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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홍명보 유임, 분노도 유임돼야 한다


협회와 홍명보의 의리가 뭉친, '협회 대표팀' 출항

[최용재기자]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최초'로 사퇴하지 말라며 붙잡은 감독이 탄생한 것이다. 조금만 성적을 못내도 경질을 밥 먹듯이 당당하게 하던 협회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다시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고 사정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협회가 '삼고초려'로 다시 모신 대표팀 감독은, '황태자' 홍명보 감독이다.

알제리에서는 월드컵에서 선전한 바히드 할릴호지치 대표팀 감독을 잡겠다고 대통령까지 나섰다고 한다. 그와 비슷한 경우였다면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홍 감독은 정반대다. 한국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 승점 1점, H조 꼴찌로 탈락했다.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참패, 최악의 성적이었다. 또 '의리 논란'을 앞세워 국민들을 분열시켰고, 투혼 없는 모습으로 절망감을 안겼다.

상식이 통한다면 자연스럽게 감독 경질 절차를 밟는 것이 맞다. 그런데 협회가 이런 홍 감독에게 계속 대표팀을 지휘해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홍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정몽규 회장이 직접 나서 설득했다고 한다. 벨기에전이 끝나며 16강 탈락이 확정된 후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며 카리스마를 뽐낸 홍 감독은 며칠 만에 협회장의 생각에 지배를 당했다.

3일, 축구협회는 홍 감독의 유임을 공식 발표했다.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협회는 이 상황이 홍 감독 개인의 사태로 매듭지어지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표팀 수장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홍 감독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홍 감독을 계속 신뢰하고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처참한 실패의 장본인 홍 감독이 유임됐다. 월드컵 실패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번 일로 협회와 홍 감독이 얼마나 단단한 끈으로 연결돼 있는지 모두가 알게 됐다. 협회와 홍 감독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의리'가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말 많았던 '의리 축구'도 함께 유임된 것이다.

고로 한국 축구에 국가대표팀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막무가내식 행태는 절대로 국가를 대표할 수 없다. 국민 정서를 등지며 대표팀을 '사조직'으로 만들었다. 협회와 홍 감독이 짜고 치는, 그들만의 팀, '협회 대표팀'이 출항한 것이다.

홍 감독이 유임됐고, 의리 축구도 유임됐다. 그렇다면 '분노'도 유임돼야 한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숱한 말 바꾸기, 편법, 원칙 파괴, 제식구 감싸기, 그리고 최악의 월드컵 성적까지,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잊지 말고 '협회 대표팀'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협회의 노림수를 읽어야 한다. 홍 감독 경질을 비롯, 그 누구 하나 월드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이유는 한 가지다.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 지금은 고개를 숙이는 척 했지만 비난 여론이 줄어들면 그 때 다시 본색을 드러낼 것이 자명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국민들은 축구팬들은 또 지금까지 참아왔다. 그러다 보니 단 한 번도 협회는 바뀌지 않았다. 이번에 또 참으면 이런 과정들이 다시 반복된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축구팬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협회가 제대로 될 때까지 분노해야 한다. 확실하게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협회가 바뀔 때까지 분노를 멈춰서는 안 된다.

협회의 비상식과 맞서 싸울 방법은 분노를 놓지 않는 것뿐이다.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냉정한 분노'가 필요하다. 협회가 국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 협회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냉정한 비판, 효율적인 충언, 날카로운 감시, 대안과 발전 방향 제시 등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허 부회장은 "월드컵 실패에 대한 분석을 해보고 책임 질 것이 있으면 지겠다"고 약속했다. 분석은 언제 끝이 나는지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분석이 끝난 후 정말로 책임을 지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아마도 오랜 시간 분석을 하느라 시간을 끌 것이다. 그래도 오랜 시간 분노를 품은 채 기다려야 한다. 냉정함을 잃으면 안 된다. 그 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2015 호주 아시안컵 대표팀을 지휘하게 됐다. 한국은 55년 만의 우승에 도전한다.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민이 하나 돼 지지하지 못하는 역사상 두 번째 대표팀이 메이저대회에 참가한다. 이는 사실상 홍 감독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월드컵 참패에도 재신임을 받은 홍 감독이다. 아시안컵 따위가 걸림돌이 되겠는가. 아시안컵에서 성공을 거두면 홍 감독의 지도력은 재평가를 받으며 월드컵 참패 기억을 묻을 것이다. 아시안컵에서 실패해도 자연스럽게 홍 감독에 대한 재재신임이 있을 것이다. 아시안컵도 홍 감독에게는 첫 번째 경험이니, 감독 홍명보의 경험 쌓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좋은 핑계거리도 있다. 대회까지 6개월이라는, 짧은 준비기간밖에 남지 않았다. 아시안컵 후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이 다가올 것이고, 홍 감독이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면 당연히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 이끌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시대는 끝을 알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 협회와 홍 감독을 향한 지금의 분노를 잊지 말아야 한다. 홍 감독과 협회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 감시해야 한다. 물에 물타듯 어영부영 책임지지 않고 넘어가는, 국민과 축구팬을 무시하는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설사 아시안컵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분노는 이어져야 한다. 잘못된 과정으로 얻은 성과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과정으로 만든 공정한 결실이 아니다. 특혜와 의리로 만들어낸 어두운 결실이다. 박수쳐 줄 수 없다. 과정을 무시한 '성적 지상주의'를 정당화 시킬 수는 없다. 과정이 뒤틀려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다는 그런 '구시대적 발상'을 협회만 하고 있다.

국민들은 공정한 과정에서 나온 당당한 결실을 원한다. 결과도 좋지만 과정부터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운 실패에 얼마든지 박수쳐 줄 수 있다. 아시안컵 우승도 원하지만 깨끗하고 공정한,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국가대표팀을 더 원한다. 이것을 협회만 모른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분노도 유임해야 한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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