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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뛰는 글로벌 거인들(15)-모토로라]"한국은 CDMA 전진기지"


 

모토로라의 기업 소개 팜플렛에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절이 있다. 1969년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인간의 작은 발걸음 하나, 그러나 인류가 성취한 거대한 발걸음'이라고 외친 것이 바로 모토로라의 우주통신용 무전기를 통해서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모토로라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군용 무선 통신 장비를 공급해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처음 만든 곳이다. 우리나라의 초기 이동통신시스템과 휴대폰은 거의 대부분 모토로라 것이었다. 모토로라는 세계 통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부심은 오히려 모토로라에게는 독이 됐다. 지나친 자만에 빠진 결과 1990년대 이후 모토로라는 휴대폰 분야에서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내주었고, 반도체는 인텔과 퀄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통신장비는 시스코에 추월 당했다.

모토로라는 2004년 에드워드 젠더(Edward Zander) 회장이 취임한 이후 많은 변화를 겪으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4년엔 313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보다 약 35% 성장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휴대폰 개발업체...모토로라의 발전사

이 회사는 당시 커다란 배터리로만 작동하던 라디오를 가정용 전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류기(Eliminator)를 생산했으며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동차용 라디오를 생산했다. 이때부터 제품명에 '모토로라'가 사용됐다. 갤빈제조회사는 1947년 회사 이름을 모토로라로 변경했다.

모토로라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부터. 모토로라는 1940년대 초 사업 확장을 위해 다양한 연구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답을 군수용품에서 찾았다.

모토로라는 군사 통신의 핵심 장비였던 휴대용 핸디토키(Handie-Talkie), 워키토키(Walkie-Talkie) 등 무선 통신기기를 개발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금 워키토키란 이름은 무전기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굳어졌을 정도다.

전후에는 7인치 TV를 생산하면서 전자 산업에 뛰어들었으나 1970년대 중반에 가전제품 분야를 과감히 정리하고 기술집약도가 높은 통신산업분야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특히 모토로라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고체전자공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50년대 말에는 아리조나주에 첫번째 반도체 제조공장을 설립하며 반도체 분야에 진출했다. 반도체 분야는 2004년 프리스케일세미컨덕터로 완전 분리됐다.

모토로라는 무엇보다도 휴대폰 업체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 회사는 1964년 차량용 통신기기를 생산하면서 휴대폰 개발의 기반을 닦았다.

모토로라는 1973년 양방 통화가 가능한 VHF 라디오 텔레폰(카폰)을 개발한 데 이어 1983년에는 셀룰러 시스템과 함께 '다이나택(DynaTAC)'이란 최초의 휴대폰을 내놓았다. 이 휴대폰은 무게가 무려 1.3Kg에 크기가 228X127X45㎜나 돼 들고 다니기에 다소 불편했다.

이후 모토로라는 1988년 무게 771g의 '다이나택8000'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1992년 219g의 '다이나택II'를 내놓으면서 휴대폰의 경량화, 소형화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계속해 1993년 '마이크로택2800'(168g), 1995년 '마이크로택5000(113g)'에 이어 1996년 88g의 '스타택(StarTAC)'을 출시하며 휴대폰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모토로라는 혁신적인 휴대폰을 내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2년의 '다이나택II'는 최초의 플립형이었으며 1996년의 '스타택'은 지금은 보편화된 최초의 폴더형 휴대폰이었다.

◇모토로라 주요 연혁

1928 갈빈 제조회사 설립. 차량 라디오용 정류기 생산1936 경찰용 무전기 실용화(세계 최초)1943 워키토키 이동형 무전기(세계 최초)1947 Motorola Inc.로 사명 변경1949 미국 아리조나주 피닉스시에 반도체 연구소 개설1956 무선호출기 실용화(세계 최초)1965 'Bell Boy' 무선호출기 상용화(세계 최초)1969 우주인 암스트롱 달 착륙으로 우주 통신 성공(세계 최초)1974 가전산업 매각으로 통신 분야 전념1983 휴대폰 'DynaTAC' 실용화1984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 개발(세계 최초)1988 미국 제1회 말콤 볼드리지 국가품질 대상 수상1998 이리듐 LLC社를 통해 저궤도 위성통신시스템 가동(세계 최초)2000 제너럴 인트스루먼트사 합병으로 광대역 통신사업부 신설 2002 무선 통신솔루션 사업부, 말콤 볼드리지 품질경영대상 수상2003 나노방출 디스플레이(Nano Emission Display) 개발

