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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야신'을 버리면 김성근이 보인다


'절대적 위치' 딱지에 논란만 증폭…'야신' 아닌 백전노장 김성근일뿐

[김형태기자] #덩치가 산만한 선수들이 앙증맞은 춤을 추며 닭살을 돋게 한다. 마치 유치원 아이들처럼 천진하게 아양을 떠는 선수들 앞에선 노감독이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마지막 율동까지 마친 정대훈과 김기현은 한 목소리로 '야신'이라 외치며 하트를 그렸다. 이들의 '재롱'을 큭큭거리며 지켜보던 한화 선수들은 저마다 배꼽을 잡으며 쓰러졌다. 지난 15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은 '스승의 날'이었다.

#2002년 11월10일 대구구장.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경기 뒤 큰 한숨을 내쉬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LG 트윈스를 4승2패로 꺾고, 마침내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직후였다. 마해영의 9회말 끝내기 홈런 덕에 10-9로 6차전서 승리한 그는 "상대인 LG 김성근 감독이 워낙 잘했어요. '신이 아닌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라고 말했다. 이 경기 뒤 김성근은 LG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그에겐 '야신(야구의 신)'이란 극존칭 별명이 따라붙었다.

#김 감독이 본격적인 '야신'으로 추앙받게 된 시기는 2007∼2011년이다. 삼성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빼앗기고 한동안 국내 야구계를 떠나 있던 그는 SK 와이번스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된 뒤 팀을 '극강'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재임기간 중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준우승 1회의 성적으로 '진정한 야구의 신'이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줄곧 야구계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벗지 못하던 그가 'KBO리그의 얼굴'로 본격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였다. 그가 재계약 문제로 2011년 시즌 도중 해임되자 그의 열렬한 팬들은 '박해받는 예수' 같다며 구장에 난입해 구단을 맹렬히 성토했다. 이후 감독 김성근은 '야신'이란 별명과 도저히 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야신이 가는 길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SK 왕조 시절부터 끊임없이 반복된 상대팀 자극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큰 점수차로 이기는 경기 막판 잦은 투수교체로 상대팀들의 큰 원성을 사야 했다. 패배를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상대 팀이 아웃카운트 1개에 한 명씩 투수를 계속 바꿔댄다.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선 열불이 터진다. 한 현장 지도자는 "어쩌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할텐데 그런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덕아웃에서 한 번 그 꼴을 당하면 정말 눈에 불이 난다"고 씩씩 거렸다. 지난 23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도 '모욕을 당했다'고 여긴 kt 주장 신명철은 한화 선수들을 향해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분을 참지 못했다.

#김 감독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닌' 야구에서 최대한 승리를 굳히기 위해선 돌다리도 두드려야 하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다 이긴' 경기라도 허투로 소비할 수 없다는 건 그의 오래된 야구관이다. 부담없는 상황에서 실전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하나둘씩 기용하며 테스트해보자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 상대팀을 의도적으로 약올린 게 아니라 최대한 자기팀 처지에 맞게 선수들을 내세웠다는 얘기도 설득력은 있다.

#현실과의 괴리가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상대팀으로선 '야비하며 모욕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상황에 대해 그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실제로 그는 "프로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로 '불문율 논란'을 일축하곤 한다. OB·태평양·삼성·쌍방울·LG·SK·한화 어느 팀에 몸담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팀 이 외의 상황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프로야구 감독이 다른 팀 처지까지 다 감안해줄 필요가 없다는 데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뿌리깊은 '자기중심적 야구관'에 대해 "원래 그랬으니까"라며 이해 또는 체념하는 야구인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혹사 논란도 그렇다. 요새 그의 투수 기용법을 두고 '열정 혹사'라는 말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팀을 옮기면서까지 던지고 싶어하는 선수들의 욕구를 채워주면서 팀 전력의 주요자원으로 사용하는 그의 잦은 기용법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일하고 싶은' 청춘들의 열정을 푼돈에 쓰는 일부 업자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단어 '열정페이'에 빗댄 말이다. 물론 지난 겨울 삼성을 떠나 한화의 주축 마무리로 자리잡은 권혁은 푼돈을 받지도, 스스로 '착취당한다'며 찡그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팀 전체 경기수의 60%를 책임지기 위해 등판할 때마다 혹사 논란이 심화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표정하게 앉아 미동도 없이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김성근은 무척 냉정하고 차가워보이지만 알고보면 꽤나 연약한 인간일 수 있다. 승리가 한동안 계속됐다며 혼자서만 색깔이 다른 점퍼를 계속 입는다. 수십년간 양말 신는 순서도 한쪽만 고집했고, 전날 승리에 도움이 됐다고 판단되면 그 날의 모든 행동을 똑같이 이어서 하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한다. 내적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야신'이라는 절대자의 별명에 감춰져 있지만 그만큼 그는 항상 소심하고 절박하며 남몰래 승리를 갈구하는 '작은 존재'로 볼 수 있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그를 둘러싼 겉포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구에 관해서는 신적 존재'라는 위상이 그의 현실적인 행동과 괴리를 일으킬 때 대중은 혼란스럽다. "이해는 하지만 저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야신이 그럴리 없는데" 같은 말은 그를 믿고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당혹해 하는 심리에서 파생된다. 결국 '야구 감독' 김성근과 전지전능한 '야신' 사이에서 충돌하는 이상 현상이 오늘의 논란을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3년 전 그에게 '야신'이라는 칭호를 안겨준 김응용은 그러나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야신이라고 한 적이 없어. 그냥 신이라고만 했지. 신도 여러가지 신이 있잖아"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유야 어쨌든 '야신'이라는 말은 김성근을 상징하는 단어로 이미 굳어져 버렸다. '김성근식 야구'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그에게서 '야신'의 딱지를 떼내고 백전노장 야구감독 김성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논란을 줄일 수는 없어도 논란의 배경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해진다. 김성근은 김성근일뿐 신이 아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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