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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체험박물관을 세우겠다"...석금호 산돌 대표


대학로의 번잡한 거리를 지나 명륜동 박석고개를 따라 들어가면 짙은 갈색 지붕의 집이 하나 있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주는 이곳은 작고한 명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산돌커뮤니케이션(www.sandoll.co.kr 이하 산돌)의 사옥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가내 수공업체' 같은 따뜻한 분위기지만 2층으로 된 사무 공간에서는 디자이너들이 한글 자모를 띄운 모니터와 씨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석금호 대표(사진)는 지난 25년 간 고집스럽게 한글 서체 디자인에만 매달려 온 글꼴 장인(匠人)이다.

그가 글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0년대 초 '리더스 다이제스트' 아트디렉터로 일할 때였다. 당시 출판을 하기 위해서는 '사진 식자(植字)' 기술을 이용해야 했다. 사진 식자는 글자 한 자씩 감광지나 필름에 새겨 책을 만드는 기술로 80년대까지 보편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식자 기술의 원도(原圖) 저작권을 일본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식자기를 100%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한글을 30년 동안이나 일본에서 수입해다가 써왔다는 사실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한글로 된 출판물을 일본에서 장비를 사다 쓰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이 며칠 동안 고민하며 밥도 안 먹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석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1984년에 직접 글자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산돌 글자은행'을 설립했다. '타이포그래피'라는 분야를 낳은 산업혁명 시대의 끝자락에 우리 글자를 지키겠다는 '고루한' 생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셈이다. 후에 불어닥칠 '디지털 혁명'을 예견했을 리 만무하다.

3년 동안 라면만 먹고 살았다. 한 달 수입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외주 업무에서 나온 60만원. 동업하던 제자 두 명을 주면 남는 게 없었다. 서체를 개발해도 사진 식자용으로밖에 쓸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어디 내다 팔 시장도 없었고 팔 수 있다는 개념도 없었죠. 한글 서체를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장은 없지만 그대로 개발작업에 몰두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 가던 90년대 초반,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드디어 DTP(개인용 컴퓨터 프린팅)용 디지털 폰트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그간 개발했던 서체들을 선보였고 금성(현 LG) '하나워드'용 폰트로 첫 주문제작을 시작했다.

이어 90년대 동안 매킨토시, 한글과컴퓨터, IBM, LG전자 등에 제품 전용폰트를 제공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90년대 후반이 되자 인터넷 시대가 밝았고 이후 한국 IT 산업의 흐름과 길을 같이 했다.

지난 2008년에만도 네이버, 옥션, 삼성전자, 엔씨소프트, 레인콤, 넥슨, KTF 등 유수의 IT 업체들에 디바이스, 온라인, 모바일을 막론하고 폰트를 공급했다.

산돌은 이제 연매출액이 25억 원 규모에 이르는 알짜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석 대표 본인이 예상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나는 이상주의자입니다. 앞뒤 재는 걸 잘 못하죠. 그냥 옳다 싶으면 해야만 직성이 풀릴 뿐입니다"고 말한다. 바로 우직하게 한 곳에 매진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장인 정신'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석 대표의 한글 사랑은 남다르다. 석사학위 논문이 '한글 타이포그라피의 시각적 특징과 심리적 효과에 관한 연구'였을 정도.

그는 한글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 보이지 않는 정신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세종대왕의 정신은 세계 지성사에 우뚝 설 만한 위대한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한글이 한국인 자존심의 근간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산돌은 매달 셋째주 목요일 '산돌 투어링'이라는 행사를 열고 참가하는 단체에 한글 관련 강의를 진행한다. 석 대표는 "한글 체험 박물관을 세우는 게 앞으로의 큰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사진=정소희기자 ss0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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