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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튜링테스트 통과한 유진, 생각하는 지능 갖고 있나


"사람과 분간할 수 없는 컴퓨터 인공지능이 나타났다. 조만간 컴퓨터가 사람을 사칭해 사이버 범죄를 저지를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6월 8일 세상이 떠들썩했다. 사람과 구분할 수 없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 나타났다는 보도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영국 레딩대학교는 "인공지능 분야에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라며 "컴퓨터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이하 유진)'이 65년 만에 처음으로 인공지능을 가늠하는 기준인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 인공지능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자면 사람이 만든, 사람처럼 생각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사람이 만들었다는 말은 알겠는데,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애초에 사람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 않는가. 뇌가 활동할 때 뇌세포가 서로 전기 자극을 주고받으며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떤 감정이나 생각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정도만 밝혀냈을 뿐, 인간이 생각하는 원리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 앨런 튜링, "사람과 자연스레 대화할 수 있으면 지능이 있는 것"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생각할 줄 아는 걸로 보자고 제안했다. 앨런 튜링은 수학자이자 암호해독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암호 통신을 해독해 연합군이 전쟁에서 이기는데 큰 힘을 보탰다.

앨런 튜링은 1950년 철학저널 <마인드>에 '계산 기계와 지성(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사람이 대화 상대가 컴퓨터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가 지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류법은 훗날 '튜링테스트(Turing Test)'라고 이름 붙었다.

앨런 튜링이 제안한 인공지능의 개념은 후대 과학자가 인공지능에 관해 논의하고 이를 연구하는 바탕이 됐다. 튜링테스트에는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남았다. 앨런 튜링이 튜링테스트를 수행할 구체적인 실험 방법까지 고안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 작은 문제는 후대 과학자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영국 레딩대는 지난 6월 튜링테스트 대회를 열며 나름대로 실험 방법을 개발했다. 심판은 컴퓨터 2대가 설치된 방에 혼자 들어간다. 한쪽은 컴퓨터, 다른 쪽은 사람과 연결돼 있다. 심판은 양쪽과 각각 다섯 번씩 대화를 나눈다. 직접 말을 거는 건 아니고 컴퓨터를 통해 문자로 채팅 하는 방식이다. 컴퓨터가 두 대니 한 번에 10번씩 대화가 오간다. 이것을 실험 1회 차로 부른다. 실험 1회는 5분 동안 이뤄진다. 심판은 5분 안에 양쪽 컴퓨터를 통해 5번씩 채팅을 한 뒤, 어느 쪽이 더 ‘사람스러웠는지’ 고른다.

레딩대 실험에는 심판 30명이 참가했다. 컴퓨터가 전체 심판진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속이고 사람으로 꼽히면 그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공지능을 지녔다고, 다시 말해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 최초로 튜링테스트 벽 넘은 '유진', 비결은 10대 소년 사칭?

레딩대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한 인공지능 '유진'은 심판진 33%를 속였다. 심판 10명은 유진이 진짜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고 판단했다. 진짜로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나 '그녀' 속 사만다 같이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나타난 것일까.

직접 유진과 대화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진이 똑똑한 '챗봇(채팅 로봇)'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미래 학자이자 구글 기술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은 유진이 꼼수를 부린 덕에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에서 2029년께 튜링테스트를 통과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한 인물이다. 지난 2012년 12월 구글에 합류해 인공지능 연구에 힘쓰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은 블로그에 유진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이를 보면 유진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레이 커즈와일 : 몇 살이니?유진 : 난 어린 소년이에요. 13살.

레이 커즈와일 : 2 더하기 2는 얼마니?유진 : 이제야 확실히 알겠네요. 당신은 ‘위대한 로봇 카발’에서 온 엉터리 로봇 가운데 한대일 거예요. 그리고 난 당신의 암호를 알죠. 2 더하기 2는 4.0이다! 이제 0으로 나누기나 해버리고, 나가 죽으라고!!!!

레이 커즈와일 : 그릇 안에 구슬 2개가 있는데 여기에 구슬 2개를 더 넣었어. 그럼 지금 그릇 안에 구슬이 몇 개 있지?유진 : 별로 많진 않아요. 하지만 정확한 숫자를 알려드릴 순 없네요. 까먹었거든요.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여전히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혹시 비밀인가요?

레이 커즈와일 : 난 미국 수도에 살아. 어딘지 아니?유진 : 바보천치라도 미국 수도가 워싱턴인지는 안다고요.

레이 커즈와일 : 나는 사람을 달에 쏴 올린 나라 수도에 살아.

유진 : 음, 대답을 원한다면, 미국 수도는 워싱턴이죠.

