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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소송 후폭풍…'API 소송 대란' 이어지나


항소법원 판결로 SW업계 긴장…'공정이용' 쟁점 될 수도

[김익현기자] “API는 소설 작품일까? 아니면 단순히 플롯의 하나로 봐야 하는 걸까?”

‘세기의 전쟁’으로 불리던 오라클과 구글 간의 자바 저작권 분쟁이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항소법원이 지난 8일(현지 시간) ‘자바 API’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37개 자바 API를 무단 도용한 것이 인정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KO패했던 오라클은 항소심에서 ‘역전 KO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12년 오라클이 구글을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2009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자바 특허권을 손에 넣은 오라클은 곧바로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자바 API를 무단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오라클은 1심 소송 당시 특허권과 저작권 침해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하지만 1심 배심원들은 특허 침해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 저작권 부분에 대해서는 구글의 ‘자바 API’ 활용은 공정이용에 해당된다면서 무죄 평결을 했다.

◆"자바 API 독창적 창작물로 볼 수 있나?"

이번 소송의 쟁점은 엄밀히 말해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니다. 이 언어를 최적화한 API를 무단 도용했다는 것이 오라클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API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림을 토대로 한번 살펴보자.

이용자들이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그림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 프로그램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전자기기의 기본은 운영체제다. 그런데 운영체제가 특정 단말기에서 잘 굴러가도록 하려면 운영체제와 단말기를 연결해주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게 운영체제 인터페이스(OSI)라 불리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단말기와 연결된 OS 위에서 페이스북 앱 같은 각종 응용 프로그램이 구동된다. 이 때도 각종 애플리케이션과 운영체제를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애플리케이션 프로토콜 인터페이스(API)다.

API는 흔히 함수와 루틴, 프로토콜 같은 것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 쟁점이 된 ‘자바 API’ 역시 오라클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 언어의 각종 요소들을 토대로 최적화한 결과물이다.

오라클과 구글의 1심 재판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핵심 쟁점은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를 기반으로 만든 API를 독창적인 창작물로 볼 수 있느냐는 부분이었다.

이와 더불어 구글이 안드로이드에 자바 API를 가져다 쓴 것이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에 해당될 수 있느냐는 부분이었다. 공정이용이란 비평이나 보도 등을 할 때 저작물의 일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을 말한다.

1심 재판 당시 배심원들은 구글이 오라클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은 맞지만 ‘공정 이용’에 해당되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고 평결했다. 1심 재판을 이끌었던 윌리엄 앨섭 판사는 ‘자바 API’를 독창적인 창작물로 인정할 수도 없다는 판결을 했다.

◆자바 API "완성된 소설 작품 vs 플롯의 일종?"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자바 API’ 역시 독창적인 창작물이므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라고 판결한 것.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을 담당했던 윌리엄 앨섭 판사가 ▲어떤 부분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으며 ▲어저작권 침해 행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해 완전히 오해를 했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1심 재판부의 논리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구글이 오라클 API를 특허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논리는 간단하다. API 자체가 아주 짧은 명령어로 구성됐다는 것. 그런 명령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API도 저작권으로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게 구글 측 논리였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두 도시 이야기’를 구성하는 건 짧디 짧은 단어와 문장들이다. 따라서 그 자체론 전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한 데 모여서 창의적인 작품을 이뤘을 때는 저작권으로 보호해줘야 한다는 게 항소재판부의 논리였다. 자바 API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항소심의 이런 판단에 대해선 비판도 만만치 않다. 클라우드업체인 조이엔트의 브라이언 켄트릴은 해커뉴스와 인터뷰에서 “API는 소설 자체가 아니라 소설의 플롯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도시 이야기’란 완성품 소설을 예로 든 항소심 판결 논리를 정면 부정한 것.

그는 이런 논리를 토대로 “플롯에 저작권을 부여할 경우 파생된 모든 작품이 전부 저작권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반지의 제왕’ 플롯을 저작권으로 보호해 줄 경우엔 이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많은 영문학 작품들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될 수도 있다는 반박인 셈이다.

◆파기 환송심에선 공정 이용 여부가 쟁점 될 듯

공정 이용 문제 역시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1심 재판부가 구글에 면죄부를 부여한 가장 큰 이유는 ‘저작권 침해 무혐의’가 아니라 ‘공정 이용’이었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번 재판에서 ‘자바 API’를 쓴 건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안드로이드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바 API 외엔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 역시 구글의 이 같은 논리를 대폭 수용했다. 구글의 자바 API 활용이 ‘공정 이용’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달리했다. 구글이 자바 API를 가져다 쓰지 않고서도 충분히 차제 API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 따라서 자바 API를 가져다 쓴 것은 좀 더 대중적인 프로그램에 무임승차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취지의 판단을 했다.

하지만 미국 사법 체계상 항소심에서는 법 적용의 적합성 여부만 따지게 돼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칙만 제시한 채 다시 1심 재판부로 돌려보내면서 ‘공정 이용’의 개념과 허용 범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해보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재개될 파기 환송심에선 공정 이용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자바 API를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판단한 이상 구글이 기댈 수 있는 건 ‘공정 이용’ 면죄부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뿐 아니라 SW업계 전반에 엄청난 후폭풍 예상

이번 판결로 안드로이드에 ‘오라클 세’가 신설될 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오라클이 거액 배상금을 요구하긴 했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소송은 당장 소프트웨어 업계 쪽엔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많다. API는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혁신의 기본 도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전문 잡지인 와이어드는 “그 동안 개발자들은 그대로 가져다 붙여 쓰는(copy&paste) 행위만 아니라면 소스 복제를 허용해 왔다”면서 “하지만 오라클-구글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와이어드는 특히 “이번 판결은 오라클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프론티어재단(EEF)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리드라이트웹에 따르면 EEF는 “API에 저작권을 부여할 경우 호환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될 경우 궁극적으론 혁신에 저해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EEF는 특히 “API에 저작권을 부여해 주게 되면 누군가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통제할 권리를 독점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외신들은 “이번 판결이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보다 더 큰 파장을 몰고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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