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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기업이 국내 스타트업 인수 꺼리는 이유


[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삼성이 지난 8일 발표한 180조원 규모의 투자·고용계획에는 스타트업 지원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통한 사업화 과제 수를 200개로 확대하고, 사외벤처에 대해서도 300개 과제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스타트업 지원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숫자들을 듣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삼성전자의 국내 스타트업 인수가 지금까지 단 1건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지난해 11월 국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플런티'를 제외하면 삼성전자가 인수한 국내 스타트업은 없다.

지분 투자로 범위를 넓혀도 지난해 모바일인증·결제솔루션 업체인 '모비두'의 지분을 일부 투자한 것이 전부다. 그러면서도 AI·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관련 역량을 강화한다며 해외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투자한다는 소식은 올해만 수차례 들려왔다.

삼성전자가 국내 스타트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내벤처 지원 프로그램인 C랩,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스퀘어 등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C랩을 통해 31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투자 조직인 삼성넥스트는 한국지부를 두고 국내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도모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LG전자·현대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원천기술 등을 확보하기 위한 스타트업 인수·투자에 분주하지만, 대상업체들은 상당수가 해외 기업이다.

이들이 국내 스타트업 인수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AI·블록체인·자율주행 등 필요로 하는 원천기술의 생태계가 발달한 해외의 스타트업에 기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 인수 시 밀려드는 각종 규제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교류를 더 힘들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대기업이 스타트업 인수를 하게 되면 7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계열사로 편입된다. 그 후 계열회사 간 상호출자·채무보증 금지, 특수관계인의 거래 금지 등 각종 규제가 적용된다. 자칫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거래 등이 일감 몰아주기로 비춰질 소지가 크다. 공시에 대한 부담은 덤이다. 유예 기간 중에도 문제는 있다. 스타트업이 벤처기업확인인증제도를 통한 각종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편입 유예가 항상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대상을 M&A 시점에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5% 이상인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법상 벤처기업'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경우 규제에 대한 압박은 한층 커진다. 벤처업계에서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에 대해서는 출자규제 등 각종 규제에 예외를 둬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앞서 언급한 규제는 벤처업계에서 주로 거론되는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방해하는 규제 중 하나다. 이외에 지주회사의 CVC(벤처캐피털) 설립과 관련된 규제, 대기업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100% 의무 확보 조항도 많이 거론된다.

AI·바이오·블록체인 등 혁신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기술을 지닌 스타트업의 활약이 커질 여건은 마련됐다. 그만큼 투자회수 시장이 성장할 기회도 주어졌다. 하지만 각종 규제들이 이를 방해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대기업의 국내 스타트업 인수·투자는 얼어붙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스타트업 투자회수(엑시트) 순위는 전세계 4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선진국은 물론 필리핀·루마니아·UAE 등에도 뒤진다. '엑시트' 개념에는 인수와 기업공개(IPO)가 모두 포함되는데 국내에서는 인수보다 IPO를 통한 자금회수 비중이 더 높다. 국내 스타트업 인수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달 만난 한 스타트업 고위 임원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최고의 시나리오는 결국 대기업에 엑시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게 받은 돈으로 창업자는 출구전략을 마련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며, 대기업은 신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도 대기업은 초기 벤처기업에 대한 활발한 지원을 한다. 여기에 대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문화가 활성화돼야 회수시장이 활성화되고, 나아가 벤처 생태계 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궁극적으로 함께 상생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타트업 스스로의 역량 확보도 중요하겠지만, 회수시장 활성화에 족쇄가 되는 각종 규제들도 재고돼야 한다.

윤선훈기자 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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