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르포] "복비 따따블 드릴게요" 역전세난에 속끓는 집주인


귀해진 전세입자 구하려 고가의 중개수수료 자처…문의는 늘어도 보증금 반환 부담은 여전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전세 매물을 내놓은 지 두 달이 넘어도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 부동산에 복비를 2배로 주겠다고 하니, 바로 반응이 오더라고요. 세입자가 귀한 상황에서 몇 배의 복비 지출이 생기더라도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섭니다."

정부가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 각종 세제 및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매매시장에선 다소나마 거래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세시장은 아직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 고금리 현상이 계속되고,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큰 만큼 갱신계약 시기를 맞은 집주인들은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역전세난'을 실감하는 중이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떨어져 집주인들이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경우나 세입자를 받지 못해 공실이 될 가능성까지 안아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되자 집주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공인중개사들에게 정해진 기준보다 중개수수료를 더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하며 세입자 모시기에 진력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전경. [사진=김성진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전경. [사진=김성진 기자]

실제 강남구 대치동 일원 아파트를 임대 놓고 있는 집주인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갱신계약을 한 후 전세 계약 만료 1년을 남겨두고 이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세입자 B씨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매물을 내놓은 그는 보증금 반환 효력이 발생하는 3개월을 앞두고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속앓이하고 있다.

A씨는 "세입자가 무조건 2년 더 꽉 채워 살겠다고 해 재계약 시 목돈이 들어가는 보증금 대신 월세로 전환해 주겠다는 조건을 수락했다"며 "그런데 정해진 계약기간보다 1년 앞서 집을 비우겠다는 의사를 최근 밝혀와 급하게 세입자를 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0년이 넘게 중개를 맡긴 단지 내 부동산을 찾아 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세입자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세입자 B씨 역시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집주인 A씨에게 '임차권 등기를 걸겠다', '이틀에 한 번씩 상황을 보고하라', '전세금에 상응하는 연체 이자를 준비하라' 등의 구체적인 주문을 해왔다고 한다.

집주인 A씨는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목돈이 한정적이고, 오래 거래를 튼 부동산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해당 부동산 대표 C씨 역시 주변 부동산 수십여 곳에 매물을 공유했다고 기다리란 말만 했다. 세입자 구하기가 워낙 어려워 어쩔 수 없단 걸 알고 있으나 애가 탔다"고 토로했다.

세입자 B씨가 이사 의사를 밝히고 3개월이 지나면 무조건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데, 보증금 미반환 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 즉 임차권 등기나 보증금에 대한 지연 이자 지급 등의 사태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결국 중개업소 대표 C씨에게 2배의 복비를 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A씨는 "복비 2배를 내더라도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직접 세입자를 구할 수 없고 당장 확보할 수 있는 자금도 한정돼 중개업소에 수수료를 더 주겠다고 했는데, 매물을 내놓은 지 2개월만에 4명이 집을 보러 오겠다고 연락해와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D씨는 역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치자 중개업소에 부동산중개료를 네 배로 제시한 경우다.

2주택자인 D씨는 세 부담에 2년 전부터 현재까지 거주하는 경기 용인 일원 전원주택을 처분하고 20년 넘게 보유한 강남권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부동산 경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으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5년 전 시세보다 높게 매입한 전원주택을 훨씬 낮은 가격에 내놓았으나 2년 동안 단 2명의 예비 매수자가 집을 둘러봤고, 매매는 실패했다. 이에 D씨는 지난해부터 본인이 실거주하려 했던 강남 아파트 전세 기간 만료에 앞서 후속 세입자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D씨는 "집을 처분하려고 해도 상황이 여의찮아 우선 후속 임차인이 필요한 아파트에 복비를 따따블, 현재 거주하는 주택 처분을 위해 따블로 주겠다고 중개업소에 각각 알렸다"며 "집이 팔리지 않고 세입자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리니 '복비를 2배로 올리면 무조건 나간다'는 답변이 수십 개가 달렸다"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값 복비 시행 이전이나, 중개수수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았던 5~6년 전까지만 해도 정해진 복비보다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현금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때 지자체에 신고하면 경고 등의 행정 처분을 받게 되는데 근래 정부 주도로 수수료 체계가 잡히면서 부정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엔 역전세난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매도자들이 먼저 나서 복비를 두 배 이상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몇 배의 복비 지출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인데 상호 간의 협상하에 책정된 과도한 복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개수수료를 더 많이 준다고 해서 세입자가 시중 거래사례보다 높은 보증금을 떠안고 계약할 리는 만무하다는 점에서 근본적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구 도곡동의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전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복비를 알아서 더 주겠다는 집주인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럼에도 시세는 이전 보증금보다는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집주인으로서 보증금 반환 부담은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르포] "복비 따따블 드릴게요" 역전세난에 속끓는 집주인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