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걸 가진 김장하 선생 [원성윤의 人어바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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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원성윤 기자] 경남 진주는 한때 '교육의 도시'로 불렸다. 인구 34만에 고등학교, 대학교가 꽤 많이 포진한 이유에서였다. 2004년 기준으로 학생 인구만 10만 명에 달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지역 퇴색이 공고해지면서 옛 명성은 쇠퇴했지만, 그 중심에는 진주 명신고등학교라는 한 사립학교가 있었다. MBC 경남 '어른 김장하'는 명신고등학교의 이사장이었던 김장하의 일대기를 좇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사진=MBC경남]

◆ 수백억의 부자, 모든 걸 내려놓다

1962년, 그는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한약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고향 사천을 거쳐 진주에 '남성당 한약방'을 차리는데 '박리다매' 전략을 취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돈으로 한 달 1억원을 벌 정도였다. 그는 1984년, 진주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한다. 번 돈으로 건물을 하나씩 지으며 학교가 모습을 갖춰가자 그는 망설임 없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명신고가 신흥 명문으로 자리 잡을 무렵이었다. 당시 돈으로 약 100억원이었다고 한다. "돈은 쌓아두면 악취가 난다"는 그의 지론도 한몫했다. 1991년, 그의 나이 48세였다. 이후에도 그는 '진주신문' 후원, 남성문화재단을 통한 지역사회 역사문화 발굴 지원,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영남대표 등 셀 수 없는 단체에 지원을 해왔다. 후원에는 어떤 조건도, 단서도 없었다.

경남 진주 촉석루에 앉아 '김장하 키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장하 선생. [사진=MBC]

조해정 부산대 교수.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이다. [사진=MBC]

◆ 민주화에 대한 열망, '김장하 키즈' 사회에 뿌리내리다

그의 삶을 좇다 보면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민주화'에 대한 묵묵한 지지였다. 명신고등학교 이사장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설립됐을 때도 그는 선생님들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전교조 선생님들 명단이 공개되고, 도교육청에서는 "해임하고 결과를 보내라"고 해도 "나는 한 명도 해임할 수 없다"며 의연하게 맞섰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의 집에서 숙식하며 재수를 한 뒤 성균관대 철학과에 들어간 대학생 조해정은 민주화 시위에 참여해 징역 3년을 살게 된다. "죄송하다"는 말에 그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을 둘 다 똑같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하고 그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공과를 따지자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는 말로 답한다. 학생 조해정은 이후 부산대 교수가 됐다. 조 교수는 "살면서 그런 지지를 받아본 적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진주 촉석루에 앉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일본 사이타마대학교 우종원 교수(일본 사회정책학회 회장) 역시 반제동맹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인물이었다.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 "당신 같은 빨갱이들이 설치는 세상을 만들었어, 왜?"라고 말한다. [사진=MBC]

◆ 그를 향한 세상의 그릇된 편견과 야멸찬 비난도 존재했다

"김장하 씨, 당신 빨갱이 짓해서 죄송하다고 국가에 반성문 써서 제출해."

난데없이 걸려 온 전화에 놀랄 법도 하지만 덤덤하게 전화를 끊는다. 다큐도 흥분하지 않는다. 김장하 선생이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지원을 한 것에 앙심을 품은 전화였다. 그는 "세월이 증명해 주는 것"이라며 일일이 반박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다. 저 삶을 살기 위해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고도 말한다. 감히 따라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선생은 자신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 "돈은 거름과 같다"는 신념으로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한약방에서 번 돈을 묵묵히 사회에 뿌렸다.

'경남도민일보' 기자 출신인 김주완 작가. [사진=MBC]

◆ 기자 김주완 '채현국'에 이어 '김장하'를 알리다

김장하 선생이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건, 인터뷰를 극도로 꺼린 그의 성정 탓이었다. 한사코 피했다. 그런 그를 세상에 환하게 알린 건 바로 '경남도민일보' 기자였던 김주완 작가였다. 그는 기자 시절, 나쁜 놈들의 악행을 알리는 데 힘썼지만, 세월이 지나면 다시 발호하는 지역 토호 세력에 진절머리가 날 때 채현국 선생을 만나게 됐다고 말한다. 채 선생 역시 자신의 전 재산을 나눈 사람이었고, 2탄으로 김장하 선생을 알리게 됐다. 본인이 처음부터 자신의 선행을 다 이야기하면 좋으련만 그는 그럴 리가 없었고 김주완 작가가 하나씩 퍼즐을 맞춰나갔다. 그는 "취재하면서 이토록 협조적인 적이 없었다"며 증언자들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빙산과도 같은 그의 일각을 알린 그의 노력 또한 추앙받을 만 하다.

요란한 은퇴식 없이 그는 자신의 한약방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진=MBC]

◆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했다"는 김장하 선생, 모든 걸 가지다

한국 기부 문화는 전 세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기부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세계기부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119개국 중 8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코로나가 정점이었던 2021년에는 110위로 사실상 꼴찌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토록 기부에 인색한 것은 사회적 연대 의식이 약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살기 힘듦, 팍팍함, 신뢰 자본의 저하 등도 이유로 꼽힌다. 김장하 선생에 대한 울림이 큰 것은 바로 스스로 가진 것을 내려놓고도 생색내지 않음에 있을 것이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은 김 선생은 그가 그토록 꿈꾸었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했다"는 걸 이룬, 모든 걸 가진 사람이 되었다.

* 방송은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MBC(23, 24일 오전 8시)를 통해서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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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윤 기자(better201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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