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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호랭이' 신세로 전락한 방통위


스마트TV 제한 피해에 제재방안조차 못만들어

[강호성기자] 지난 10일 오전 9시 KT가 삼성전자 스마트TV 이용자들의 '삼성 앱스' 접속을 제한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KT는 LG전자는 놔둔 채 삼성전자를 타깃으로 했다. 삼성전자만 잡으면 LG전자는 따라온다는 속셈도 들어 있었다. KT는 스마트TV가 과도한 망부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차례 협상을 요구했지만 삼성전자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망부하가 심하지도 않으며, TV 제조사가 망부하에 대해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맞섰다. 법원에 KT의 행위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도 제기했다. 망부하에 대한 문제는 '망중립성포럼'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20만 안팎의 가구가 피해를 입는 사고가 터지자 주무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에 눈과 귀가 쏠렸다. 그러자 방통위는 KT의 '스마트TV 인터넷 접속 제한'이 이용자 권익을 침해한다며 엄중하게 제재한다는 뜻을 공개했다.

국내 최대 통신사의 하나인 KT와 글로벌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싸움은 국제적인 구경거리가 됐다. 트래픽 폭증의 시대를 맞아 각국이 망부하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네트워크 강국 한국에서 망을 제공하는 사업자와 단말을 판매하는 대표적 사업자간 싸움이 붙은 것이다.

이 싸움은 KT와 삼성전자가 차가운 국민들의 눈초리를 의식, 향후 논의하기로 합의점을 찾으면서 5일만에 일단락이 됐다.

지난 15일 이용자 피해에 따른 제재를 가하기로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던 방통위는, 양 측 합의 내용과 제재 수위 등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일주일동안 회의를 연기했다.

그리고 22일 오전, 마침내 전체회의가 열렸다. 관심사는 스마트TV 접속 차단에 대한 방통위의 대응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제재 안건은 고사하고 보고안건 조차 상정되지 않았다.

김충식 상임위원은 회의 말미에 'KT와 삼성전자 스마트TV 접속망 제한 관련' 제재에 대한 사무국의 준비여부를 물었다. 홍성규 부위원장도 그제서야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다.

석제범 네트워크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양사에 (이용자)불편 초래부분을 사과하고 대책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도록 했다"며 "구체적 사과계획과 내용이 보고되면 차질없이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제재 수위 및 여부를 일주일 늦춰 결정키로 했던 것이지만 이날도 사무국에는 제재카드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종이 호랭이'의 외침?

양문석 위원은 "사과, 피해보상은 당연한 것이고, 영업정지 등 법률검토를 해달라고 주문했는데 여전히 지난 주와 다르지 않다"면서 "상임위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법적검토도 하지 않고 양사가 사과하고 피해보상을 하기로 했다고 보고하면 끝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아울러 "방통위가 사과 요구를 구걸하듯 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신용섭 위원은 "트래픽 문제라고 해서 당연한 것이 아니다. 기습 폭격 하듯이 접속 차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법률위반이고 범법행위이며, 사과표명 하겠다거나 예정이라는 식의 고자세가 보기에도 딱하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이용약관 위배도 규제대상이고 삼성전자만 끊은 것도 이용자 차별행위라서 범법행위라고 못을 박았다.

홍성규 부위원장은 미국 유럽 싱가포로 등 해외의 사례도 챙겨 보고하고, 언론에도 공개해 보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말하라고까지 언급했다.

석제범 국장은 이에 대해 "양사가 조기 해결되도록 합의를 도출했고, 이용자 피해부분은 (방통위가)사과와 대책을 요청했다. 말씀처럼 대책은 양사 내놓은 것을 점검 후 할 계획"이라며 "삼성전자는 (제출했으며) KT는 24일까지 이용자 피해방지 대책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말이 안먹히는 규제기관

그러나 외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사무국의 보고나 의결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던 상임위원들이 그동안 왜 손을 놓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사무국 역시 이용자들의 관심을 감안하면 준비소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업계에서는 2기 방통위 조직으로 넘어오면서 규제당국으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사들과 케이블TV의 재송신 분쟁, 지상파와 위성방송의 분쟁 등 잇따른 사업자들간 분쟁에서 방통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시중 위원장이 '거물'이라 1기 방통위원회 때는 말이 먹혀들었지만, 2기로 넘어오면서부터 방통위의 영이 서지 않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사업자들간 각종 분쟁에서 방통위는 '강력하게 제재할 것'이라는 말로 뒷북만 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KT의 망 제한 조치 역시 '방통위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얘기다.

또다른 관계자는 "이계철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방송사들과 통신사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기관으로서의 제 역할과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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