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국력이다] ⑥김정률 그라비티 회장 성공 스토리


 

요즘 그라비티 계좌에는 19개국에서 매월 수십 억 원의 현금이 입금된다. 회사측은 나스닥 직상장 문제로 정확한 규모를 밝히지 않지만, 적어도 6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게임 강국 일본에서만 매월 14억~15억 원이 들어온다. 또 이 계좌에 현금을 추가로 입금할 나라가 4개국이고, 연말 쯤이면 총 40개국에 육박할 전망이다.

들어온 돈에 비하면, 사용된 비용은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좀 과장해 말하면, 해외에서 입금되는 돈의 대부분을 수익으로 잡아도 된다는 뜻. 콘텐츠 사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경우 갖는 매력이 바로 이런 점이다.

그라비티의 성공은 당연히 '신화'로 불릴 만하다. 23개국에 팔린 우리나라 콘텐츠 상품은 드물다. 23개국에 수출된 오프라인 상품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세계 3천만 명이 매일 쓰는 우리나라 상품도 그리 많지 않다. 그라비티는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를 통해 설립 5년 만에 이런 일을 해냈다. 중요한 것은 그라비티의 성공이 절정의 단계가 아니라 이제 시작처럼 보인다는 점. 그라비티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대개의 기업 신화가 그러하듯이, 그라비티의 성공 신화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오너이자 CEO인 김정률 회장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 회장(53)이야말로 '그라비티 신화'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에겐 특히 신화적인 요소가 많다. 지난 1일 오후 신사동 사옥에서 그를 만나 2시간 넘게 김 회장의 인생과 사업에 대해 들어봤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는 사람, 특히 관료를 선택할 때 이런 기준을 사용했다 한다. 요즘도 이 기준은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많다. 그 점에서 김 회장은 특별히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우선 외모가 투박하면서 다소 거칠어 보인다. 게다가 불같은 성격이어서 말투도 고운 편이 아니다. '사업'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할 정도다. 첫인상의 불리함은 그를 평생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이런 성정은 물론 타고난 것이었다. 때문에 그의 선친 또한 사업만은 극구 반대했다.

"5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났어요. 막내라서 그런지 융통성이 없고 원칙을 중시한 편이었죠. 고집도 센 편이었습니다. 특히 '사바사바'가 안되는 성격입니다. 서른이 다 돼 처음 사업에 손을 댔는데 선친께서 극구 말렸습니다. 제 성격으로는 사업하면 망한다는 거였죠. 그래서 선친은 군인이나 경찰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선친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사업을 하는 동안 오해와 억측을 달고 살았다고 할 정도다. 물론 외모와 말 때문이다. 거친 외모가 부풀려진 말을 생산하고, 거친 말투도 오해를 재생산해내곤 했다.

"제가 고집이 세고, 원칙에 반하는 것은 말다툼을 해서라도 주장하는 편이라서 오해하는 사람이 좀 있습니다. 하지만 대면해서 저와 진지하게 이야기 해본 사람은 오해를 다 풉니다. 진심을 알아주는 거죠.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있어요. 최근 그라비티가 잘 나간다고 소문나니까 음해하려는 세력도 좀 보이고요. 하지만 저는 깨끗합니다. 앞으로도 의연하게 대처하겠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업이 그의 천직일 수 있는 것은 그런 성품 때문이기도 하다. "하면 된다"는 뚝심과 불도저같은 도전정신이야 말로 지금까지 그의 사업을 지탱해온 기본 동력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른 즈음에, 유학에 실패한 6살 터울의 형을 도와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때부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상장기업을 일으키는 게 그의 필생의 꿈이었다. 1997년 IMF 환란위기와 함께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에 직면하면서 큰 위기도 겪지만, 2000년 4월 그라비티를 설립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제 젊은 날에 꾸었던 꿈은 현실로 눈앞에 와 있다.

"지난해 연말 벤처기업관련 상을 받는데 부끄러웠습니다. 수상자 평가항목에 '사회사업을 얼마나 했느냐'는 게 있었기 때문이죠. 옆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선을 보고 20일 만에 '벼락결혼'을 할 만큼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았죠. 이제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오해를 사면서까지 악착같이 뚝심 있게 밀어붙였던 그의 꿈이 이제는 장학재단이라는 옥동자를 낳을 태세인 것이다.

