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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취급 게임, 미국선 '예술' 대우…'문화' 인정 언제나


[게임 죽이기의 진실-4] 중독, 해외선 '양육'의 문제로 해법 찾아

우리 사회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게임산업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게임관련 법률의 이름은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다. 게임을 산업적 시각에서 진흥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국회에서 입법된 '강제적 셧다운제', '선택적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등 규제책은 게임 과몰입 등 게임의 역기능에 주목했다.

게임 산업계와 학부모 단체들은 지난 2011년 6월 '셧다운제' 도입에 앞서 공방을 벌이며 '게임이 산업적으로는 유용하나 교육적으로는 해가 된다'는 식의 논리 전개를 서로 받아들였다.

게임산업에 대한 철학이 없는 집권층의 시각은 목소리 크기에 따라 흔들린다. 2009년 "우리나라는 왜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산업 진흥을 주장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에는 "게임 산업이 폭력적인 게임만 만들지 말고 유익한 것을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중잣대, 해결 실마리 못찾아"

이 같은 이중적 시각은 청소년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에도, 새로운 미디어인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찾아나가는 데에도 장애물이 된다.

박상우 연세대학교 교수는 "책임을 물을 때는 명확하게 연관성을 밝혀야 한다. 진술된 것으로만 규제를 하게 되면, '힘이 센 애들이 약한 애들에게 빵을 사오라고 시키니까 학생들 폭력은 빵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냐' 식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학부모들이 생각했을 때 귀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 짚으면 학생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희룡 새누리당 의원도 "산업 진흥이 필요하다면서 규제 일변도로 나가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산업 진흥을 말하면서 청소년 문제를 산업 규제로 풀려는 모순된 태도를 버리고 규제를 일원화시키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의원은 "놀이와 학습, 교육의 균형이 깨진 것은 학교와 전문가, 사회가 전문적으로 아이를 이해한 입장에서 접근할 때에만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다"며 "게임업체가 그동안 잘해왔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게임 산업계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갈 주인공이자 책임을 지워야 할 주체이지 규제한다고 문제의 해법이 나오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게임이 경제와 교육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면 사회와 게임산업계가 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게임과몰입론이 불거질 때면 게임산업계는 산업적으로 게임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규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이에 대해 교육계나 보수적인 학부모 단체들은 게임업계가 자신들의 비즈니스에만 혈안이 돼 청소년을 망친다고 말한다"며 "그런데 이 이분법에서 한 가지 빠져 있는 점이 바로 게임이 문화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美 대법원-캘리포니아가 주는 교훈

미국 연방 대법원은 지난 2011년 6월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에게 폭력적인 내용의 비디오 게임을 팔지 못하도록 한 캘리포니아주의 법을 7대 2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비디오 게임이 캐릭터·대화·줄거리·음악 등 문학적 장치를 통해 생각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책이나 영화, 연극과 다를 바가 없다"며 "비디오 게임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적용을 받아야만 한다"고 판시했다.

미국 대법원은 "예술과 문학에 대한 미적, 도덕적 판단은 개인에 의해 내려질 수 있을 뿐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소통을 위한 새롭고 상이한 매체가 등장한 경우에도 수정 헌법 제1조에 의한 '표현과 언론의 자유' 같은 기본 원리들이 다르게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 대법원은 "비디오 게임업계의 자발적인 등급분류제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대한 자녀들의 접근을 제한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요구를 상당한 정도로 충족시키고 있다"며 캘리포니아 주법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민간 심의기구인 미국게임등급위원회(ESRB)는 미국의 영화등급 시스템이 만 17세 이상을 사실상 성인과 비슷하게 규정하는 것과는 달리 17세와 18세 기준을 별도로 둘 정도로 엄격한 등급분류 심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ESRB는 1년에 두 번씩 비디오게임을 유통하는 소매점에 '미스터리쇼퍼'를 보내 아이들에게 성인용 게임을 파는지 감시한다. 인정받는 대신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있는 셈이다.

위 판결 소식을 전한 뉴욕타임즈 역시 컬럼을 통해 '이제 게임은 의무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칼럼의 저자 세스 슈젤은 기사 말미에 "대법원이 게임이 예술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제는 게임업계의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 아티스트와 작가 그리고 경영진들이 나서서 자신들이 무슨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줄 차례"라고 적었다.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지난 2월 방한한 패트리샤 반스 ESRB 의장의 얘기다. 반스 의장은 "미국에선 게임 중독 문제를 양육(Parenting)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패트리샤 반스 의장은 2002년 11월부터 미국게임등급위원회(ESRB) 의장을 맡고 있다. 컴퓨터·비디오게임 산업의 자율 규제 활동을 감독하고 집행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미국의 학부모들 역시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을 사회적으로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가정과 개인이 선택하고 조절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 정부가 전체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제‘하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도입한 '선택적 셧다운제'와 유사한 서비스를 게임업체들이 제공한다. 다만 법이 아닌 자율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지난해 11월 '스타크래프트2'에 자녀가 일정 시간이나 주말 등 미리 지정한 시간에만 해당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자 관리 서비스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게임법 개정안 이전에 '자녀사랑' 서비스 등의 이름으로 주요 게임회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다.

◆"예술·문화 향해 목숨 걸고 나서야"

국내 게임업계는 이미 연간 7조 4천억원(2011년 기준) 규모로 성장했다. 따라서 국내 업계에서도 눈 앞의 숫자에 급급해 확률형 아이템을 앞세운 단기 이벤트로 매출을 끌어올리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마케팅으로 이용자들을 불러 모으는 자충수를 그만둬야 한다.

정소연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이제는 게임업체들에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이 왜 예술이 되지 못하고 문화가 되지 못하는지에 대해 목숨걸고 달려들어야 할 때"라며 "더 이상 게임이 청소년에 유해하다는 담론에 대해 '도서관을 짓고 있다'는 식의 대답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소연 팀장은 "게임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고 있으며 게임에 음악·미술·시나리오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라며 "또한 게임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문화가 되기 위해서 이용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강호성 팀장, 허준 기자 gam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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