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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시민구장의 마지막, 삼성의 예의


68세 야구장 올해를 끝으로 이별…'유종의 미'로 한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김형태기자] #흔히 대구구장으로 압축 표현되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생각해보면 꽤나 독특한 이름이다. 시립 구장(Municipal Stadium)이면서도 시민(Citizen)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내 유일한 구장이다. 지금은 사라진 일본 히로시마 시민구장 정도가 시민을 앞세운 야구장으로 꼽힌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시티즌스 뱅크 파크(Citizens Bank Park)는 시민과는 전혀 관계 없다. 야구장을 건설한 필라델피아 시가 '시티즌스 은행'이라는 금융회사에 구장 명명권(naming right)을 팔았을 뿐이다. 우리식으로는 '국민은행' 정도로 보면 되겠다.

#1948년 개장해 올해로 68살이 된 이 야구장은 대한민국 야구계의 큰 줄기 중 하나인 '영남 야구'를 대표한다. 무수히 많은 스타들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졌다. 대구상고(현 상원고)의 박영진, 경북고의 남우식을 필두로 장효조·김시진·이만수·양준혁(이상 대구상고), 임신근·황규봉·김동재·류중일(이상 경북고) 등 스타가 쏟아졌다. 이들 양대산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강기웅·이범호 등을 배출한 대구고도 지역 3강으로 시민구장을 누볐다. 물론 이 곳에서 배출한 스타들중 최고는 역시 이승엽(경북고)일 것이다.

#시민구장이 프로야구사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무척 크다.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삼성 라이온즈가 무려 8번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덕분이다. 거의 매년 포스트시즌 경기가 이곳에서 치러지면서 전국 각지의 야구팬들 뇌리에도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은 크게 각인돼 있다. 광주의 무등구장, 부산의 사직구장, 대전 한밭구장(한화생명 이글스 파크) 등과 달리 지역의 상징을 구장명에 넣지 않았지만 '시민운동장'이란 말만 들어도 대구가 떠오를 만큼 지역의 명물로 굳어졌다.

#고희를 앞둔 시민구장은 그러나 올해를 끝으로 프로야구와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대구시내 한복판에서 구도심의 상징으로 군림해온 이 곳은 내년 초 수성구 외곽의 신도시에서 화려하게 개장하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라이온즈의 안방 자리를 내줄 운명이다. 그간 시민구장 인근에서 삼성 선수단 및 팬들과 울고 웃으며 성장해온 여러 사업체들은 고민이 대단하다고 한다. 내부 사정 때문이라지만 오랫동안 삼성 선수단의 '입맛'을 책임졌던 야구장 건너편 한 중국음식점은 이미 문을 닫았다. 그렇지 않아도 발전이 더딘 구도심 상권에서 핵심 역할을 한 야구단마저 빠져나가면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작 가장 걱정이 큰 쪽은 삼성이다. 무려 34년간 '집'으로 사용해온 시민구장의 마지막 시즌을 빛내야 하는데, 현실이 녹록치 않다. 라이온즈의 한 시대를 화려하게 마감하고 힘차게 새 출발하기 위해선 또 한 번의 우승트로피로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이 만만치 않다. 지난 2013년 무등구장의 마지막 시즌을 망쳐 지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긴 KIA 타이거즈의 예도 있어 이래저래 부담이 크다. 시민구장 마지막 시즌을 허망하게 보낼 경우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의 영광도 빛이 바랠 위험성이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그래서인지 "한 번도 편한 시즌이 없었지만 올해는 특히 더한 것 같다"고 틈만 나면 고충을 토로한다.

#올해 프로야구는 시즌 끝까지 순위를 점치기 어려운 대혼란의 연속이다. 5강 진출팀을 예측하기가 여간하지 않다. 최하위 kt 위즈가 꼴찌로 시즌을 마칠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올스타 휴식기까지 2위 두산 베어스에 1경기 앞선 삼성으로선 매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 없다. 삼성과 4위 넥센 히어로즈가 4경기, 5위 한화 이글스는 5.5경기 차이다. 3연전 한 번의 시리즈가 끝나면 순위가 크게 요동친다. 1위가 1위가 아니고 꼴찌가 꼴찌가 아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삼성을 여전히 우승후보 1순위로 꼽는 건 그간 보여준 저력이 크게 작용했다. 추월당할 것 같으면서도 끝내 뿌리치는 힘, 다 졌다고 생각할 때 기적같이 승부를 뒤집는 장면을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시리즈 같은 '가을 야구'는 큰 경기 경험이 승패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삼성 선수들은 그 어떤 선수들보다 큰 경기의 엄청난 압박감을 자주, 또 많이 경험해봤다. 극한의 상황에서 단련된 힘은 가장 긴박하고 요긴할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시민구장의 마지막 시즌, 삼성은 과연 이 '할아버지 야구장'에게 마지막 예의를 다할 수 있을까.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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