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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놀라워요 전북, 어디까지 성장할 건가요?


두 가지 장면에서 전북의 변화를 확인하다

[이성필기자] 장면 1.

"야! 최강희~, 오늘 지면 바다에 빠져 죽겠다며. 빨리 죽어보라고 이 **야" (2006년 6월 6일 K리그 하우젠컵 전북 현대-대전 시티즌전에서 전북의 0-2 패배 후 북쪽 골대 뒤 관중석 2층에서 나온 한 관중의 발언)

2006년 전북 현대는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고 있었지만 특별한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당시 전북 구단을 처음 담당한 기자에게는 그저 지방 중소도시의 친절한 프로축구단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면서 '역전의 명수'라는 타이틀을 얻기 시작했지만, 전북은 K리그 안에서만 맴돌 뿐 연고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체감 효과는 미미했다.

기자를 놀라게 한 것은 전북의 경기력이 아닌 일부 관중의 거친 언어였다. 당시 전북은 오락가락하는 경기력으로 팬들의 인내심을 건드렸다. 리그컵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2개 팀 중 9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고, 6월 6일 대전전에서 0-2로 졌다.

당시 경기는 5.31 전국동시지방선거 후 전라북도민의 화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료입장으로 열렸다. 현재 상황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무료 경기였다. 2만3천480명의 많은 관중이 찾았지만, 전북은 홈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경기 열기도 빨리 꺼졌다.

관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가운데 북쪽 관중석 2층에 있던 한 관중으로부터 거친 발언이 쏟아졌다. 모욕적인 말에 최강희 감독은 화를 참지 못했고 해당 관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장 상의까지 벗었을 정도로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그럴수록 관중의 발언은 더욱 거칠어졌다. 경비 용역들이 관중석으로 출동하고 힘 좋은 한 프런트 직원이 최 감독을 선수대기실로 끌고 들어가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당시 전북 홈 경기를 세 번째 취재했던 기자에게는 기막히고 놀라운 장면이었고 기억에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역시 당시를 기억하는 전라북도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전북의 관전 문화는 거칠었다. 그만큼 역사성 없이 구단이 창단했고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면서 (전북 경기는) 소수만 즐기는 문화가 됐다. 그러니 경기장에서 욕설을 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격세지감이다"라고 돌아봤다.

장면 2.

"우리 전주시는 전북 구단과 머리를 맞대고 경기를 치러야 할지 말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CoV)로 확진된 환자가 있었고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냐는…(중략)…하지만 출입구마다 발열 체크를 확실히 하고 손 소독제를 비치하는 등 철저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1만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2015년 7월 23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최후보도시 설명회, 전주를 소개하러 나선 김승수 전주시장의 전주 소개 중 일부)

9년이 흐른 현재, 전북 프로축구단은 전주시는 물론 전북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지난 23일 열린 2017 FIFA U-20 월드컵 개최후보도시 설명회였다. 개최도시 최종 선정은 FIFA가 하는 것이지만 대회 유치 신청을 한 9개 후보도시 관계자들은 저마다의 장점 홍보에 나섰다. 최종적으로 6개 도시가 선정된다는 점에서 물밑 경쟁은 치열하다.

수원과 전주, 천안은 시장이 직접 설명회에 참석해 '축구도시'인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김 시장은 전북 구단을 '세계적인 명문구단'으로 부르며 전주에서는 축구가 시민들 삶의 일부임을 부각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가 올 시즌 연고지 구단의 성적이 꽤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인프라의 우수성과 국제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경험만 홍보한 것과는 비교됐다.

김 시장의 발언에서 인상적인 것은 전국적으로 메르스 확산 우려가 컸던 기간에도 전북 홈 경기에 1만명 이상의 관중이 몰리고도 성공적으로 경기를 치른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 부분이다. 당시 경기는 6월 28일 클래식 18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호남더비였다. 1만3천602명이 찾아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열기로 채웠다.

같은 라운드에 열린 FC서울-수원 삼성의 슈퍼매치에 3만9천328명이 찾은 것 이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전북 홈경기였다. 슈퍼매치가 한 골도 나오지 않으며 0-0으로 비긴 것과 달리, 호남더비는 4골을 주고받는 열전 끝에 2-2로 끝나 더 주목 받았다. 지자체가 시정에 연고 프로구단의 성적과 정책들을 반영하고 소개하면서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한국적인 현실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전북은 안 되는 것을 될 수 있게 바꿔가는 중

