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 <16> 국공립 요양원, 이 정도는 돼야....


남편: 우리 부모님, 몸이 불편해지시면 어떻게 하지? 아내: 좋은 시설 찾아서 모시면 되지.

남편: 뭐야? 우리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신다고? 며느리로써 할 소리야?

많은 가정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이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긴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대부분 아들들)은 요양시설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생각한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더니,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더라, 걸을 수가 없게 됐더라, 어떤 요양시설에서는 어르신을 묶어놓고 때린다더라. 흉흉한 소리 때문에 많은 자녀들이 불효자가 돼 버린다. 최근에는 비리유치원에 이어 비리요양원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요양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썰렁해졌다. 본인의 경우, 10여 년 전 일본의 노인요양시설을 둘러보면서, “나도 저런 데서 살다가 죽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주말이면 아들이 치즈케익 사 가지고 찾아오고, 중증 치매환자가 직원들과 식탁을 차리고, 동네 사람들이 요양원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요양원.

한국과 일본 요양시설의 가장 큰 차이는 전원 일 인실을 사용하며, 환자복을 입고 수용되는 곳이 아니라, 내 집과 같은 환경속에서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살펴본 시설 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야마토마치의 ‘야이로엔’이라는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야이로엔은 개호보험 등급을 받은 노인만 입소할 수 있는 특별양호시설이다. 120명이 입소할 수 있는데 8~10명이 하나의 생활단위(유니트)를 이루어 생활하기 때문에 작은 가정이 여러 개 있는 구조이다. 노인시설이 아니라 내 집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기 위해 작은 것 까지 배려했다.

예를 들면 방문이 입주자에 따라 다르다. 병원이나 시설이라면 문, 창문 등이 획일적인데 이 곳은 사는 사람의 개성과 희망에 따라, 방을 다르게 꾸민다. 저녁에 밖에서 보는 야이로엔의 모습은 색다르다. 방마다 커튼과 조명의 색깔이 다르다.

유니트마다 주방이 따로 있다. 기본적인 반찬과 주요리는 메인주방에서 만들어져 날라지지만 밥과 된장국만은 유니트 주방에서 만들어진다. 아침이면 밥 냄새, 된장국 냄새에 눈을 뜨고 주방에서 들려오는 도마칼질소리에 아침의 활기를 느낀다.

노인들도 그렇다. 몸은 장애로 구속돼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아직 삶 쪽에 놓여져 있다. 그래서 기운을 잃지 않도록, 하루 하루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느끼고 가도록 하자는 것이 야이로엔의 정신이다.

요양원내에 매점이 있다. 과자, 컵라면, 사탕 등 군것질 거리가 진열돼 있는 이 매점은 직원들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 아니다. 노인들이 식시 대신 군것질이 하고 싶으면 용돈을 가지고 매점을 이용한다. 시설이 수익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주민이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몇 명 안 되는 손님을 위해 직원을 상주시킬 수 없기에 계산은 셀프이다. 노인이 물건을 집어 들고 돈을 계산해서 두고 간다. 돈계산이 어려운 노인들은 직원이 도와준다.

노인시설은 사회와 분리된 장소가 아니다. 지역주민이 수시로 드나들고, 아이들이 놀러 오는 곳이다. 야이로엔 바로 옆에 종합병원이 있다. 병원에 온 아이들이 야이로엔에 와서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가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차 한 잔을 마시고 가기도 한다.

직원들의 천직의식도 남다르다. 지난 여름 야이로엔을 다시 방문했더니, 13년 전에 만났던 직원들이 대부분 그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플로어에서 노인들을 씻기고 돌보던 직원이 시설장이 돼 있는데 그는 이 곳에서 30년 째 근무한다고 했다.

최근 비리요양원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요양시설의 갈 길에 대해 생각해본다. 수준 높은 시설과 좋은 서비스의 선결조건은 무엇일까? 세금도둑인 비리요양원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노인학대도 근절해야 한다. 그런데 요양원에서 마이너스적인 요소들을 덜어낸다고 해서 서비스가 포지티브하게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나라가 요양원을 짓고 운영하면 되는 것일까? 야이로엔 역시 인근 4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해 지어진 공립요양원이다. 2000년 설립 당시 20억 엔(200억원)의 자금을 내어 건립했으며 100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건축자재, 넓은 면적, 노인들의 신체특성을 고려한 실내 디자인 등 최고의 수준이다. 정부가 짓고 운영하는데 수준을 떨어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시설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120명에 불과하다. 현재 그 지역에는 야이로엔에 들어가기 위해 10년 째 대기 중인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나는 야이로엔을 부러워했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야이로엔을 짓기 위해 쏟아 부은 돈으로 지자체는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이 곳에 들어갈 수 있는 행복한 노인은 선택된 소수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일반 서민들이 자신들이 받는 연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저렴한 시설들, 대신 잘 운영되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노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찾아야 한다.

다만, 야이로엔에서 배워야 할 점은 노인(또는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 지역사회와의 공유, 직원들의 끈기와 근면함이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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