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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개정, 재벌개혁 위한 것 아냐…자발적 움직임 필요"


김상조-10대그룹 CEO 간담회…"삼성 지배구조는 지속 불가능" 발언도

[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거래법 개정과 일감 몰아주기 조항 개정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다소 과도하게 들어간 형벌 조항을 정비하고,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벤처지주회사를 세울 때는 지주회사에 대한 법률적 제약들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재차 대기업의 적극적인 자정 움직임을 요구했다. 특히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소유·지배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삼성 측을 정조준해 압박했다. 대기업을 향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내미는 모습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형벌 조항 정비할 것…스타트업 투자 활성화 위한 규제완화도"

김 위원장은 10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과의 정책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이 기업의 대외 경쟁력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재계의 우려가 많았다"며 "공정거래법을 재벌개혁을 위한 수단으로 개정하는 것은 아니며, 한국 경제 현실에 맞는 21세기의 경쟁법, 국내 경쟁법의 현대화라는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이해관계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현행 공정거래법의 형벌 조항이 지나치게 촘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집단 지정을 할 때 사소한 자료 미제출 및 오기, 제출 기한 초과 등도 법률상으로는 형사제재의 대상"이라며 "롯데그룹의 경우 그룹 내 친족이 160명이 넘고 상당수가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개인 신상 정보 등을 시한에 맞춰 일률적으로 제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충을 들었다. 다른 곳도 비슷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까지 공정위가 고발해서 형사처벌을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했다"며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통해 현행 공정거래법에 과도하게 들어간 형벌 조항을 정비하려고 한다"고 공언했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대기업의 혁신이 병행돼야 하고, 그래서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선도적 투자도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여러 제약들이 많다"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대기업들이 한데 묶어서 관리하는 회사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이는 지주회사"라고 짚었다. 현행법상 지주회사가 되면 행위제약 규정 등 각종 규제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벤처캐피털 등의 벤처지주회사를 만들었을 때, 그와 관련된 현행법률상의 제도적 제약들을 현실에 맞게 완화해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 같은 부분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이 처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적극 고려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네이버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변대규 휴맥스 사장이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라는 이유로 휴맥스 계열사들이 네이버 계열사에 포함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올해 공정위가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실제로 휴맥스는 네이버 계열사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기업이 겪는 각종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지속 불가능…삼성이 빠르게 행동해야"

그러나 김 위원장은 동시에 기업들의 보다 적극적인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법률로 기업의 개혁을 강제하지는 않겠지만, 그 대신 기업이 보다 빠르게 개혁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

김 위원장은 "지배주주 일가들이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부분에서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가 된다"며 "이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배주주 일가는 가능한 한 그룹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을 보유하고 다른 비상장 계열사들의 주식은 보유하지 않거나 줄이는 방향으로 장기적으로 노력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같은 조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현재 소유·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출자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이는 삼성에서도 잘 안다"며 "결국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에 초래되는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결정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나쁜 결정이라는 점을 삼성이 잘 알았으면 한다"며 "다만 경제개혁연대 원장 시절인 지난 2016년 2월 썼던 삼성그룹 지배구조 관련 보고서에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주식을 전부 다 팔 필요는 없다고 쓴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그간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했던 삼성그룹 지배구조 관련 발언들과 맥락이 같다. 최 위원장 역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그룹이 자발적으로 매각해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을 모아 삼성의 조속한 판단을 요구한 셈이다.

이처럼 대기업에 대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내민 김 위원장의 기조는 간담회 전 모두발언에서도 잘 나타났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새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각계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평가를 내놓는데, 한편에서는 너무 느리고 느슨하다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을 너무 거칠게 옥죈다고 비판한다"며 "양립하기 어려운 비판이 공존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성급함, 그리고 낙수효과 식의 과거회귀 움직임들이 그간의 재벌개혁을 실패로 이끈 원인들"이라며 "지난 30여년 동안 양 극단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재벌개혁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간의 속도와 강도를 유지하면서 제 임기 3년, 현 정부 임기 5년 동안 일관되게 재벌개혁을 해 나가겠다"며 "이것이 재벌개혁의 성공을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간담회 전 금속노조 조합원 기습시위…김상조 "급박하게 재벌개혁 하지는 않을 것"

한편, 이날 행사 시작 전 기념촬영을 위해 김상조 위원장과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던 중 두어 명의 시민들이 '재벌기업 총수구속'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불쑥 튀어나왔다. 이들은 "재벌총수 구속하라" "정몽구 회장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참석자들 쪽으로 달려들었다. 공정위 관계자 등이 이들을 몸으로 막아세웠다.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애써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기습 시위를 벌인 이들은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소속 조합원들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행사는 예정된 시각보다 10분 정도 지연됐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를 마치고 기습 시위에 대해 "예기치 않은 해프닝인지, 불상사인지…다시 한번 세상사가 기획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까 구호를 외친 분들 입장에서는 절박한 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급박하게 시간을 정해놓고 재벌개혁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이미 수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는 김 위원장과 대기업 전문경영인들이 지난해 6월, 11월에 이어 3번째로 만나는 자리였다. 기업 측에서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차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하현회 LG 부회장, 황각규 롯데 부회장, 정택근 GS 부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 권혁구 신세계 사장, 이상훈 두산 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향후 이 같은 대기업과의 공개적인 만남 빈도를 줄이고, 문재인 정부 2년차가 될 즈음 다시 관련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선훈기자 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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