많은데 왜 펜싱이었을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펜싱이 그렇게 저변도 넓지 않았고, 인기와 관심이 많지도 않았다. 그녀는 펜싱에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다른 큰 이유가 없었다. 펜싱이 유일하게 그녀를 질리지 않게 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하든 빨리 지겨움을 느낀다. 변덕이 심했다. 엄마도 처음에 펜싱을 한다고 했을 때 얼마 못갈 줄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를 하시다가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펜싱은 내가 유일하게 질리지 않은 운동이었다. 재능이 크게 있었다기보다는 펜싱은 계속 생각나는 유일한 종목이었다. 펜싱을 하지 않고 있으면 계속 생각이 났고, 그래서 다시 칼을 잡게 만들었다."

그런데 초창기 칼을 잡은 그녀는 펜싱보다 다른 곳에 더 관심을 보였다. 펜싱을 잘 하려는 의지보다도 펜싱부 선배들과 더 재미있게 놀러 다니려는 의지가 컸다. 펜싱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니들과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펜싱은 즐겁게 지내기 위한 보조 수단이었던 것이다.

"펜싱이 어떤 운동인지 아예 몰랐다. 중학교 때 펜싱부 코치님이 하라고 권유를 하셨다. 기본기를 연습하는 등 잠시 해봤는데 사실 펜싱보다는 펜싱부 언니들과 어울리고 다니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펜싱부는 항상 함께 다녔고, 운동보다는 선배들과 놀러 다니는 것이 좋아 펜싱부에 남아 있었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녀, 펜싱 실력이 향상될 리 없었다. 항상 제자리였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부산 디자인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종목을 사브르로 전향을 했다. 사브르로 전향하면서 그녀의 펜싱 실력은 조금씩 빛을 내기 시작했다. 펜싱부 창단 2년이 된 신생팀이었지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고등학교 때 사브르로 입문했다. 플뢰레는 성적도 안 좋았고, 펜싱부 언니들이 워낙 잘해 실력차가 많이 났다. 고등학교 때 코치님의 권유로 사브르를 시작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펜싱부 2년차 신생팀이었지만 성적은 좋았다. 사브르로 바꾸면서 언니들과의 실력차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단체전에 내가 나서야 할 때를 대비해서 언니들과의 실력을 맞추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실력도 늘었다. 국제대회 나가서 성적도 내기 시작했다."

2009년 그녀는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하지만 '만년 후보'였다. 그녀는 대표팀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후보로 전전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도 그래서 나서지 못했다. 그녀는 세계랭킹 포인트가 아예 없을 정도로 국제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그녀는 혹독하도록 초라한 '무명의 선수'였다.

"2009년 고 3때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하지만 후보를 전전해야만 했다. 선배들이 워낙 잘했다. 내가 4명 안에 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국제 대회를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당시에는 국가대표라는 자긍심보다는 내가 더 노력하고 발전해서 당당하게 다시 국가대표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경험과 실력을 더 쌓고 대표팀에 다시 올 수 있도록 노력했다."

처절한 무명의 선수로 살던 그녀, 2011년부터 조금씩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1년 러시아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주목을 받은 그녀는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며 전진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에 대표로 나선 그녀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한국 펜싱 역사상 최초의 여자 올림픽 금메달이 그녀가 쥔 칼에서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국제대회 첫 우승이 가장 높은 무대 올림픽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놀랐다. 무명 선수의 금메달에 환호했다. 새로운 스타 등장에 감격했다. 그녀는 당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로또 맞은 기분이다."

"내 계획대로라면 22살에 대표팀에 다시 발탁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22살에 다시 대표팀이 됐다. 그리고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깜짝 스타라고 했다. 펜싱에서 메달이 나오더라도 (남)현희 언니 정도라 예상했는데 내가 금메달을 땄다. 깜짝 스타였다. 이후 인생이 조금씩 변했다. 아직도 길거리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한 번도 하지 못한 화보 촬영도 했다."

큰 꿈을 이룬 후엔 많은 이들이 '정체기'를 경험한다. 모든 것을 이뤘다는 생각에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의지가 발휘되지 않을 때가 있다. 성취감에 빠져 자만하게 된다. 긴장감, 집중력도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부진이라는 것이 찾아오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그녀 역시 이런 것들을 경험해야만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부담감은 더 컸다. 아시안게임이 다가오자 더 많은 부담감을 받았고 긴장감도 2배로 더 왔다. 부담감을 많이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 예선 첫 경기 나갈 때는 너무 부담이 됐고 긴장이 됐다. 엄마가 처음으로 경기장에 오셨는데 중국 선수에게 졌다. 그래서 긴장을 더 많이 했다. 이후 조금씩 긴장이 사라졌고, 잘 흘러간 것 같다. 단체전 금메달 딸 때 마지막에 포효했다. 나는 그 사진이 싫다. 이상한 사진도 많다. 이번에는 자제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긴장을 하고 너무 기쁘다보니 나도 모르게 또 포효가 나왔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올린 그녀는 다시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이번에는 런던 올림픽 때보다 더욱 크고 어려운 침체기에 빠졌다. 팀의 에이스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그녀를 강하게 짓눌렀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후배들을 이끌어야만 했다. 후배들을 데리고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 브라질 리우 올림픽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마음이 잡히지 않으면 운동을 해도 재미가 없을 때가 있다. 시간만 마냥 때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패턴도 이상해졌다. 그래서 종이에 내 목표를 적었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까지 이룰 목표를 하나씩 적었다. 목표가 생기니 다시 의지를 가지고 운동을 하게 됐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그래서 그럴 때면 항상 잔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노래를 크게 틀어놓은 채로 러닝머신을 달리기도 했다."

그녀는 무명의 선수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최고의 스타 선수가 됐다. 그녀를 향해 '깜짝 스타'라고 하지만 그녀는 깜짝 스타가 아니었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땀방울과 노력이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결실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준비된 스타였다. 올림픽 금메달 이후 지속적으로 굵직한 성과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행보가 깜짝 스타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녀처럼 깜짝 스타, 아니 준비된 노력과 열정으로 결실을 만들어내려는 선수들이 있다. 언제 빛을 낼 지 기약은 없다. 하지만 그녀처럼 노력한다면, 또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환한 빛을 낼 때가 올 것이다.

최고의 스타가 되려는 이 세상 모든 무명 선수들에게 그녀가 전한다. '펜싱 여제' 김지연, 그녀의 진심이 담긴 말이다.

"자신의 목표가 있고 운동을 하다 보면 그것을 포기하고 싶을 경우가 많을 것이다. 힘든 경우가 더 많고 우는 날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고난을 잘 참고 극복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빛나는 날이 온다. 노력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에게도 행운이 온다고 생각해라. 행운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그 문은 반드시 열린다. 그 문이 열리는 날이 온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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