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이원갑]김영란법 앞에서 '적과의 동침' 택한 소상공인들


[이원갑기자] 길을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편의점이나 PC방을 운영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장사가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있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인 이들은 다름 아닌 '골목상권' 그 자체이면서, '소상공인연합회'라는 단체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기업형슈퍼마켓(SSM)이 들어올 때나, 사거리 모퉁이에 있던 낡은 빌딩 하나가 철거된 자리에 대형마트가 입점할 때, 분식이나 제과점 따위의 업종에 진출한 대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체인점을 낼 때 소상공인연합회는 격하게 반발하곤 한다. 카카오택시와 같은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가 등장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 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유관기관들과 함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올렸다. 추후 시행령이 발효되고 나면 대기업으로 분류됐던 공기업을 비롯해 재계 38위 이하의 대기업집단에 대한 각종 규제가 해제되는 상황.

당시 소상공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골목상권에 대한 침해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두 단체는 논란의 중심이 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한을 1주일 앞둔 지난 7월 19일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벤처기업협회 등 다른 10개 단체와 공동 명의로 정부에 의견서를 내고 대기업집단 기준 변경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토록 대기업과 대척점에 서 있던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에는 오히려 그들과 한 배를 탄 상황이다.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금품가액 기준점을 둘러싼 논쟁에서다.

오는 9월 말 발효될 시행령에서는 금품가액으로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선을 설정해 과태료 부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해당 시행령에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식당을 경영하거나 선물용 과일, 화환에 들어가는 꽃 등을 취급하는 김영란법 유관 업계 종사자들의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는 것.

이 같은 입장은 대기업·중견기업들의 견해와도 궤를 같이 했다. 지난 6월 15일 소상공인연합회를 비롯해 중기중앙회, 전경련, 중견련 등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은 26개 경제단체는 김영란법의 전향적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인 소상공인·농림축수산인에게 피해가 집중"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처럼 김영란법 문제에서 소상공인이 대기업을 동맹 관계로 인식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소상공인들이 대기업의 목적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나오기도 한다. 대기업이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고가의 선물에는 소상공인들이 최종 판매 가격에 한참 못 미치는 원가로 납품하는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

지난 7월 16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6천470원으로 결정됐을 무렵 참여연대가 발표한 성명에서도 "대기업이 영세 중소상공인의 정당한 몫을 빼앗지만 않는다면 이번 (임금 인상) 결정으로 발생한 추가 소비는 영세 중소상공인의 소득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소상공인연합회는 사용자 입장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등과 함께 임금 동결을 요구했던 바 있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대기업과 손잡은 소상공인의 선택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막연하게 요구하기는 힘들다. 위아래로 얽혀 있는 분업 체계를 일순간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형성하고 있는 틀의 모순점에 주목하고 그것을 수정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진다면 '적과의 동침'을 할 필요도, 소상공인이 대기업을 '적'으로 삼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원갑기자 kalium@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원갑]김영란법 앞에서 '적과의 동침' 택한 소상공인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