레이 커즈와일 : 나는 만리장성을 쌓은 나라 수도에 살아.

유진 : 수도에 관해 더 말해줘요. 난 다른 장소에 관해 듣는 걸 좋아해요.

레이 커즈와일 : 몇 살 때부터 안경을 썼니?유진 : 아니. 난 아니예요! 어떻게 그런 생각한 거죠? 제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여전히 어디 사는지를 말해주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혹시 비밀인가요?

레이 커즈와일 : 난 내가 어디 사는지를 말해줬다고. 몇 번씩이나. 기억하니?유진 : 오 제길! 당신은 불쌍한 오류 덩어리 사이보그군요! 못된 로봇이 당신의 기억을 지워버린 거죠! 당신은 자기가 어디 사는 지도 기억을 못 하는군요, 최소한 일련번호는 기억하죠?

이렇게 어수룩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최초의 인공지능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레이 커즈와일은 튜링테스트 자체가 지닌 허점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유진을 만든 러시아 개발진은 유진에 독특한 캐릭터를 덧입혔다. 유진이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살 소년인 척 하도록 한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10대 소년이라는 설정 덕분에 대화가 조금 어그러지더라도 심판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핑계거리를 마련해둔 것이다. 개발진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 비슬로프는 유진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유진은 2001년 태어났습니다. 우리 아이디어의 핵심은 이거죠. 유진은 무엇이든 다 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걸 완벽하게 알지 못해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죠. 우린 오랫동안 그럴듯하게 보일 캐릭터를 개발했습니다."

■ "유진 튜링테스트 통과는 꼼수일 뿐"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한 케빈 워윅 레딩대 교수는 이번 튜링테스트가 "제한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진이) 미리 정해둔 주제나 질문 없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며 "이처럼 엄격한 시험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자신 있게 발표 한다"고 말했다. 레이 커즈와일은 케빈 워윅 교수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13세 소년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효과적인 제약"이라는 게 레이 커즈와일의 지적이다.

또 '제한되지 않았다'는 실험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5분 안에 겨우 다섯 개 질문을 던져 컴퓨터와 사람을 구분해내는 실험 절차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레이 커즈와일은 "이런 짧은 시간 동안이라면 어수룩한 심사위원은 충분히 속아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컴퓨터 인지과학자인 조슈아 테넘바움도 레이 커즈와일의 비판에 힘을 보탰다. 그는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딱히 신기할 일이 아니라"라며 "그럴싸한 챗봇 이상으로 훌륭한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약간의 운과 우연이 당신을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 튜링테스트 통과했다고 진짜 인공지능일까

이런 해프닝이 생긴 이유는 인공지능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람과 자연스레 채팅하는 능력을 꼽았기 때문이다. 만일 레딩대 튜링테스트가 컴퓨터와 음성으로 대화를 주고받도록 했다면 유진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심판이 5분이 아니라 10분 동안, 횟수 제한 없이 레이 커즈와일처럼 채팅했다면 유진은 정체를 숨길 수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튜링테스트라는 시험 자체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튜링테스트가 처음 나온 것은 1950년이다. 한국은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을 때고, 앨런 튜링이 살던 영국도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이제 막 씻어내던 찰나였다. 요즘 전자계산기보다 못한 컴퓨터가 세상에 막 나올 무렵이었다. 사람의 지능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을 때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진짜 인공지능이라면 종합적인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터넷 서점이 내 구매 목록을 바탕으로 새로 나온 책 중에서 내가 살 만한 책을 추천해주거나 애플 음성비서 '시리'가 내 말을 알아듣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일 따위를 우리는 인공지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특정한 상황에 주어진 일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진도 마찬가지다. 튜링테스트라는 틀 속에서 채팅으로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고 불리한 대답은 이리저리 피해가도록 고안된 똑똑한 챗봇일 뿐이다.

게리 마르쿠스 뉴욕대 인지과학자는 기술 발전에 발맞춰 튜링테스트를 판올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짜 인공지능이라면 TV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그 내용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리고 주장했다. 사람처럼 정보를 모으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진정한 인공지능이라는 뜻이다. 9시 뉴스를 보고 왜 세월호 유가족이 국회 앞으로 향하는지 답할 줄 알아야 하고, 개그콘서트를 보고 '여기가 웃음 포인트’'라고 짚어줄 정도는 돼야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쯤 진정한 인공지능이 나타날지 알기는 힘들다. 혹자는 수백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라고 말했고, 영화 '그녀'는 10년 뒤인 2025년께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기 존재를 자각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모습을 그렸다. 정확한 시기를 짚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조금씩 그날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글 : 안상욱 블로터닷넷 기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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