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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비디오판독…감독들 기죽고, 심판들 신난다


비디오판독 요청 시점, 투수교체 타이밍 만큼 중요해졌다

[김형태기자] 이제 프로야구 감독은 더 힘든 직업이 됐다. '생각 없이' 항의하러 나가서는 본전도 못 건지게 됐다.

이른바 '한국형 비디오판독' 제도인 심판 합의판정이 도입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머리가 더 골치 아프게 됐다.

22일 잠실구장.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대해 송일수 두산 감독과 이만수 SK 감독은 입을 모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송 감독은 "개인적으로 찬성이다. 감독도 심판도 다 열심히 해서 수준을 올리면 좋겠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감독 또한 "타이밍 잡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하다보면 팬서비스도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모든 감독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쉽게 숙지하기 어려운 복잡한 제도의 도입으로 '일거리'가 늘어난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제도 자체가 복잡하다. 심판 판정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경우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이닝 도중에는 30초간, 이닝 종료 후에는 10초 내에 판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경우 해당 심판과 심판팀장, 대기심, 경기 운영위원 등 총 4명이 TV 중계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직접 결정한다. 여기에서 나온 결론이 최종 결정이다.

비디오판독을 요청해 판정 번복을 이끌어낸 감독은 이후 한 차례 더 판독을 요청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어필'에서 기각되면 두 번 다시 해당 경기에서는 기회가 없다. 비디오 판독을 요청할 수 있는 범위도 제한적이다. 홈런에 대한 판정, 외야 타구의 페어와 파울, 포스 또는 태그플레이에서의 아웃과 세이프, 야수(파울팁 포함)의 포구, 몸에 맞는 공 등 5가지다.

야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판정 중 하나인 희생플라이시 주자의 태그업 시점, 안타를 치고 2루로 내달린 주자가 1루 베이스를 제대로 밟았는지 여부 등 민감한 사안은 비디오 판독의 대상이 아니다.

덕아웃의 감독들로선 비디오 판독 요청 시점 잡기가 투수 교체 타이밍 만큼 중요해진 것이다. 한 번 요청해 '기각'될 경우 두 번 째 기회는 사라지므로 머리싸움이 무척 치열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일반적인 판정 어필도 쉽게 할 수 없게 됐다. 비디오 판독의 대상이 아니거나, 판독 요청을 전제하지 않은 어필의 경우 아무 의미 없는 '화풀이' 정도로 치부될 수 있다. 판정이 번복되지 않을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하는 항의라는 점에서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게 뻔하다.

따라서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심판에게 향하려면 감독들은 상당한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날 만난 현장 사령탑들도 이런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송 감독은 "모든 상황을 다 요청할 수는 없다. 신중하게 판단해서 확실한 판단이 섰을 때만 요청할 것"이라며 "요청하러 나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감독 또한 "기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새롭게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타이밍 잡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아무래도 현장도 우왕좌왕 할 것이고, 보는 사람들도 낯설 것 같다. 이제 예전처럼 뛰어 나가지도 못하게 됐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반대로 심판들은 큰 부담에서 벗어났다. 그간 판정실수를 속으로는 인정해도 '심판의 권위' 탓에 쉽게 번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기술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판정을 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셈이 됐다. 더구나 덕아웃의 감독들이 어필을 위해 달려나오는 횟수도 크게 줄어들게 됐으니 앓던 이가 하루 아침에 쑥 빠진 형국으로도 볼 수 있다.

한 심판원은 "아직 제도를 시행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감독들과 경기 도중 얼굴 붉힐 일은 크게 줄어들 것 같다"며 반색했다. 올스타 휴식기 도중 열린 감독자회의에서 한 감독은 끝까지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했다고 한다. 어떤 구단의 어떤 감독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감독들만 더 골치 아파질 것이라는 걱정이 밑바탕에 깔렸을 것은 명약관화다.

조이뉴스24 잠실=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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