지난 26일 전북은 수원과의 23라운드에서 시즌 최다인 3만1천192명의 관중이 전주성을 메운 가운데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들어찬 3만 이상의 관중으로 전북은 올 시즌 홈 12경기에서 19만1천278명, 경기당 평균 1만5천940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1위 서울의 평균 관중 1만7천902명과 평균 2천명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 분위기는 여러 언론이 비슷하게 보도한 대로 '유럽 못지않았다'. 9년 전 씁쓸한 뒷맛을 남겼던 욕설은 사라졌다. 대신 폭발적인 함성을 앞세운 응원이 경기장을 뒤덮고 있다. 전북 특유의 전 관중 응원이라는 문화가 바이러스처럼 퍼져가고 있다. 골을 넣은 뒤 어깨동무를 하고 좌우로 움직이던 서포터들의 응원이 일반 관중석에서도 그대로 전파됐다. 장내 아나운서의 지시에 삼면에서 퍼지는 응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상당수 관중이 구단 유니폼을 입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축구라는 마약에 푹 빠져야 나올 수 있는 장면들이다. K리그 모든 구단이 갈망하는 '전 관중의 서포터화'가 전북에서 실현되고 있다.

전북은 연고지에 강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역발상으로 접근하며 지역에 파고들었다. '전북도 수도권 구단'이라는 최강희 감독의 홍보는 성공했고 에이스급 선수들이 몰려드는 데 일조했다. 자연스럽게 구단의 가치가 올라갔고 세 차례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성적 향상 효과로 이어졌다. 새 클럽하우스 조성으로 시골 마을 완주군 봉동읍을 전국적으로 알렸다. 최근에는 주류업체와 손을 잡고 전북의 엠블럼과 상징색인 녹색을 맥주 캔에 새겨 100만 캔 한정 판매 중이다. 프로구단이 시민들의 생활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장 큰 역발상은 '경기장이 외곽에 있어 관중이 오기 불편하다'는 악조건을 긍정 요인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일부 구단들의 홈구장은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건축됐다. 대회 치르기가 최우선이라 사후 활용에 대한 복합적인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전주월드컵경기장도 환경적으로 악조건이 수두룩하다. 지하 주차장이 없다 보니 지상 주차장에서는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먼 곳에 주차하고 이동해야 한다. 평소에도 상당수 차량이 정기 주차를 해놓고 있다. 지하 주차장을 조성하고 싶어도 예산 부족과 경기장 주변 복합 개발 계획과 맞물려 쉽지 않다.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 경기장 임대가 활성화되더라도 전북 구단이 자체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고민을 거듭한 전북은 전주 외에도 익산, 군산 등 인접 지역 팬들이 많음을 파악하고 두 도시를 오가는 시외버스 임시 정류장을 설치했다. 시내 중심부와 경기장을 오가는 특별 시내버스 노선도 개설했다. 이는 버스 노동조합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일이었다. 구단 관계자가 몇 년 동안 버스 회사를 돌며 발품을 팔았고 전주시가 도움을 주며 얻은 결과다.

교통 여건을 일부 개선하니 관중은 지난해 대비 평균 2천785명이 늘었다. 이런 관중들의 성원을 통해 최 감독은 K리그 단일팀 최다승인 154승(82무 78패)을 얻었다. 정규리그 1위,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등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며 다른 팀들의 선수 유출 상황에서도 이근호의 임대 이적을 이끌어내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많다. 이근호는 수원전 종료 후 과거와는 다른 전북의 축구 열기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래도 할 일은 여전히 많다

흥행 구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전북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지난해 이철근 전북 단장은 조이뉴스24와의 창간 10주년 인터뷰에서 "평균 관중 4만명 목표는 전북의 중요한 과제다. 이것을 해내야 구단이 지역에 확실히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드시 해내겠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4만 관중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라북도 내 전체 인구 감소화와 고령화라는 시대 흐름을 극복해야 한다. 전북은 도농 복합 도시가 많고 외지로의 인구 유출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소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미래 관중을 얻어가는 전북의 정책이 긍정적인 이유다.

K리그 구단들이 동반 성장해야 하는 고민도 있다. 올 시즌 전북의 3만 관중 두 차례 모두 수원전에서 기록했다. 원조 흥행구단 수원의 조연 역할이 확실했기에 내용과 결과 모두를 잡을 수 있었다. 비슷한 전력의 구단이 함께 달려야 흥행력도 더 향상될 수 있다.

주중 경기 관중이 1만명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해결해야 한다. 비가 왔던 6월 17일 울산 현대전 4천928명을 제외하면(챔피언스리그 포함 시 최소였던 경기는 빈즈엉전 6천704명) 최소 8천명대의 주중 관중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1만명대로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K리그 선도 구단으로 확실히 올라섰지만 아직도 고민해야 할 것이 많아 즐거운 전북 구단이라고 한다면 선수단과 프런트에게 너무 한다고 혼나려나?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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