"5천년만에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1위를 하였습니다."

이는 지난해말 국내에서 열린 게임 전시회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한 말이다. 물론 그라비티의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에 관한 이야기다. 게임 강국 일본에서 라그나로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김 회장 또한 그라비티와 라그나로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일본이나 대만에 가면 라그나로크와 그라비티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돕니다. 태국에서는 라그나로크의 시장 점유율이 85%에 이릅니다. '국민게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세계적으로 3천만명이 라그나로크 이용잡니다. 일반인에게만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나 투자자도 그라비티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일본과 대만에서는 주식을 거래소에 상장하려는 게임 관련 기업이 그라비티의 투자를 원한다고 한다. 그라비티가 투자했다고 하면 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기 때문이란다. 국내에서도 인텔 같은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이 이런 대접을 받을 때가 왕왕 있다. 그라비티의 경우 일본의 소프트뱅크 자회사, 대만 소프트월드 자회사가 상장할 때 이런 투자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특히 일본 회사는 시가의 15분의 1 가격으로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 그라비티 신화가 진행형인 만큼 브랜드가치도 상승 추세다.

"그라비티의 브랜드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을 비롯해 대만 등 동남아가 그라비티의 활동 무대였다면, 최근 러시아 베트남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회주의권 국가에도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곧 영국과 계약을 체결할 예정인데,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과 동구에도 그라비티의 깃발이 나부끼게 될 겁니다."

김 회장의 이런 설명을 듣고 있다보면 한 가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라비티가 해외 사업에서 큰 성공을 하는 과정에는, 해외 사정에 밝은 참모가 있었을 것이고, 다 그 사람의 덕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김 회장의 외모나 말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김 회장이 해외 비즈니스를 위해 출장을 갈 때 같이 수행한 해외 사업팀 직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해외 사업의 중심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진짜 국제통'이다.

그는 유수 온라인 게임 업체 CEO처럼 일류 대학 출신은 아니다. 또 외모나 언변이 '스마트'하지도 않다. 그래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글로벌'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알고 나면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고 믿게 된다.

"나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건설 분야' 출신이 아니냐고 묻습니다.(거칠어 보이는 그의 외모 때문에 그렇게 물어본다는 뜻) 아기자기해야 하고 기발해야 하는 게임 분야에 어울리지 않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난 무작정 게임이 좋았고, 게임 사업만 25년 해 온 게임 전문가입니다. 해외 게임 시장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밝다고 자부합니다. 해외 인맥 측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다고 믿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고등학교 때 홀로 상경해 고려대 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80년대 초 뜻한 바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 치요다공업기술전문대학을 졸업했다. 이때 일본 생활이 글로벌 마인드의 기초로 작용한다.

김 회장은 그 뒤 82년에 2명의 직원으로 게임기판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한다. 이후 홍콩 등에서 주문이 들어오자 해외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83년에 선일렉트로닉스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한다. 이후에 홍콩 스페인 등 30여개 국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리며, 88년에는 국교 수립 전에 이미 중국에도 진출하게 된다.

한국에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고, 한국이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 되기 전부터 김 회장은 게임 관련 글로벌 사업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타격을 준 건 IMF 환란 위기였다. 수출기업이었던 터라 타격은 더 심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반주 음악 게임기로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2000년 4월에는 그라비티를 창업하며 온라인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모든 게 그렇지만 온라인 게임 사업 또한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2000년 4월20일 법인을 설립하고 2년 반 동안 투자만 했습니다. 당연히 적자였지요. 그때 이미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었지요.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국내 온라인 게임의 일반적 조류와 라그나로크가 다르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은 폭력성, 선정성, 도박성이 주무기였습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에는 이런 게 없습니다. 대신 커뮤니티를 강조했죠. 게임을 통해 유저가 만나고 게임이 이들의 브릿지 역할을 하게 한다는 세계관으로 기획된 게 라그나로크입니다."