◇모토로라 기술 혁신의 역사

1930: 최초의 차량용 라디오 상용화 성공1939: 최초의 양방향 무전기 개발(Handie-Talkie)1941: 최초의 상업용 FM 양방향 무전기 개발1947: 최초의 모토로라 TV(Golden View)1955: 최초의 무선 호출기1969: 아폴로 11호 달착륙 통신 지원1983: 최초의 모토로라 셀룰러 시스템1984: 최초의 진정한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MC68020 1990: 최초의 HD TV 기술 표준 1995: 최초의 iDEN 기술1996: 세계 최초의 초경량 휴대폰 스타택/최초의 양방향 무선 호출기1997: 최초의 상용화된 테트라 시스템2000: 세계 최초의 GPRS 셀룰러 시스템2001: 최초의 256K MRAM 칩 개발2003: 대형 평판 디스플레이 등 생산에 획기적인 원가 절감 가능성 열어줄 수 있는 탄소 나노튜브 기술 개발

◆갤빈가(家) 경영의 마감과 젠더 회장의 취임

모토로라는 창업자 폴 갤빈의 아들 로버트 갤빈(Robert Galvin)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로버트 갤빈이 최고 경영자로 재직하던 1959년부터 1990년까지 모토로라는 반도체와 휴대폰, 통신장비 분야에서 경쟁 상대가 없었을 정도.

로버트 갤빈이 주도한 반도체 사업부는 1974년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선보인 이후 휴대폰에 이어 2번째 큰 규모로 성장했다. 최초의 셀룰러 장비와 휴대폰을 선보이며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7년 3대 회장인 크리스토퍼 갤빈 취임 이후 모토로라는 경쟁사들에 밀려 점차 입지가 줄어들었다.

우선 반도체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칩 수요 감소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팹 건설을 통해 효율성 증대를 꾀할 때 모토로라는 칩 기술을 다른 기업으로부터 라이선스하고 생산도 아웃소싱하는 등 자본지출을 최소화하는 데만 급급했다.

휴대폰사업부도 디지털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서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모토로라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1995년 54%에서 2000년 11%로 뚝 떨어졌다. 모토로라가 26억 달러를 투자한 위성통신사업인 이리듐은 1999년 파산했다.

결국 모토로라는 2001년 3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크리스토퍼 갤빈은 전체 15만명의 인력 중 6만명을 구조 조정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반도체 사업부 분사를 결정했으며 그 해 9월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3대에 걸친 갤빈가의 가족경영은 막을 내렸다.

2004년 1월 모토로라는 후임 회장으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출신의 에드워드 젠더를 선임했다. 젠더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끊김없는 이동성을 제공한다'는 뜻의 'Seamless Mobility'를 회사의 새로운 비전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고객위주의 경영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드워드 젠더는 2004년 진행 중이던 반도체 사업부 프리스케일 분사를 완료했다. 대신 회사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메시테크놀로지와 크리스넷, 퀀텀브리지 등을 인수했다.

젠더 회장은 회사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존 9개 부서로 나뉘어진 사업구조를 4개의 사업부로 재정비했다. 모바일, 네트워크, 무선통신솔루션, 광대역멀티미디어가 그것.

모토로라는 이와 함께 기술력, 디자인, 브랜드 가치 부문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R&D 투자에 적극 나섰다. 2004년에는 30억6천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매년 연간 매출의 15%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있다.

휴대폰 부문에서는 3G와 EV-DO 등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휴대폰과 디자인이 강조된 '아이코닉(iconic)' 제품들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2004년에는 6개의 3G 제품을 출시했으며 2005년에는 15개 이상의 3G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한 혁신적이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히트를 치고 있는 초슬림폰 '레이저'와 같이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한 '아이코닉' 신제품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모토로라 연간 매출액 추이

◇모토로라 모바일 사업부 연간 매출액 추이

년도

2002

2003

2004

전체매출

23,422

23,155

31,323

영업이익

 -443

1,273

3,132

◆세계 최초 한국에 반도체공장 설립...모토로라의 한국 진출

모토로라는 전세계 45개국 1천100여 지역에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으며 17개국에 65개의 생산시설을 갖고 있다. 또한 전세계 130여개국에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다.

