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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부커상' 한강 "지루한 문학작품 없어"


'채식주의자'로 전 세계 이목집중…신작 '흰' 출간 앞둬

[문영수기자] "사실 저는 아주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글을 쓸 때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과 '아마 완성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 사이를 오가며 글을 쓰다 완성되면 '어떻게 완성이 되긴 했네'라는 느낌으로 끝을 맺죠."

느리지도 않았고 빠르지도 않았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소극적이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목소리를 이어갔다.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지 종종 수줍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6·사진)이 마주섰다. 2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신간 발표회에 참석한 그는 맨부커상 수상 소감과 신간 '흰' 등에 대한 다양한 화두를 풀었다. 이날 현장은 뜨거운 취재 열기로 발디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룰 정도였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상이다. 한강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알버트 뮤지엄에서 최종 후보에 오른 5개국 작가들을 제치고 수상자로 호명됐다. 2005년 제정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상. 1970년생 한강은 역대 최연소 수상자라는 이채로운 기록도 함께 세웠다.

한강은 "(수상 이후에도)달라진 점은 잘 모르겠다.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웃음)"며 운을 뗐다.

◆'채식주의자' 폭력과 아름다움에 대한 소설

"시차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어요. 그래서 현실감 없는 상태로 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다행히 발표 직전에 커피를 한 잔 마셔서 무사히 그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죠."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로 호명됐을 당시 소감에 대해 한강은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 책(채식주의자)이 11년 전 쓴 소설로 이후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먼 곳(영국)에서 상을 준다는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다"며 "당시에는 기쁘다기보다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 편집자와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갔다"며 "수상할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갔다. 제가 상을 받은 이후 많은 분들이 기뻐해 주셨고 고맙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그 마음을 헤아리다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갔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는 11년 전인 2007년 한강이 발표한 소설이다. 상처입고 고통받는 인간의 내면을 탁월한 상상력과 독특한 표현력으로 묘사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소설로 구성된 연작 소설인 이 작품은 그동안 한강이 발표한 작품에 등장했던 욕망, 식물성, 죽음, 존재론 등의 문제를 한 데 집약시켰다. 작년 1월 영국에서 출판된 채식주의자는 현지 베스트셀러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채식주의자는 전 세계 27개국과 출판 계약이 이뤄졌다. 일부 소수언어 국가에서도 출판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을 정도다.

그는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지, 껴안을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끝나는 소설"이라며 "질문을 던지며 소설을 끝맺고 이를 다음 작품에서 이어지는 방식으로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번역은 흥미로운 작업…한 문장에 10개의 가능성 있어

"채식주의자가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됐어요. 모두 제 책이긴 한데 읽을 수는 없는 책이잖아요. 그러던 와중에 데보라 씨가 채식주의자 번역본을 보여줬을 때 굉장히 반가웠어요.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언어였으니까요."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이 있다. 한강과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공동 수상자의 영예를 안은 영국의 여성작가 데보라 스미스(28)다. 그는 우리말로 표현된 채식주의자만의 표현을 절묘하게 영어로 번역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다.

한강은 특히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가 이탤릭체로 독백하는 대목에서 그녀의 감정을 그대로 번역한 부분에서 굉장한 신뢰를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설의 톤이 중요하다고 본다. 목소리를 담는 것, 목소리의 질감이 중요하다"면서 "데보라 씨의 번역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톤을 중요시 여겼다"고 말했다.

평소 소설을 쓸 때 번역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고 밝힌 한강은 그러면서도 번역의 세계가 무척 흥미로웠다고 했다. 작년 영국에서 진행된 번역 워크숍에 참여한 한강은 당시 한 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일주일에 걸쳐 번역하는 작업을 했던 경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의 문장을 영어로 옮길 때는 10개의 가능성이 있더라. 여러 경우의 수가 있어 번역이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인 만큼 번역은 무척 의미가 깊다. 그 섬세함과 예민함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최근 노르웨이어로 한국어를 옮길 수 있는 번역가도 만났다는 한강은 데보라 스미스를 포함한 많은 영미권 번역가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말도 보탰다. 그는 "이제 시작이다. 보다 많은 한국 문학이 소개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바르샤바에서 쓴 소설 '흰'…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도

맨부커상의 수상으로 그의 새로운 작품 '흰'도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흰'은 백지와 그 밖의 모든 '흰 것'에 대한, 결코 더럽혀질 수 없는 어떤 흰 것에 대한 소설이다. 오는 25일 출간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은 2014년 초고를 완성, 2년여의 퇴고를 거쳤다. 앞서 선보인 '소년이 온다'에 이어지는 '흰'은 새로운 장편 '혼' 3부작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 가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머물면서 이 소설을 썼다.

'흰'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강은 "흰색을 가리키는 표현은 흰도 있고 하얀도 있다. 흰은 삶과 죽음, 서늘함이 느껴지는데 반해 하얀은 깨끗한 솜사탕과 같은 느낌이 난다"며 "이 책을 쓰고 나서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산문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고 한 이상한 책"이라고 했다.

이날 말미에 한강은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독자들의 애정이 필요하다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 문학들에 애정이 크다. 많이 읽힐 수 있고, 그러길 바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맨부커상 수상이) 더이상 화제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서 "정말 어려운 소설, 어려운 시는 없다. 이 세상에 지루한 문학작품은 없다고 본다. 마음을 여시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강 한강은 문학계의 '금수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소설가 한승원의 고명딸이다. 오빠 한동림(본명 한국인)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다. 한강은 대학 졸업 직후은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사진 정소희 기자 phot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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