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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 설경구, 결국은 해내는 배우(인터뷰①)


"나는 하라는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권혜림기자] 배우 설경구가 김일성이 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일성을 연기하다 자신이 누군지 평생을 잊어버리고 만 어느 무명 배우로 분했다. 늘 초라했지만 무대 위에서만은 하나 뿐인 아들에게도, 인색한 세상 앞에서도 빛이 나고 싶었던 평범한 남자가 됐다.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제작 반짝반짝영화사)는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 성근(설경구 분)과 그런 아버지 덕에 인생이 꼬여버린 아들 태식(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설경구가 연기한 성근은 무명 연극 배우였다가 김일성 대역을 제안받고 평생을 그 인물에 몰입해 살게 되는 인물이다. 설경구는 순박하고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부터 스스로를 김일성이라는 캐릭터에 가둬버린 신경증적 모습까지, 입체적인 연기를 소화했다. 최근작인 영화 '감시자들' '스파이' 등을 통해 보여줬던 표정과 비교해 한층 더 깊고 묵직한 모습으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의 톤은 분명 다르지만, 설경구의 연기가 지닌 폭발력 자체는 그의 대표작 '박하사탕' 속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나의 독재자'의 개봉을 앞둔 배우 설경구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언론·배급 시사 이후 연기 호평을 얻고 있는 그지만 완성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기까지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극 중 성근에게 김일성의 대역이란 그의 연기혼을 불태울 일생일대의 기회. 그러나 회담이 성사되지 않자 성근이 쥐어짠 노력의 결과물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후 인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의 심리를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배우 설경구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와 관련해 설경구는 영화 관련 공식석상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이해준 감독과 "얼굴을 안 볼 생각까지 했을" 만큼 깊은 갈등도 겪었다. 더 분명한 설명을 바랐던 설경구, 말보단 눈으로 말하는 이 감독 사이의 피할 수 없는 불통이었다. 그는 "이해준 감독은 설명을 길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보다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알린 설경구는 "이해준이란 사람의 눈을 보고 있으면 측은하다. 배우에게 미안해하는 감독"이라고 촬영 당시를 돌이켰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대통령과 성근의 대면 장면은 감독과 배우 사이의 골이 다소 깊어졌을 때 촬영됐다. 드디어 꿈꾸던 순간을 맞은 성근이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신이었다. 그는 "그 장면을 위해 두 시간을 달려오는 영화인데, 첫 대사를 어떻게 쳐야할지 모르겠더라. 당시는 이해준 감독과 서로 눈도 안 보고 지내던 때"라며 "감독은 '왜 저러나' 했다고 한다. 나는 '내게 답을 줘야지' 했었다"고 돌이켰다.

그에 대해 설경구는 "이번 영화를 하며 감독에게 가장 많이 물어본 건 '성근이 못 빠져나오는거냐, 안 빠져나오는거냐'였다"며 "'일상 자체가 연극이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했다"고 알렸다.

이어 "인물에 빠지면서 성근이 계속 공연을 하고 있다는, 연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지금도 확실히 모르겠다. 성근은 어쩌면 연극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설경구는 영화를 '감독의 예술'로 보는 입장에 가까워보였다. 버거운 요구에 어깨가 무거워 현장에서 불만을 털어놓더라도, 결국 감독의 뜻에 따라 연기를 완성해내는 배우가 설경구다. 그는 "일단 '싫어. 모르겠어'라고 하면서도 결국 그 루트대로 간다"며 "나는 하라는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는 "감독은 나보다 더 많이 영화 전체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고 수 백, 수 천 번을 고민한 사람일테니 그 사람이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감독이 고집을 피울 때는 '뭔가 있으니 고집을 피우겠지'라는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이어 "이해준 감독과는 그런 식으로 풀었다"고 알렸다.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를 "나의, 박해일의, 이해준 감독의 아버지 시절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쪼들렸던 아버지들, 권위를 내세우고 독재자처럼 딱딱하게 인상을 쓰고 다녔던 아버지들, 그러면서도 결국 자식들에게 먹혀 살았던, 자식들을 가르치고 먹여 살리려 한 아버지들의 영화"라며 "이해준 감독의 아버지, 내 아버지, 박해일의 아버지, 1960~1970년대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겪어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에는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을 비롯해 윤제문·이병준·류혜영 등이 출연한다. 오는 30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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