모토로라가 한국에 공식 진출한 것은 1967년 반도체사업부의 자회사로 생산 공장인 MKL을 설립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모로로라는 한국인에게는 무전기 이름으로 꽤 친숙한 이름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은 군사 요충지인 한반도에 계속 주둔했고 미군이 사용하던 모토로라 무전기를 한국의 군인들도 사용하게 됐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모토로라를 무전기 및 무선통신 장비 업체와 동일시했다.

이후 제3공화국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부족한 자금을 외자 도입을 통해 타개하고자 했다. 이 배경에서 외국인투자유치법이 통과했고 모토로라는 IBM과 함께 이 법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외국법인이 됐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 공장은 당시 국제적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모토로라가 설립한 최초의 해외 공장이기도 하다. 이후 모토로라는 한국의 경험을 살려 세계 여러 곳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게 된다.

모토로라 반도체 공장은 국내 반도체 생산 기술 및 수출에 크게 기여해 1984년과 1985년에는 한국전자수출 총액의 10%를 달성하기도 했다.

반도체에 이어 모토로라는 1983년 무선이동전화기를 소개했으며 이후 무선호촐기, 디지털테트라 등을 한국 시장에 가장 먼저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 모토로라는 국내에서 휴대폰, 무전기 및 무선통신 시스템, 아이덴(iDEN) 단말기, 광대역 통신제품, 각종 전자부품과 네트워킹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모토로라가 1996년 출시한 스타택은 2000년 단종될 때까지 4년여간 130만대 이상 판매돼 휴대폰으로는 드물게 '밀리언 셀러'로 기록됐다. 단종된 지 4년이 넘었지만 현재도 마니아들의 소장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04년에는 후속모델인 '스타택2004'를 출시해 아직까지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모토로라는 한국 기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팬택과 자본 제휴를 통해 이 회사로부터 해외 수출용 제품을 공급 받고 있다. 2004년에는 어필텔레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조직을 통합했다.

◆"한국은 CDMA 전진기지"

한국에서 모토로라의 위상은 과거만큼 못하다. 모토로라는 한국에 셀룰러 시스템과 휴대폰을 소개한 기업으로 초기 이동통신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90년대 후반 생소했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면서부터 모토로라는 한국 토종 업체에 밀리게 됐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LG전자는 미국의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의 CDMA 기술을 도입해 처음으로 상용화했지만 모토로라 입장에서는 이 기술에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휴대폰을 계속 출시하면서 한국 시장을 넓혀 나갔다.

모토로라는 96년 스타택 이후 특별한 히트상품이 없었다. 미니모토, 스핀모토, 스타택2004등의 제품을 출시했으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5% 내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적은 수의 제품을 출시하면서도 이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모토로라 마니아들이 꾸준히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올해는 지난해 출시돼 전세계적으로 히트친 '레이저'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제품은 지난 6월 초 출시돼 현재까지 약 3만대가 판매됐다. 모토로라는 '레이저'가 과거 스타택의 영광을 재현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토로라는 그 동안 문제로 지적돼 왔던 사후서비스(AS) 부문을 보완해 모토로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또한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소비자의 감성에 소구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비록 모토로라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하더라도 한국은 'CDMA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토로라는 한국을 글로벌 CDMA 전진기지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모토로라는 지난해 어필텔레콤의 지분을 추가 인수해 자체 연구 개발 및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올해 1월부터는 어필텔레콤과 합병을 완전히 마치고 조직을 재정비했다.

모토로라는 한국에서 생산한 CDMA 제품을 해외 시장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미 MS250, MS280 등 한국에서 출시된 휴대폰이 중국 등 해외로 수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니모토도 조만간 중국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년도

2002

2003

2004

매출

11,174

10,978

16,823

영업이익

503

479

1,708

"한국은 테스트베드가 아닌 비즈니스의 장"…길현창 모토로라코리아 사장

최근 모토로라코리아 대표이사로 선임된 길현창 사장은 1984년 입사 후 20년간 모토로라코리아에 몸담았던 인물.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국내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에서는 흔치 않는 일이다.

길 사장은 모토로라 특유의 사내충원제도(Internal Opportunity System)에 의해 대표이사 후보로 올랐지만 국내외의 막강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사장으로 최종 낙점됐다. 그만큼 길현창 사장은 모토로라코리아의 역량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모토로라코리아 조직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모바일사업부, 시스템사업부 등 각 부서가 본사와 매트릭스 구조로 연결돼 있다. 이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잘못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험 요인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이런 조직 구조가 한국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다."

