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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김서형이 지닌 의외의 얼굴(인터뷰)


"마드리드영화제 여우주연상, 상상도 못했다"

[권혜림기자] 영화 '봄'은 배우 김서형이 지닌 의외의 얼굴을 발견해낸 작품이다. 숱한 출연작을 통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氣)를 지닌 캐릭터로 분했던 그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병을 얻은 뒤 활력을 잃은 조각가 남편을 위해 손발 벗고 나서는 양처, 가련한 젊은 여인에게 마음을 다해 연민과 위로를 보내는 따뜻한 여인. 김서형이 연기한 정숙은 영화가 지닌 곧고 평온한 기운과도 꼭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봄'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에 걸려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최고의 조각가 준구(박용우 분)와 이를 안타까워하며 남편을 위해 새로운 모델을 찾아나서는 아내 정숙(김서형 분), 남편을 잃고 가난과 폭력 아래 힘겹게 두 아이를 키우다 누드 모델 제의를 받는 민경(이유영 분)의 이야기다.

이제껏 보지 못한 모습을 '봄'을 통해 발견했다고 인사를 건네자, 김서형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도 조금은 다른 생각을 밝혔다. 정숙 역이 유독 정적이고 차분한 인물이긴 했지만 SBS 드라마 '자이언트' 속 유경옥 역시 내면의 강단이 돋보인 캐릭터였다는 것.

그는 "유경옥은 사채업자 큰 손인 인물이니 조금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였지만, 사실은 겉도 속도 강한 인물이었다"며 "그래서 '봄' 시나리오를 봤을 때도 정숙으로서 꼭 다른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봄'의 정숙은 겉으로는 유해보이는 사람이지만 내공의 맥락에선 정점을 찍은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저는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배역들을 많이 연기하지 못했었거던요. 정숙 역 전에 유경옥을 연기했던 것을 떠올리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정숙 역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던요."

극 중 정숙과 민경, 준구 세 인물이 그려내는 감정이란 복합적이다. 한 단어로 언어화하기엔 부족한, 굳이 구분짓지 않았을 때 더 풍성해지는 감정선이다. 아무리 예술을 위한 행위라지만, 젊고 풋풋한 여성이 나신으로 남편 앞에 서는 상황을 즐길 아내가 얼마나 될까. 그것도 외딴 작업실에서 이뤄지는 단 둘만의 작업이다. 하지만 정숙은 작업실의 문 한 번 열지 않을 만큼 철저히 남편의 편에 선 여인이다. 민경을 향한 준구의 감정은 연민과 인간애를 오가며 애틋하게 비춰지지만 정숙은 예술혼을 통해 남편이 생기를 되찾길 바랄 뿐이다.

"정숙은 그런 감정의 구분을 하지 않는 '어른'이에요. 정숙과 준구 사이엔 아이도 없고, 아무리 큰 여자여도 작업실 문을 열까, 말까 하는 상황까진 갔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빗대 '정숙은 그렇지 않은 여성'이라고 말씀하셨죠. 받아들이려 노력했어요. 온전히 스스로 받아들이는 수업을 하고 간 셈이죠. 이전에 연기한 인물들은 응집된 감정을 겉으로 분출해야 하는 지점이 많았다면 이번엔 받아들이는 수업을 하게 됐어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인지, 김서형은 정숙 역을 온전히 제 것으로 소화해낸 듯 보인다. 지난 7월에는 마드리드국제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당시 그는 제26회 도쿄 국제영화제는 물론 다수의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필리핀의 국민 여배우 유진 도밍고와 경합 끝에 트로피를 받았다. 김서형은 "상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그저 '출품을 하나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 떨려 시상식장에 가기 힘들 정도였어요. 마드리드국제영화제는 시상식 중심이라기보다 장장 6시간의 축제처럼 진행돼요. 평소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심장이 크게 뛰는데, 긴장을 이기려 술을 한 잔 벌컥 벌컥 마셔야 했죠. 이름이 호명돼 '네?' 하면서 나갔는데, 정말로 세계의 영화인들이 객석에 앉아있더라고요. '영화제를 즐길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수상 소감을 한 기억이 나요. 당시 입은 한복에 대해선 해외 영화인들이 굉장한 관심을 보였어요. 한복의 아름다움에 시선이 꽂혔죠."

유명 미술 감독으로 활약하던 조근현 감독이 '26년'에 이어 연출을 맡은 '봄'은 유려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앞선 시대에 어울리는 향토적 풍경을 그림 동화처럼 따뜻하게 그려냈다. 김서형 역시 "'봄'은 간만에 눈과 귀가 편안한 영화였다"며 "한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가 많았다면, '봄'은 세 명의 이야기를 잘 엮어 더 좋았다. 아마 1년 간 편집 작업을 한 것이 탁월한 완성도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라도에서 촬영을 했는데, 강원도 출신인 제 눈에는 또 다른 한국 같았어요. 그냥 지나쳤던 농촌도 카메라에 담으니 새롭게 평온하더라고요. 촬영 중 되도록이면 서울에 올라가지 않았어요. 잠깐 촬영하러 현장에 왔다가도 다시 서울로 가기 싫을 정도로 좋았죠. 촬영 기간 동안 마음 따뜻하게 잘 보내고 왔어요."

김서형이 말하는 '봄'은 "영화를 보고 나서 혼자 뭔가를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자신의 감상을 간직한 뒤 상대의 느낌을 묻고 싶어지는 영화"다. '봄'은 지난 20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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