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현장을 가다-미국편] 미국에서 밝아오는 '한류 여명'

 


세계 대중문화를 압도해온 미국 문화의 상징 '헐리우드 거리'.

서부 해안에 위치한 그곳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20여분을 내려 가면 한국어 간판이 가득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을 거쳐 컨벤션센터에 도착하게 된다. 그 곳에서 지난 18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게임쇼 'E3(전자엔터테인먼트엑스포)'가 사흘간 열렸다.

영화가 문화 콘텐츠의 간판 격이라면, 게임은 디지털 문화 콘텐츠의 간판 격이다. 나아가 게임의 양방향성을 주목해 '넥스트 시네마'라고도 보는 시각도 있다.

E3가 공교롭게도 헐리우드와 가까운 곳에서 열렸지만, 이런 점에서 결코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5천여종의 게임이 쏟아진 이번 E3는 우리나라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매우 각별한 자리였다.

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가 거의 힘을 못쓰는 북미 문화 산업의 심장부에서 열린 그 곳에서 한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공전하는 도전과 희망

정말 북미는 한류의 불모지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에 건너 와 벌써 10년 넘게 살고 있는 박선영 씨.

그는 유력 통신회사의 설비 요원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LA 등을 중심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다. E3 전시장에서 만난 박 씨는 "미국에 건너온 뒤 한류 문화의 유입은 교포사회 외에서는 사실상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올해 E3는 그 같은 척박한 현실과 함께 희망이 상존했다.

실제로 마치 영화관을 방불케 한 이번 E3 전시장 도처에는 헐리우드 영화가 범람했다.

매트릭스, 스타워즈, 스파이더맨, 툼레이더, 헐크, 007, 대부, 베트맨, 해리포터, 킹콩 등 블록버스터 헐리우드 영화가 게임 부문을 휩쓸고 있었다.

세계 최대 게임사 중 EA가 베트맨, 007, 대부, 해리포드 등을, 액티비전이 쉬렉과 스파이더맨을, 비벤디가 헐크를, 에이더스가 툼레이더를, UBI소프트가 킹콩을, 루카스아츠가 스타워즈를 각각 게임을 통해 되살려 내고 있었다.

현지 게임과 헐리우드 영화 간의 결속이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럽 중세 역사와 전설이 게임의 중심에 서 있었다면, 이제는 헐리우드가 만들어낸 미국식 상상력이 게임의 중심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음을 한눈에 보여 줬다.

이 틈바구니에서 한류의 희망도 움트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기반을 닦아온 우리나라 디지털 콘텐츠가 북미 시장에 파고 들기 시작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 국내 간판 업체인 엔씨소프트가 이곳 한복판에 세운 200평 남짓의 전시부스였다.

비록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 부스처럼 관람객들로 발딛을 틈도 없이 장사진을 이룬 정도는 아니었어도, 분명 적잖은 관람객들과 취재진들로 부스는 줄곧 북적거렸다.

E3를 강타했다고 자랑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현지의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 게임업계로서는 그야말로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서 털어 놓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의 벅찬 소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독립부스를 E3에 처음 연 3년전만해도 우리를 아시아에서 온 이상한 회사로만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 인지도 걱정은 하지 않는다."

3년전 뜨겁게 달아오른 행사장과 달리, 싸늘한 열기의 부스를 바라봐야 하는 김 사장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가 길게 보고 북미 시장 진출을 준비했겠지만, E3에 자신이 직접 만든 게임을 내놓는 것이 개발자가 품는 일생일대의 꿈이라는 점에서 주위의 싸늘한 시선은 참기 힘들었을 것같다.

그런데, 일반 게이머가 아닌, 적어도 350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전시장을 찾은 세계 게임 관련 종사자들이 자사의 게임을 보기 위해 부스에 몰려왔다는 점에서 이제 김 사장은 북미 시장 진출의 희망을 발견했다는 표정이다.

엔씨소프트 부스 근처에 17개 개발사들이 참여하는 한국공동관을 꾸린 게임산업개발원 관계자는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 중 북미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곳은 엔씨소프트가 현재로써는 유일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지 유력 언론사인 AP통신은 '미국 온라인 게임에서의 한국회사 힘'이라는 제목의 19일자(현지시간) 기사에서 엔시소프트를 집중 소개했다.