-최근 대표이사가 변경되면서 조직이 바뀌지는 않았나

"대표이사가 바뀐 것 이외 하부 조직의 변경은 없다. 각 부서마다 해외 보스(Boss)가 따로 있기 때문에 각 조직이 영향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 단지 휴대폰 부문 대표가 총괄 사장이 되면서 메인 비즈니스인 휴대폰 사업이 좀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점은 있다. 기존 박재하 사장은 부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종전에 맡았던 대외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모토로라코리아 규모는

"1천500명이다. 이중 생산직 인원은 150명 정도다. 이는 어필텔레콤의 조직을 흡수하면서 생긴 결과다. 한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모두 국내서 생산한다. 일부는 남미나 중국의 CDMA 제품을 수출하기도 한다."

-어필텔레콤 인수후 시너지 효과는

"어필텔레콤은 공식적으로 1월 3일부터 합병했으나 그전부터 같이 일해왔다. 합병하면서 조직이 흡수돼 서로의 갈등이 많을 줄일 수 있었다. 헤드쿼터와 직접 의사소통을 하면서 업무 프로세스가 빨라졌다."

-모토로라코리아내 상품기획팀의 역할은

"모든 팀은 글로벌팀과 같이 움직인다. 상품기획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상품기획팀이 국내용 제품만 기획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기획된 것들이 해외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Ms250, ms280은 이미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고 미니모토도 중국에 수출될 계획이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것은 해외에서도 잘 팔린다. 남미, 브라질에서 생산, 판매되는 것 중에는 한국에서 기획된 제품도 있다."

-모토로라코리아가 한국 휴대폰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은 휴대폰 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산업도 많이 성장했다. 본사에서도 한국의 좋은 회사나 제품을 구매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토로라코리아는 경험이 많고 기술이 좋은 업체를 추천할 수 있다. 모토로라가 외국기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토로라는 오픈돼 있다. 글로벌컴퍼니가 많이 받아들일수록 한국의 기업들에도 좋은 기회가 많이 생긴다. 모토로라는 삼성전자의 부품을 많이 구매해 사용하기도 한다. 레이저의 키패드도 한국 업체가 생산한 것이다. 세계의 것을 받아들여야 한국이 성장한다. 고구려는 단순히 군사력만으로 동북아시아를 지배한 것이 아니다. 장보고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역을 통해 해상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모토로라가 한국에서 위축된 원인은

"CDMA에 대해 내부적으로 준비가 덜 됐었다. 당시만해도 CDMA는 글로벌 표준이 아니었으며 시장이 없었다. CDMA는 중국이 채택하면서 시장이 커졌다."

-모토로라는 어떻게 한국에 진출했는가

"1967년 박정희 대통령 당시 외국인투자유치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모토로라는 IBM과 동시에 가장 처음 한국에 법인을 세운 외국인 기업 중 하나다. 또한 모토로라는 한국에 투자하면서 자신감을 얻어 외국에 진출하게 됐다. 반도체는 한 때 5천명 정도로 늘어나기도 했다. 모토로라 출신들이 한국의 정보통신 분야에 많이 기여하기도 했다."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 방향은

"휴대폰 비즈니스는 위험하다. 규모는 크지만 어느 순간 소비자들의 취향이 바뀔 수 있다. 리더십이 필요하다. 최근 2년간 모토로라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나가면서 리더십을 만들었다. CDMA나 GSM에서 기술은 거의 한계에 왔다.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 모토로라는 폴더형 제품을 처음 만들었고 슬림형 제품도 처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SK텔레콤 한 곳에 공급하기 때문에 시장 성장에 한계가 있지만 성과는 좋다. 항상 새로운 기술의 제품을 내놓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특화된 제품을 계속 내놓을 것이다."

-한국내 HSDPA 서비스에 대한 대응책은

"아직은 로컬 스탠다드다. 안정화되지 않은 솔루션이라 볼 수 있다. 비즈니스 외적인 요인도 많다. DBDM을 해야 하는데 한국 시장만 보면 한계가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는 투자가 느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글로벌하게 보면 아직 늦은 게 아니다."

-평사원에서 CEO까지 올랐는데

"한국 비즈니스에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선정 당시 내외부에서 후보자가 있었다. 외국기업에서의 20년 경력은 일반기업이나 공공기관과 다르다. 단계단계마다 글로벌 경쟁자와 경쟁해야 한다. 어려움이 많았다. 열심히 일하면 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

강희종기자 hjka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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