이 때문에 사내에서는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 게임의 조류가 그런 만큼 그 쪽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유혹도 많았다는 것이다. 게임을 새로 개발하느냐, 한국 시장을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김 회장은 그 순간에 해외 시장을 돌파하기로 결정한다. 상황은 열악했다. 한국처럼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린 나라는 드물었고, 인터넷 게임의 수익성을 믿는 나라도 드물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가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도박성이 짙은) 다른 온라인 게임보다 글로벌 코드에 맞다는 결론을 내렸고,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첫 대상은 일본. 귀여운 캐릭터와 환타지성 게임이 일본에서는 통한다는 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랜 설득 끝에 손정의 사장의 소프트뱅크를 파트너로 만들 수 있었다. 또 그런 믿음과 확신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 시장에서, 라그나로크는 국내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게임보다 동시접속자가 5~10배 많다.

라그나로크는 이후 대만 등으로 퍼지며 게임에도 한류를 만들어냈다.

그의 궁극적인 꿈, 그것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기반은 다졌다.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다. 며칠 뒤에는 그의 첫 번째 꿈(상장 기업)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루게 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그와 그의 회사를 믿고 적잖은 자금을 투자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라비티 2기'다.

"나스닥에 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했습니다. 8개월 동안 150가지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에 대한 심사가 가장 까다로웠습니다. 투자한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얻기 위해, 참으로 집요하게 질문하더군요. 어떤 질문은 4일 밤을 꼬박 새며 준비해야만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그 집요한 질문에 일관되게 대답했다고 한다. 25년 동안 게임 사업만 했고, 모든 게임을 해봤고, 앞으로도 게임만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라비티가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게임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캐릭터,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 판매 등도 주요 사업 영역이다. 앞으로도 게임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 MultiUse)가 그라비티의 사업 방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투자자에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절대 엉뚱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향후에 선보일 사업 방향도 명확하고 뚜렷하다.

"(나스닥 상장을 통해 글로벌 자금이 들어오면) 좋은 콘텐츠 구입 및 제작에 집중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콘텐츠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회사 콘텐츠의 라이센스를 확보할 것입니다. 결국 그라비티가 가는 길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고,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또 그라비티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주력할 거예요."

전문 경영인으로서 김현국 사장을 영입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한국이 종주국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주력으로 하면서,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회사, 그라비티. 그리고 그라비티의 연출자이며 주인공인 김정률 회장. 나스닥 상장 뒤 그들이 보여줄 2기 활동이 기대될 수 밖에 없다.

게임업계에서는 원로라 해도 지나치지 않고, 그러면서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 회장의 눈에 국내 게임시장은 참 위태롭기만 하다. 그 때문에 "앞으론 오해를 줄이기 위해 말을 줄이겠다"던 그가 기어코 다시 입을 뗐다.

그가 늘 오해를 받았던 것처럼, 다시 업계의 오해를 불러올 이야기이지만(그는 "이 부분을 '오프 더 레코드'로 할까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국내 온라인 게임은 이미 게임이라기보다 도박에 가깝다"고 한탄했다. 게임 시장보다 훨씬 커져버린 아이템 거래 현상을 두고 하는 소리다.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이어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아이템 거래를 통한 도박적 성격으로) 게임을 하려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닙니다. 그 때부터는 게임 자체에서 재미를 찾는 게 아니라 돈버는 것만이 게임을 하는 이유가 됩니다. 돈내기를 하지 않으면 고스톱이 재미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죠."

최근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 아이텀 거래 규모는 연간 7천억~8천억원이다. 또 김 회장 주장처럼 이를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고 본다면,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는 매일 판돈 20억원 짜리 도박판이 개설되고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이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템 거래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발언을 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아이템 거래가 게임 흥행을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경우 게임 자체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임성으로 승부하려 하지 않고 도박성으로 승부할 경우 결과는 뻔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게임 유료화를 포기하고 아이템 거래를 통한 수익모델을 강구하는 사례가 대세다.

또 게임이 게임 그 자체를 추구하지 않고 도박성만 강조할 경우 게임 인구의 저변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이런 게임은 특히 해외에서도 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경험 속에서 내린 결론이다.

그의 충고는 긴 여운으로 남는다. 말에 날이 서 있을 경우 듣기에는 거북해도 약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모두가 되새겨봐야 할 때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사진=황지희 기자 galgil2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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