AP는 "이 회사가 지난 해 4월 미국에 선보인 '시티오브히어로'는 현재 월정액 사용자 수가 13만명에 이르고, 올 4월 선보인 신작 '길드워'는 북미와 유럽에서 한 주동안 25만명이 가입했다"면서 "엔씨소프트는 분명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중접속멀티게임(MMO RPG)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차드 게리엇(엔씨소프트 소속)의 말을 인용해 "한국은 미국 시장이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그 같은 전망에 따라 엔씨소프트는 북미 게이머들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얻는 데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나머지 국내 업체들의 사정은 3년전 엔씨소프트가 직면한 사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사상최대 규모의 인파가 몰렸다는 이번 E3의 뜨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이들 부스는 한산하기까지했다는 것이 어쩌보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부 개발사들은 전시회가 끝나기 전에 부스를 닫을 만큼 행사장의 전체 분위기와는 괴리감이 컸다.

하지만, 이 역시 작년과 비하면 나머지 국내 업체들이 올해는 E3의 주전시장인 '사우스홀'에 모두 진출했다는 점과 지난 해에 비해 2배 이상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전된 성과를 올린 것이다.

◆북미 도전은 계속된다

더욱 위안이 되는 사실은 이들 업체들의 북미 시장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메인홀에 처음으로 입성, 대규모 독립부스를 연 웹젠도 이 자리에서 북미 시장에 진출한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

이 곳에서 만난 이 회사 김남주 사장은 "올초 북미에 지사를 세웠으며, 연내에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역시 이번 전시회를 통해 김택진 사장이 3년전 느꼈던 고뇌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각오는 그 어느 때 보다 비장했다.

비록 그가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고양이처럼 여기고 힘껏 그 정수리에 돌을 집어 던져야 한다"는 말에서 그의 의지는 강하게 베어 나왔다.

또 이번 E3를 통해 한빛소프트는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골프게임 '팡야'의 미국 수출 계약을 좋은 조건으로 맺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비즈니스 미팅룸만을 빌렸지만, 나스닥에 올초 상장한 그라비티의 윤웅진 사장은 "앞으로 2,3년을 내다 보면서 내년부터는 E3에 독립 부스를 열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그라비티는 북미 도전의 기반을 닦기 위해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을 평정한 자사 게임 '라그나로크'의 영화화를 놓고 매트릭스 영화를 제작했던 스튜디오와 계약 직전에 있다. 서클 오브 컴퓨전은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매트릭스를 제작한 스튜디오 중 하나.

라그나로크가 영화로 만들어져 매트릭스에 버금가는 흥행 실적을 거둔다면 온라인 게임의 본가인 우리나라의 세계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서클오브컴퓨전은 매트릭스를 감독했던 와쇼스키 형제의 의지가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많은 힌트를 얻은 것처럼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 1위에 올라 있는 데다, 얼마전 현지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까지 방영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라그나로크에 큰 흥미를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것.

미국 게임 시장의 심장부 격인 비디오 게임 시장에 도전하는 국내 게임사들의 의지도 더욱 확고해졌다.

판타그램은 이번 E3 개막을 앞두고 직전에 열린 MS의 'X박스360 발표회'에서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자사가 만들고 있는 X박스360 게임 '나인티 나인 나이츠'를 나란히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40만장 이상 판매한 X박스 게임 '킹덤 언더 파이어'를 행사 시작 후, 또한 X박스360 게임으로 만들고 있는 '나인티 나인 나인치'를 행사 말미에 소개했다. 또 이 회사는 X박스 전시장에 기존 '킹덤 언더 파이어:더크루세이더'의 후속편인 '킹덤 언더 파이어:히어로스'를 공개했다.

이 회사 구의재 이사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5년안에 온라인 게임 시장과 비디오 게임 시장의 융합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세계 게임 3대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주류 시장에 도전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웹젠도 이 곳에서 X박스360용 게임 '헉슬리'를 내년말이나 내후년에 내놓을 계획임을 확인했다.

또 엔씨소프트 역시 더 이상 비디오 게임 시장 진출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엔시소프트는 올 연말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계획이다

또 초고속의 이동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조기 개화된 모바일 게임 분야도 국내 게임사들의 북미 도전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일찌감치 컴투스가 북미 시장을 개척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가운데, 게임빌이 지난 해 모바일 게임 4,5종을 출시해 4,5주간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등 한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번 E3에 참가한 이 회사의 이규창 해외마케팅실장은 "국내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익숙한 현지 야구중계 방송 'CBS 스포츠라인'의 틀에 맞춰 현지화한데다, 좋은 파트너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임빌은 이 게임으로 작년말 케이블TV방송 '스파이크TV'에서 뽑는 모바일게임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류의 불모지 북미 대륙에서 디지털 콘텐츠가 첨병 노릇을 해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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