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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 알고도 말 못하는 SW업계의 속타는 사연


거대 고객이 불법 복제 주범? 오묘한 역학구도에 '쉬쉬'

[김수연기자] 거대 고객이라 할 대기업이 직영하는 PC 매장에서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SW업계가 '말 못할 속앓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품 SW 구매 고객'이라고 확고히 믿었던 삼성전자, LG전자가 직영 판매점에서는 '불법 SW 전도사' 역할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 조사 결과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이하 BSA)이 SW 불법복제 조사 전문업체를 통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서울, 경기지역과 5대 광역시 내 대형 가전유통업체 95개에 대해 현장 조사를 실시한 결과, 53개 매장에서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 한글, 마이크로소프트의 MS 오피스, 어도비시스템즈의 포토샵이 불법으로 설치·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 디지털플라자, LG베스트샵 등 SW 불법복제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여겨졌던 대기업 직영 판매점 각 16곳 중 11곳에서 PC 판매 과정에서 고객에게 불법복제 SW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대기업 직영 판매점 3곳 중 2곳에서 주요 SW를 불법복제하여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접하자 SW 업체들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배신감'을 느끼며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대기업이 주요 고객이다 보니 불법복제를 이슈화시켰다가 자칫 관계가 갈등 국면으로 치달으면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발동,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속타는 SW업체들 "속상해도 대기업에 전면 대응하긴 곤란"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어도비시스템즈(이하 어도비)는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입장이다 보니 저작권을 침해당하고도 강경하게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컴 관계자는 "대기업 직영 매장에서 SW 불법복제가 이뤄졌다는 건 큰 문제지만 대기업이 직적접인 거래처이고 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특히 대기업을 타깃으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자칫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어 전면에 나서기 곤란한 상황"고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 사회에는 국내 기업이 같은 국내 기업을 매질하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정서가 있다"며 "이것이 대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강경하게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BS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3개 매장에서 불법 설치된 SW 108개 중 아래아 한글이 52개로 가장 많았다.

한국MS의 모 임원도 "조립PC 업계에만 만연돼 있는 것으로 생각됐던 불법복제 SW 유통이 대기업 매장에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어서 대기업, 정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서 SW불법복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청 이상의 액션을 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삼성, LG 같은 대기업들은 MS 제품을 구매해 주는 큰 고객이어서 '요청' 이상의 액션을 취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우리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며 이유는 자칫 이들과 갈등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도비는 한컴, MS보다 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시장의 주 고객이자 파트너인 대기업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을 굳이 앞장서서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 어도비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와 관련해 별도 코멘트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가이드를 본사로부터 받았다"며 "BSA 회원사이긴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 자체를 본사에서 조심스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컴, MS, 어도비 등 SW저작권사들은 향후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를 통해 SW불법복제로 인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대기업을 포함한 저작권 침해사들과 SW불법복제 재발방지를 위한 협약 등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번 사태에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

◆ "SW불법복제 막을 강력한 정책 선행돼야"

SW업체들은 대기업 직영 매장에서조차 불법복제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불법복제된 SW의 유통을 원천 차단할 강력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MS의 한 임원은 "SW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불법복제 된 SW들이 유통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정부가 국내 SW 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고자 한다면 SW 저작권 보호를 위해 강력한 정책들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저작권 보호정책을 거스르는 주체들에 대해 보다 강력히 단속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정품을 유통·구매하지 않았을 경우 오히려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SW 산업 성장의 기반이 되는 정품사용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대기업 스스로 불법복제 SW 유통 방지 프로세스를 철저히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컴 관계자는 "정품사용으로 SW기업의 매출이 늘어나게 되면 SW산업과 인력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되고 이를 통해 산업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며 "정품 SW 사용에 대한 대기업의 교육과 서비스 프로그램이 미비하다는 것이 증명된 만큼 SW 불법복제 재발방지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등 대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BSA 추산, 지난해 SW 불법복제로 인해 발생한 국내 손실액은 8천900억원, 불법복제율은 40%에 달한다. 손실액은 BSA가 국내 SW 불법복제 현황을 조사한 이래 최대 규모며, 불법복제율은 OECD 34개국 평균치인 26%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김수연기자 newsyout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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