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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얼]날아라! 은봉황


봉황 한마리가 불꺼진 거실 한복판에 앉아 있다. 전등 스위치를 올렸더니 금방이라도 은빛 날개를 퍼덕거리며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 같다. 깃털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정교하기까지 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꼬박 8년 동안 기다려왔던 비상이다.

금 38kg으로 만든 거북선, 은으로 만든 이순신, 1m짜리 은봉황, 은독수리. 오직 금과 은만으로 이런 작품을 형상화한 이가 있다. 금속공예가 선우 박해도(62) 명인이다.

박 명인을 27일 서울 동대문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박 명인은 지난 1966년 귀금속 제작업체인 장미사에서 금속공예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금속공예를 배운지 3년 만에 17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공장장이 됐다. 1971년 직접 공방을 차려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은이 제일 적합했다.

처음 시작한 작품이 거북선이다. 조선소에서 의뢰를 받아 외국 바이어가 한국에 오면 거북선을 만들어 주며 생활을 꾸렸다. 나머지는 오직 창작활동에만 매달렸다.

1987년 롯데그룹의 의뢰를 받아 금 38kg짜리 거북선 제작을 맡기도 했다. 무려 1만돈이 넘는 무게다. 당시 그는 작업 과정에서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염산을 붓다가 그만 약통이 깨져 가스가 발생한 것이다. 다행히도 급히 병원에 실려 간 바람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작품에는 낙관이 하나도 없다. 작품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하는 탓이다. 행여 조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용납하지 않았다. 몇번을 고민해봐도 완성이다 싶을 때 낙관을 찍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가 만든 작품 중 날개 접은 봉황은 맘에 들지 않아 아예 다시 녹여버린 적도 있다. 크고작은 거북선과 용, 학, 불상, 향로. 이런 식으로 만든 작품 수만 그동안 1만점이 넘는다.

박 명인은 48년을 금속공예에 매진했다. 2001년 국립 민속 박물관 옛 활자체 복원작업, 2007년 세계명인 문화예술대축제에서 금속공예 부문 대한명인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금속공예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박 명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들이 몇가지 있다. 우선 가로 80cm, 세로 1m 크기의 은 봉황.

은 봉황을 살피고 있노라면, 한평생 장인으로 살아온 그의 발자취까지 투영된 듯하다.이 작품은 가느다란 은선 2개를 꼬아 하나의 은선으로 만들고, 이를 연결해 깃털을 만드는 세선기법을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서부터 몸 전체를 만들었고 봉수와 부리는 금으로 장식해 봉황의 신비로움을 더했다.

이 작품을 만드는 데 무려 8년이 걸렸다. 봉황 머리카락부터 속눈썹, 그 디테일울 표현하는 데까지 공을 들이다보니 세월이 그렇게 지난 것이다.

박 명인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그는 "사진에서 나오지 않는 부분까지 표현하는 것이야 말로 아름다움이다. 콩깍지를 자세히 보면 털이 뽀송뽀송하게 나 있지 않나. 그 정도의 디테일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연장을 손에서 아직 못 놓을 것 같다"며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거북선, 봉황은 이제 다 키운 자식이나 다름없다. 그는 최근 청동에 금물을 입힌 백제금동대향로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일반인들도 향유할 수 있는 소품이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미니향로부터 실제크기 대향로까지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중이다.

"박물관에 있는 몇백 년 전 유물을 완벽히 재현해낼 수 있는 기술을 찾았다면 그 기술의 복원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몇백 년 동안 겨우 제자리걸음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망사기법의 은빗이나 은봉황 등은 예전엔 없던 새로운 기술의 산물입니다. 이는 바로 선조들의 기술을 발전시켜 새로운 것을 창출해낸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놓고도 겸손하다.

1년전부터는 은빗이 큰 관심거리다. 빗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세계최고의 종주국인데, 일제 단발령 이후 끊어진 빗의 맥을 재현하는 중이다.

빗을 몇개 꺼내다 보여준다. 머리를 빗질했더니 한결같이 시원하고 머리가 개운해진다. 망사기법의 은빗은 언뜻 봐도 탁월한 미술품이다. 그러면서도 영원히 쓸 수 있는 내구성을 지녔다. 더 나아가 고집을 꺾고 나무에도 손을 댄게 큰 변화다.

그 결과 은과 나무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합친빗이 탄생했다. 푸근한 느낌이 드는 나무 손잡이에, 머리가 시원해지는 은빗살이 달린 빗이다. 나무와 은을 합친빗은 기능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피는 시원하면서, 빗질을 하는 손에는 무리가 가지 않는다.만져봤더니 보기도 좋고 제법 쓸모있어 보인다.

"티파니 같은 유명 보석상에선 은세공으로 만든 시계가 수천만원에 거래됩니다. 은값만 따진다면 30만원도 채 안 될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고 유일합니다. 볼펜 한자루도 한정판이라고 하면 줄을 서서 사가는 세상인데도 말이죠."

어렵사리 만든 은빗을 가지고도 "빗이 그냥 빗이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라는 일부의 반응에도 마음이 불편하다. 자신의 기예를 국가가 몰라주는 것은 섭섭하지 않다. 선진국을 이길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도 체계적으로 계승, 발전할 장치가 없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박 명인은 요즘 협업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영역만 고집하기를 포기하고 협업한다면 한국 전통공예가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다. 박 명인을 구심점으로 오해균(목공예), 이택서(목공예), 황동구(자기), 조준석(전통악기), 안해표(꽃신) 등 전국 방방곡곡의 명인들이 모였다. 명인들의 귀한 작품들은 '명인의얼'(www.earl.co.kr)에서 감상하고 주문할 수 있다.

/생활경제팀 life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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