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BIFF]남동철 프로그래머 "여성영화 약진…수작들의 등장"(결산⑤)

"태풍 속 취소된 오픈토크 재개, 유아인에 고마워"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초청작의 경향은 독립영화계 여성 영화의 약진을 보여줬다. 소녀부터 성인 여성까지 넓은 나이대, 다채로운 상황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이 대거 초청됐다. 뉴커런츠 부문 '벌새' '호흡' '선희와 슬기'를 비롯해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의 '메기' '아워 바디' '영하의 바람' '나는 보리' 등의 영화들에선 여성 캐릭터들과 함께 여성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벌새' '보희와 녹양' '아워 바디' '메기' 등 수작들을 연출한 여성 감독들의 등장도 반가운 일이었다.

1970~1980년대 충무로의 상징적 영화인인 이장호 감독은 올해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대표작들을 상영하고 이 감독과 당시의 동료들이 한데 모여 함께 관객을 만나는 의미 있는 자리가 이어졌다. 최근 몇년 간 열린 회고전들과 비교해 가장 많은 관객이 모여, 1980년대 영화계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을 입증했다.

태풍 콩레이의 영향은 한국영화 프로그램에도 우여곡절을 안겼다. 지난 6일 '버닝'의 오픈토크가 취소됐다 재개된 과정은 특히 극적이었다. 밤새 자신을 기다린 관객들을 위해 시간대를 대폭 조정해서라도 관객을 만난 배우 유아인의 열정이 빛난 자리였다.

남동철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올해 영화제의 열흘 간 여정을 돌이키며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진행된 것 같다"고 했다. 올해를 영화제 정상화의 원년이라 천명한 이용관 이사장-전양준 집행위원장 체제의 운영이 안정성을 띠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로도 들렸다. 폐막을 앞두고 그를 만나 올해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함께 돌아봤다.

이하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와 일문일답

-올해 초청작 경향에서는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올해도 좋은 영화, 개성있는 영화들이 등장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굉장히 많았다. 작년과 대비하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훨씬 밝은 영화들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나오는 작품들도 많았다. 작년 영화제에선 '소공녀' '살아남은 아이' '죄많은 소녀' '밤치기' 등이 화제작이었다. 그에 비해 올해 초청작들에서는 '독립영화'라 하면 떠오르는 어두운 기운이 조금 덜 느껴졌던 것 같다. 국내 관객과 해외 게스트들 모두 '벌새'(감독 김보라)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메기'(감독 이옥섭) 역시 재밌게 봤더라. 일반 관객들은 '보희와 녹양'(감독 안주영), '나는 보리'(감독 김진유)에 대한 호응도가 높았다."

-이장호 회고전에 당대 스타들이 등장해 유의미한 자리를 완성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아마 올해의 회고전은 가장 관객이 많았던 것 같다. 회고전의 작품들이 1960년대까지 갔다가 1980년대로 오니 관객들이 조금 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 그에 더해, 이전엔 회고전 작품의 영화인이 돌아가셨거나, 관계자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배우들이 꽤 많이 왔다. 영화제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이보희, 나영희, 박정자 를 비롯해 김희라, 신성일, 안성기 등이 함께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태풍이 왔던 지난 6일은 1회차 GV가 다 취소됐었는데, 박정자 선생님이 극장에 와 계셔 혼자 GV를 하시기도 했다. 회고전을 하면 감독들이 간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점이 좋다. 그리고 좋은 영화들을 만들었던 분들이나 그 영화들을 다시 본다는 것도 의미 있다. 지금 관객, 지금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경우 충격을 받은 영화였다.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기준점 같은 작품이다. 그 시기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던 장선우, 김홍준 등 여러 감독들이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인단체의 보이콧 철회가 영화제 참석 게스트 수에 실질적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하다.

"그간 보이콧을 의식해 참석하지 않은 영화인들이 있기는 했다. 올해의 경우 달랐다. 작품이 있어서 영화제에 오는 경우는 그렇다고 해도, 초청작이 없는 영화인들도 꽤 많이 부산을 찾았다. 지난 몇 년 간은 작품이 없는 경우 '굳이 시끄러운데 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며 주저했던 면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영화제가 다시 잘해보려 한다니 부산에 가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용관 이사장이 복귀한 것을 축하하자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이나영 복귀작 '뷰티풀 데이즈'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도 알려달라.

"영화제 개막작 선정에는 여러가지 고민이 따른다. 대중적 영화여야 한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다. 이 영화가 가진 대중성은 완전한 상업영화적 성격의 것은 아니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 '혹시 관객들이 좋아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너무 무거운 영화가 아닐지 고민도 했지만, 다른 후보작들에 비해 이 영화가 완성도 있게 이야기들을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시점(남북 화합의 흐름)과 맞물려 시의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우 이나영의 존재도 큰 요소였다. 그가 오랜만에 오랜만에 보여준 연기가 아주 좋았고, 그것을 널리 알려주고 싶었다. 우려한 점 중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독립영화 성격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면서 상업영화계와 다소 멀어지는 경향을 띠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제 정신에 걸맞는 일은 독립영화를 전폭 지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독립영화가 개막작이 되기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싶기도 했다. 이런 선택이 차후 그런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내년쯤 되면 사람들이 '어떤 작품이 개막작일까'를 생각할 때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영화 작품들 역시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지난 6일에는 태풍 속에 프로그램이 혼선을 겪었다. '버닝'의 유아인이 취소된 오픈토크를 재개하자고 주장, 결국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개막 전 미리 해운대 무대를 철수하고 영화의전당으로 들여 왔는데, 토요일(6일)에 태풍이 닥친다기에 대비를 했었다. 태풍이 오면 실내로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미리 실내에 세팅을 해 뒀고, 야외에서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해 야외에도 세팅을 했다. 상황을 보고 실내 진행을 결정했지만, 그마저도 차량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의전 차량의 이동이 불가능했고, 게스트들이 묵는 호텔 앞은 물에 잠겼다. 1회차 상영 GV를 취소하고, 야외 행사 역시 오후 3시 예정됐던 '버닝' 오픈토크까지 취소해야 했다. 게스트에게 연락하는 것은 간단할 수 있지만, 기다린 관객들에게 대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싶더라. 마이크를 잡고 올라가 '태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하는데 많은 항의를 받았다. 야외 무대인사와 오픈토크를 기다린 팬들 중에는 일대에서 밤을 샌 관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일본인 관객들을 위해 급히 일본어 통역을 구하려 애를 쓰기도 했다.

이날 유아인 쪽에서는 먼저 연락이 왔다. 아마 유아인 소속사에도 팬들의 문의가 많지 않았을까 싶다. 유아인이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해왔다. 애초 오후 3시 행사였는데, (오후 행사 일부가 재개돼) 시간대를 옮기려니 빈 시간대가 없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시간대가 저녁 7시부터 40분 간이었다. 유아인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올해 영화제는 오랜 논란과 내홍 끝 새 체제로 첫 발을 뗀 행사였다. 안정적으로 치러졌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서로 보완해 가면서, 걱정했던 것보다 잘 굴러간 것 같다. 영화제가 끝나면 내부 평가를 통해 조금 더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래머들의 내년 역할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체제를 유지할지, 변화를 줄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예정이다."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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